옛글 › 동국이상국집 › 전집 권15

현 상인과 수량사에 놀며 본 것을 적다與玄上人遊壽量寺。記所見。

동국이상국집 東國李相國集 · 이규보(李奎報) · 1241년 (고려 고종 28) 엮음 · 1251년 고쳐 보탬 · 단락 1 · 한자 400자 · 낭독 4.4분

동국이상국집 전집 권15 고려 이규보가 평생 지은 글을 아들 이함이 1241년에 엮어 새기고, 손자 이익배가 1251년에 고쳐 보탠 문집. 시와 부, 임금께 올린 표와 전, 절과 탑에 붙인 기, 비명과 묘지명, 편지와 서문, 그리고 몽골이 쳐들어온 때에 오간 국서까지 담겼다. 고구려 시조를 노래한 「동명왕편」이 전집 권3에 있고, 술과 거문고와 시를 벗 삼아 스스로 백운거사라 한 사람의 하루하루가 후집에 남아 있다. 책은 그가 눈을 앓다 붓을 놓는 마지막 시와, 그가 죽은 뒤 남이 지어 붙인 뇌서·묘지명으로 닫힌다.

殘鄕無勝境。古院有名樓。暇日乘淸興。輕裝占美遊。仰攀高蔦蔓。俯亂淺溪流。太守行無喝。樵童不避騶。自然同野老。何更視邦侯。坰馬晴方牧。巢禽暮自投。多生應記覽。到處似經由。入谷愁榛暗。逢村得路脩。驚鼯竄深樾。瘦鴨立澄溝。訪到客情款。出迎僧語柔。談空初詰曲。話舊更綢繆。躑躅登危構。寬閑瀉滯憂。一軒窮遠眺。萬像赴冥搜。日落烟光靜。虹明霽景浮。林喧無賴鳥。郊臥大平牛。夕露濃於雨。寒篁颯欲秋。霧平鋪白水。草遠展靑油。壞塔苔痕澁。虛窓樹影稠。屋雞翹繡頸。山雉靡莎鞦。井近宵猶汲。碁殘晚未收。月欞思慢笛。風檻戀重裘。初爲嘗茶至。還因有酒留。嫌喧屛騎從。諱獨嘯朋儔。小塢鸎捎蝶。深園雀啅彪。巖泉同鹿飮。林菓任猿偸。大瓠垂欹甕。圓梨落逬毬。芋畦深伏卵。菌木忽懸疣。物化觀無限。詩篇拾未周。怳如來別界。曠若釋幽囚。憶昨趨軒陛。連晨侍冕旒。斥來心惘惘。愁坐鬢颼颼。賴有優哉地。方驅欝矣愁。命奇雖此謫。天貺亦云優。野菜何妨煑。山醪未害篘。江山皆可意。薪水足充求。半世違玆樂。浮名是我讎。苦遭塵眯目。坐受雪侵頭。祿薄何須慕。官微尙可休。終身知有所。築室早營謀。但恐歸來晚。寧勞更相攸。

낡은 시골엔 뛰어난 경치가 없으나 옛 절에 이름난 누각이 있네 한가한 날 맑은 흥을 타고 가벼운 차림으로 좋은 놀이를 차지했네 우러러 높은 담쟁이 덩굴을 잡고 굽어 얕은 시내를 어지러이 건너네 태수가 다녀도 길잡이 소리가 없어 나무하는 아이도 마부를 피하지 않네 절로 시골 늙은이와 같으니 어찌 다시 고을 원으로 보랴 들판의 말은 날이 개어 마침 놓아 먹이고 둥지의 새는 저물어 절로 깃드네 여러 생을 기억하는 듯 이르는 곳마다 지나온 데 같네 골에 드니 덤불이 어두워 시름겹고 마을을 만나니 길이 길게 이어지네 놀란 날다람쥐는 깊은 그늘로 달아나고 여윈 오리는 맑은 도랑에 섰네 찾아가니 나그네 마음이 정답고 나와 맞는 중의 말이 부드럽네 공(空)을 이야기하며 처음엔 곡절을 따지고 옛일을 말하며 더욱 얽히고 정다워지네 머뭇머뭇 높은 다락에 오르니 너그럽고 한가하여 막힌 시름이 쏟아지네 한 마루에서 먼 조망을 다하니 온갖 형상이 그윽한 더듬음으로 달려오네 해가 지니 안개 빛이 고요하고 무지개가 밝으니 갠 경치가 떠오르네 숲에서 시끄러운 것은 부질없는 새요 들에 누운 것은 태평한 소일세 저녁 이슬은 비보다 짙고 찬 대숲은 소슬하여 가을이 되려 하네 안개는 평평하여 흰 물을 깔았고 풀은 멀리 푸른 기름을 펼쳤네 무너진 탑엔 이끼 자국이 껄끄럽고 빈 창엔 나무 그림자가 빽빽하네 집닭은 수놓은 목을 쳐들고 산꿩은 잔디를 스쳐 꼬리를 끄네 우물이 가까워 밤에도 긷고 바둑이 끝나 가는데 저물도록 거두지 못하네 달 비친 창살에선 느린 피리 소리를 생각하고 바람 부는 난간에선 두툼한 갖옷을 그리네 처음엔 차를 맛보러 왔다가 도로 술이 있어 머무네 시끄러움이 싫어 말 탄 종자를 물리고 홀로임이 꺼려 벗을 부르네 작은 둔덕엔 꾀꼬리가 나비를 채고 깊은 동산엔 참새가 얼룩범을 쪼는 듯하네 바위 샘은 사슴과 함께 마시고 숲 열매는 잔나비가 훔치게 두네 큰 박은 기운 독처럼 드리웠고 둥근 배는 튀는 공처럼 떨어지네 토란 두렁엔 깊이 알을 품었고 버섯 붙은 나무엔 문득 혹이 달렸네 물건의 변화를 봄이 끝이 없으니 시편으로 주워 담기가 두루 미치지 못하네 황홀하기가 딴 세계에 온 듯 후련하기가 갇힌 죄수를 풀어 준 듯 지난날 대궐 섬돌로 달려가 새벽마다 면류관을 모시던 일을 생각하네 쫓겨 오니 마음이 멍하고 시름겨워 앉으니 살쩍이 성기네 다행히 넉넉한 땅이 있어 바야흐로 답답한 시름을 몰아내네 운명이 기박하여 여기 귀양 왔으나 하늘이 준 것도 넉넉하다 하겠네 들나물을 삶은들 무엇이 해로우며 산 막걸리를 거른들 해될 것 없네 강산이 다 뜻에 맞고 땔감과 물이 구하는 데 넉넉하네 반평생 이 즐거움을 어겼으니 뜬 이름이 바로 내 원수였네 괴로이 티끌이 눈에 들었고 앉아서 눈이 머리를 침노함을 받았네 녹이 박하니 어찌 사모하랴 벼슬이 낮으니 그만두어도 좋으리 몸 마칠 곳이 있음을 아니 집 지을 일을 일찍 꾀하네 다만 돌아옴이 늦을까 두려울 뿐 어찌 다시 자리를 살피느라 수고하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