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동국이상국집 › 전집 권15

황보 서기가 소동파의 「임준성을 곡하다」 시운으로 지은 것에 차운하여 이 대간 미수를 곡하다次韻皇甫書記用東坡哭任遵聖詩韻。哭李大諫眉叟。

동국이상국집 東國李相國集 · 이규보(李奎報) · 1241년 (고려 고종 28) 엮음 · 1251년 고쳐 보탬 · 단락 1 · 한자 180자 · 낭독 1.9분

동국이상국집 전집 권15 고려 이규보가 평생 지은 글을 아들 이함이 1241년에 엮어 새기고, 손자 이익배가 1251년에 고쳐 보탠 문집. 시와 부, 임금께 올린 표와 전, 절과 탑에 붙인 기, 비명과 묘지명, 편지와 서문, 그리고 몽골이 쳐들어온 때에 오간 국서까지 담겼다. 고구려 시조를 노래한 「동명왕편」이 전집 권3에 있고, 술과 거문고와 시를 벗 삼아 스스로 백운거사라 한 사람의 하루하루가 후집에 남아 있다. 책은 그가 눈을 앓다 붓을 놓는 마지막 시와, 그가 죽은 뒤 남이 지어 붙인 뇌서·묘지명으로 닫힌다.

士當擇人交。不必論少長。門第顔回死。孔子稱天喪。况公眞我師。禮法繩吾放。不敢狎而媟。事以丈人行。我昔始垂髫。公時年方壯。我壯公已衰。片雪黏鬢上。始謁竹林會。此會群不黨。容我預其末。文戰補偏將。自爾漸忘年。多負士林謗。六君皆鬼錄。相繼歸黃壤。公獨頗耆壽。方有三台望。今日又盖棺。浮榮眞一餉。千里聞訃音。未識何日葬。東望哭聲長。重雲暗靑嶂。披篋得遺篇。宛如珠在掌。但愧三十年。竟莫窺宇量。生死已殊途。丹臺何處訪。行潦猶未羞。咄咄大無狀。

선비는 마땅히 사람을 가려 사귈 것이지 반드시 나이 적고 많음을 따질 것이 아니네 문하의 안회가 죽자 공자께서 하늘이 나를 버렸다 하셨네 하물며 공은 참으로 내 스승이라 예법으로 내 방자함을 잡아 주었네 감히 버릇없이 굴지 못하고 어른의 항렬로 섬겼네 내 옛날 처음 더벅머리였을 때 공은 그때 나이가 한창이었네 내가 한창일 때 공은 이미 쇠하여 눈송이가 살쩍에 붙었네 처음 죽림회(竹林會)에 뵈었는데 이 모임은 무리 짓되 편당하지 않았네 나를 그 끝에 참여하도록 허락하여 글 싸움에 편장(偏將)을 보태었네 그로부터 점점 나이를 잊었고 사림의 비방을 많이 졌네 여섯 분이 다 귀신 명부에 올라 잇달아 누런 흙으로 돌아갔네 공만이 자못 오래 살아 바야흐로 삼공의 바람이 있었네 오늘 또 관을 덮으니 뜬 영화가 참으로 한 끼니일세 천 리에서 부음을 들으니 어느 날 장사 지내는지 알지 못하네 동쪽을 바라보며 곡소리가 긴데 겹구름이 푸른 봉우리를 어둡게 하네 상자를 열어 남긴 글을 얻으니 완연히 구슬이 손바닥에 있는 듯하네 다만 부끄러운 것은 서른 해 동안 끝내 그 도량을 엿보지 못한 것이네 삶과 죽음이 이미 길이 다르니 단대(丹臺)를 어디에서 찾으랴 길바닥 물조차 아직 부끄러워하지 않으니 아 참으로 꼴이 아니로다

협주 3

公長我十餘年。

공은 나보다 열 몇 살 위였다.

公與趙,咸,吳等六君。爲竹林會。

공이 조씨·함씨·오씨 등 여섯 분과 죽림회를 만들었다.

予屢參七賢會。

내가 여러 번 칠현회에 참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