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공이 화답하기에 다시 답하다劉見和。復答之。
동국이상국집 전집 권16 고려 이규보가 평생 지은 글을 아들 이함이 1241년에 엮어 새기고, 손자 이익배가 1251년에 고쳐 보탠 문집. 시와 부, 임금께 올린 표와 전, 절과 탑에 붙인 기, 비명과 묘지명, 편지와 서문, 그리고 몽골이 쳐들어온 때에 오간 국서까지 담겼다. 고구려 시조를 노래한 「동명왕편」이 전집 권3에 있고, 술과 거문고와 시를 벗 삼아 스스로 백운거사라 한 사람의 하루하루가 후집에 남아 있다. 책은 그가 눈을 앓다 붓을 놓는 마지막 시와, 그가 죽은 뒤 남이 지어 붙인 뇌서·묘지명으로 닫힌다.
八載叨參奉引聯。未曾超上赭袍前。元宵御宴今宵侍。昨日愚儒此日賢。浪蕊浮花那有實。紫鉛丹粉假成妍。羡君西掖淸華地。芍藥吟高思湧泉。
여덟 해를 외람되이 인도하는 반열에 끼었으나 일찍이 붉은 곤룡포 앞으로 뛰어오르지 못했네 정월 대보름 임금의 잔치를 오늘 밤에야 모시니 어제의 어리석은 선비가 오늘의 어진 이일세 부질없는 꽃술 뜬 꽃에 무슨 열매가 있으랴 자줏빛 납과 붉은 분으로 거짓 고움을 이루었네 부러워라 그대는 서액(西掖)의 맑고 화려한 자리라 작약을 읊는 소리 높고 생각이 샘솟네
협주 1
四品侍臣皆假鞓帶故云。
사품 시신은 다 가죽띠를 빌려 쓴다. 그래서 말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