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동국이상국집 › 전집 권19

돌아간 호부상서 회곡거사(檜谷居士) 박공 인석(仁碩)의 초상에 붙인 찬 — 서를 아우른다故戶部尙書檜谷居士朴公仁碩眞贊幷序

동국이상국집 東國李相國集 · 이규보(李奎報) · 1241년 (고려 고종 28) 엮음 · 1251년 고쳐 보탬 · 단락 2 · 한자 333자 · 낭독 3.2분

동국이상국집 전집 권19 고려 이규보가 평생 지은 글을 아들 이함이 1241년에 엮어 새기고, 손자 이익배가 1251년에 고쳐 보탠 문집. 시와 부, 임금께 올린 표와 전, 절과 탑에 붙인 기, 비명과 묘지명, 편지와 서문, 그리고 몽골이 쳐들어온 때에 오간 국서까지 담겼다. 고구려 시조를 노래한 「동명왕편」이 전집 권3에 있고, 술과 거문고와 시를 벗 삼아 스스로 백운거사라 한 사람의 하루하루가 후집에 남아 있다. 책은 그가 눈을 앓다 붓을 놓는 마지막 시와, 그가 죽은 뒤 남이 지어 붙인 뇌서·묘지명으로 닫힌다.

1서

天與膽氣。厥生異人。則我鷄林朴公是已。嘗有濟世之志。慕諸葛孔明,王景略之爲人。尤嗜史學。說漢唐已來事。衮衮如昨所覩者。爲文得韓柳體。善諳練物理。至於飮食服餌之事。無不精妙。又工射藝及打毬。雖材官宿將。莫及也。然是亦公所不嗇而發於外者耳。其祕於中者。又不知幾許耶。嘗避亂南遊。遂卜居竹州之檜谷。自號檜谷居士。無慮三十餘年矣。會晉康公當國。聞公名。邀至京師。銳欲大用。旣揷翰。又從而簸之。故不十載。翺翔登八座。世猶以不相爲慊。公諱仁碩。字壽山。中古名宰相諱育和之嗣也。公沒久。予於公嗣繡衣君犀家。覩公友生李杞所畫公之像。感念舊好。不覺涕下。敢再拜作贊。標予幀額云。其詞曰。

하늘이 담과 기운을 주어 남다른 사람을 낳으니 곧 계림(鷄林)의 박공이 그이다. 일찍이 세상을 건질 뜻이 있어 제갈공명과 왕경략(王景略)의 사람됨을 사모했다. 특히 역사 공부를 좋아하여 한나라 당나라 이후의 일을 말할 때면 어제 본 것처럼 줄줄 이었다. 글을 지으면 한유와 유종원의 체를 얻었고, 사물의 이치를 잘 익혀 알아서 먹고 마시고 옷 입고 약 먹는 일에 이르기까지 정묘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또 활 쏘는 재주와 격구에 능하여 비록 재관(材官)이나 노련한 장수라도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이 또한 공이 아끼지 않고 밖으로 드러낸 것일 뿐이니, 그 속에 감춘 것은 또 얼마인지 알지 못한다. 일찍이 난을 피해 남쪽으로 다니다가 마침내 죽주(竹州)의 회곡(檜谷)에 자리 잡고 스스로 회곡거사라 불렀으니 무릇 삼십여 년이었다. 마침 진강공이 나라를 맡아 공의 이름을 듣고 서울로 불러 이르게 하여 크게 쓰려 하였다. 이미 붓을 꽂았고 또 따라서 까부르니, 그래서 열 해가 되지 않아 훨훨 날아 팔좌(八座)에 올랐다. 세상에서는 그래도 정승이 되지 못한 것을 서운하게 여겼다. 공의 휘는 인석이요 자는 수산(壽山)이니, 중고(中古)의 이름난 재상 휘 육화(育和)의 후사이다. 공이 세상을 떠난 지 오래인데, 나는 공의 아들인 수의군(繡衣君) 서(犀)의 집에서 공의 벗 이기(李杞)가 그린 공의 초상을 보고 옛 정을 생각하다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감히 두 번 절하고 찬을 지어 족자의 이마에 적는다. 그 말은 이러하다.

2찬

天地晦冥。戢鱗汚池。世淸道泰。撫翼來儀。龍耶鳳耶。隱顯惟時。一覩遺像。典刑在玆。頭岸鳥紗。身披鶴氅。雖畫者之尙異。爲此道裝與野狀。骨格不可掩兮。尙濟時經世者之相歟。人敬其表。莫揣孰是。以是贊之。發曳精粹。贊者云誰。居士姓李。

하늘과 땅이 어두울 때는 비늘을 거두고 흐린 못에 잠기고 세상이 맑고 도가 트이면 날개를 어루만지며 와서 춤추네 용인가 봉황인가 숨고 드러남이 오직 때에 달렸네 한 번 남은 초상을 보니 본보기가 여기에 있네 머리에는 오사모를 젖혀 쓰고 몸에는 학창의를 걸쳤네 비록 그린 이가 남다름을 숭상하여 이런 도사 차림과 들사람 모양을 지었으나 골격은 가릴 수 없으니 오히려 때를 건지고 세상을 다스릴 이의 상이 아닌가 사람들은 그 겉을 공경하나 어느 것이 참인지 헤아리지 못하네 이로써 찬을 지어 정수를 끌어내네 찬을 지은 이는 누구인가 거사이니 성은 이씨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