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동국이상국집 › 전집 권20

미침에 대한 변론狂辨

동국이상국집 東國李相國集 · 이규보(李奎報) · 1241년 (고려 고종 28) 엮음 · 1251년 고쳐 보탬 · 단락 1 · 한자 264자 · 낭독 2.3분

동국이상국집 전집 권20 고려 이규보가 평생 지은 글을 아들 이함이 1241년에 엮어 새기고, 손자 이익배가 1251년에 고쳐 보탠 문집. 시와 부, 임금께 올린 표와 전, 절과 탑에 붙인 기, 비명과 묘지명, 편지와 서문, 그리고 몽골이 쳐들어온 때에 오간 국서까지 담겼다. 고구려 시조를 노래한 「동명왕편」이 전집 권3에 있고, 술과 거문고와 시를 벗 삼아 스스로 백운거사라 한 사람의 하루하루가 후집에 남아 있다. 책은 그가 눈을 앓다 붓을 놓는 마지막 시와, 그가 죽은 뒤 남이 지어 붙인 뇌서·묘지명으로 닫힌다.

世之人皆言居士之狂。居士非狂也。凡言居士之狂者。此豈狂之尤甚者乎。彼且聞之歟。視之歟。居士之狂何似乎。裸身跣足。其水火是軼乎。傷齒血吻。其沙石是齧乎。仰而詬天咄咄乎。俯而叱地勃勃乎。散髮而號喝乎。脫褌而奔突乎。冬而不知其寒乎。夏而不知其熱乎。捉風乎。捕月乎。有此則已。苟無焉。何謂之狂哉。噫。世之人當閑處平居。容貌言語人如也。冠帶服飾人如也。及一且臨官莅公。手一也而上下無常。心一也而反側不同。倒目易聰。質移西東。眩亂相蒙。不知復乎中。卒至喪轡失軌。僵仆顚躓然後已。此則外能儼然。而內實狂者也。玆狂也不甚於向之軼水火齧沙石之類耶。噫世之人。多有此狂。而不能救己也。又何假笑居士之狂哉。居士非狂也。狂其迹而正其意者也。

세상 사람들이 다들 거사가 미쳤다고 말한다. 거사는 미치지 않았다. 무릇 거사가 미쳤다고 말하는 자들, 이들이야말로 미침이 더욱 심한 자가 아니겠는가. 그들은 듣고서 그러는가, 보고서 그러는가. 거사의 미침이 어떠하던가. 몸을 벗고 맨발로 물과 불을 넘나들던가. 이를 상하고 입에 피를 흘리며 모래와 돌을 씹던가. 우러러 하늘을 꾸짖으며 혀를 차던가. 굽어 땅을 꾸짖으며 발끈하던가. 머리를 풀고 소리를 지르던가. 잠방이를 벗고 내닫던가. 겨울에도 추운 줄 모르던가. 여름에도 더운 줄 모르던가. 바람을 잡던가. 달을 붙잡던가. 이런 일이 있다면 그만이거니와, 진실로 없다면 어찌 미쳤다고 하겠는가.

아, 세상 사람들은 한가히 지내고 평소에 있을 때에는 얼굴과 말이 남과 같고 관과 띠와 옷차림이 남과 같다. 그러다가 하루아침에 벼슬에 임하고 공무를 맡으면, 손은 하나인데 올리고 내림에 일정함이 없고 마음은 하나인데 뒤척임이 같지 않다. 눈을 뒤집고 귀를 바꾸며 바탕이 서쪽으로 갔다 동쪽으로 갔다 하고, 어지러이 서로 뒤덮여 가운데로 돌아올 줄 모른다. 마침내 고삐를 잃고 궤도를 벗어나 넘어지고 자빠져 엎어진 뒤에야 그친다. 이는 곧 겉으로는 의젓하나 속은 실로 미친 자다. 이 미침이 앞서 말한, 물과 불을 넘나들고 모래와 돌을 씹는 무리보다 심하지 않은가.

아, 세상 사람들이 이런 미침을 많이 지니고도 스스로를 구하지 못한다. 또 어찌 거사의 미침을 빌려 웃는가. 거사는 미치지 않았다. 자취를 미치게 하고 뜻을 바르게 하는 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