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동국이상국집 › 전집 권20

흙의 신령에게 묻다土靈問

동국이상국집 東國李相國集 · 이규보(李奎報) · 1241년 (고려 고종 28) 엮음 · 1251년 고쳐 보탬 · 단락 1 · 한자 352자 · 낭독 3.3분

동국이상국집 전집 권20 고려 이규보가 평생 지은 글을 아들 이함이 1241년에 엮어 새기고, 손자 이익배가 1251년에 고쳐 보탠 문집. 시와 부, 임금께 올린 표와 전, 절과 탑에 붙인 기, 비명과 묘지명, 편지와 서문, 그리고 몽골이 쳐들어온 때에 오간 국서까지 담겼다. 고구려 시조를 노래한 「동명왕편」이 전집 권3에 있고, 술과 거문고와 시를 벗 삼아 스스로 백운거사라 한 사람의 하루하루가 후집에 남아 있다. 책은 그가 눈을 앓다 붓을 놓는 마지막 시와, 그가 죽은 뒤 남이 지어 붙인 뇌서·묘지명으로 닫힌다.

劉夢得曰。天獨陽。不可問。問於大鈞。然則配天尊者后皇。后皇不可問。問於后皇所統五土之靈曰。汝特天地間垚然一物也。非特埋金玉石鐵瓦礫朽帑無情之物。亦能埋人矣。聖若孔丘。賢若顔氏。淸如伯夷。孝如曾子。剛腸者子儀。烈膽者李愬。文之雄者韓柳。詩之豪者李杜。其鴻識巨量。英精逸狀。與天角壯。汝忍埋之乎。佞若江充。惡如梁冀。罔君者斯高。盜國者安史。其姦腥毒臭。似不堪受。汝亦容埋乎。對曰。甚矣子之誤也。萬物歸根於土。自然之數也。何擇而不埋乎。我本爲天所命。爲地所尸。物無巨細善惡。皆得埋之。雖然。於其人也。有埋骨埋精魄者。有埋骨不能埋精魄者。汝得聞乎。若聖若賢。若廉孝忠烈。若才之豪逸者。其精也歸天。否則復生於人間。或爲順子純臣。或爲烈士英人。故其骨可埋。其精魄不可埋也。若佞若賊若欺罔回慝者。則吾能錮其精囚其魄。以我之坎陷之。以我之厚掩之。猶以爲慊以吾所藏巨石以檻之。以吾所出湧水以墊之。故非特埋其骨。亦能埋其精魄矣。予曰善乎。遂書其對。

유몽득(劉夢得)이 말하기를 「하늘은 홀로 양(陽)이라 물을 수 없으니 대균(大鈞)에게 묻는다」 하였다. 그렇다면 하늘과 짝하여 높은 것은 후황(后皇)이다. 후황에게도 물을 수 없으니 후황이 거느리는 다섯 흙의 신령에게 묻는다.

「너는 다만 하늘과 땅 사이의 우뚝한 한 물건일 뿐이다. 금과 옥과 돌과 쇠와 기와와 자갈과 썩은 재물 같은 정 없는 물건만 묻는 것이 아니라 또한 사람도 묻을 수 있다. 공구(孔丘) 같은 성인, 안씨 같은 어진 이, 백이 같은 맑은 이, 증자 같은 효자, 창자가 굳센 곽자의(郭子儀), 담이 매서운 이소(李愬), 문장의 웅걸인 한유와 유종원, 시의 호걸인 이백과 두보, 그 큰 식견과 넓은 도량과 뛰어난 정기와 빼어난 모습이 하늘과 씩씩함을 겨루었거늘 너는 차마 이들을 묻었느냐. 강충(江充) 같은 아첨꾼, 양기 같은 악인, 임금을 속인 이사(李斯)와 조고(趙高), 나라를 훔친 안녹산과 사사명, 그 간사한 비린내와 독한 냄새를 받아들이기 어려울 듯한데 너는 또한 이들도 받아 묻었느냐.」

대답하였다. 「심하다, 그대의 그릇됨이여. 만물이 흙으로 뿌리를 돌리는 것은 자연의 이치다. 무엇을 가려 묻지 않겠는가. 나는 본디 하늘이 명한 바요 땅이 맡긴 바라, 사물에 크고 작고 착하고 악함이 없이 다 묻을 수 있다.

그러나 사람에 있어서는 뼈도 묻고 정기와 넋도 묻는 것이 있고, 뼈는 묻어도 정기와 넋은 묻지 못하는 것이 있으니 그대는 들었는가. 성인 같고 어진 이 같고 청렴하고 효성스럽고 충성스럽고 매서운 이 같고 재주가 호걸스럽고 빼어난 이는, 그 정기가 하늘로 돌아가고 그렇지 않으면 인간 세상에 다시 태어난다. 혹 순한 아들과 순수한 신하가 되고 혹 매운 선비와 뛰어난 사람이 된다. 그러므로 그 뼈는 묻을 수 있어도 그 정기와 넋은 묻을 수 없다. 아첨꾼 같고 도적 같고 속이고 간사한 자는 내가 그 정기를 가두고 그 넋을 옥에 넣을 수 있다. 내 구덩이로 빠뜨리고 내 두터움으로 덮으며, 그래도 부족하게 여겨 내가 간직한 큰 돌로 우리를 삼고 내가 내는 솟는 물로 잠기게 한다. 그러므로 그 뼈만 묻는 것이 아니라 그 정기와 넋도 묻을 수 있다.」

내가 말했다. 「좋구나.」 마침내 그 대답을 적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