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발로 탐욕스러운 신하를 치려 한 일에 대한 설垸擊貪臣說
동국이상국집 전집 권21 고려 이규보가 평생 지은 글을 아들 이함이 1241년에 엮어 새기고, 손자 이익배가 1251년에 고쳐 보탠 문집. 시와 부, 임금께 올린 표와 전, 절과 탑에 붙인 기, 비명과 묘지명, 편지와 서문, 그리고 몽골이 쳐들어온 때에 오간 국서까지 담겼다. 고구려 시조를 노래한 「동명왕편」이 전집 권3에 있고, 술과 거문고와 시를 벗 삼아 스스로 백운거사라 한 사람의 하루하루가 후집에 남아 있다. 책은 그가 눈을 앓다 붓을 놓는 마지막 시와, 그가 죽은 뒤 남이 지어 붙인 뇌서·묘지명으로 닫힌다.
崔員外洪烈。志尙剛正。嘗掌記南京也。縛殺權臣義文所遣蒼頭之怙主勢橫恣割人者。由是著名矣。爲微官時。廣會中有一文士理邑不廉者。崔君擧飮器瓷垸將擊之。先以口銜指大嘯。以敫其氣。敢言曰。坐有貪者。吾欲擊之。昔者段秀實笏擊奸臣。今崔子將垸擊貪臣矣。雖不斥言其名。其人自省己之不廉。潛出而遁之。後有以此爲戲者。崔君輒怒。唯李郞中元老笑之。則雖以銜指大嘯狀示之。崔君不得怒。但低頭自笑而已。以與李君相好故也。
최 원외(員外) 홍렬(洪烈)은 뜻이 굳세고 바름을 숭상했다. 일찍이 남경(南京)의 장기(掌記)로 있을 때, 권신 의문(義文)이 보낸 종이 주인의 세력을 믿고 함부로 남의 것을 베어 가는 것을 묶어 죽였다. 이로 말미암아 이름이 났다.
낮은 벼슬에 있을 때 넓은 모임 가운데 고을을 다스리면서 청렴하지 못한 문사 한 사람이 있었다. 최군이 술그릇인 사기 사발을 들어 치려 하면서, 먼저 입에 손가락을 물고 크게 휘파람을 불어 그 기운을 돋우고 감히 말하였다. 「자리에 탐욕스러운 자가 있으니 내가 치려 한다. 옛날 단수실(段秀實)은 홀로 간신을 쳤고, 오늘 최자(崔子)는 사발로 탐욕스러운 신하를 치겠다.」 비록 그 이름을 드러내어 말하지는 않았으나, 그 사람이 스스로 자기의 청렴하지 못함을 살피고 몰래 나가 달아났다.
뒤에 이 일을 놀림거리로 삼는 이가 있으면 최군이 문득 노하였다. 오직 이 낭중 원로(元老)가 웃으면, 비록 손가락을 물고 크게 휘파람 부는 모양을 지어 보여도 최군이 노하지 못하고 다만 머리를 숙이고 스스로 웃을 뿐이었다. 이군과 서로 사이가 좋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