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동국이상국집 › 전집 권21

칠현에 대한 설七賢說

동국이상국집 東國李相國集 · 이규보(李奎報) · 1241년 (고려 고종 28) 엮음 · 1251년 고쳐 보탬 · 단락 1 · 한자 195자 · 낭독 2분

동국이상국집 전집 권21 고려 이규보가 평생 지은 글을 아들 이함이 1241년에 엮어 새기고, 손자 이익배가 1251년에 고쳐 보탠 문집. 시와 부, 임금께 올린 표와 전, 절과 탑에 붙인 기, 비명과 묘지명, 편지와 서문, 그리고 몽골이 쳐들어온 때에 오간 국서까지 담겼다. 고구려 시조를 노래한 「동명왕편」이 전집 권3에 있고, 술과 거문고와 시를 벗 삼아 스스로 백운거사라 한 사람의 하루하루가 후집에 남아 있다. 책은 그가 눈을 앓다 붓을 놓는 마지막 시와, 그가 죽은 뒤 남이 지어 붙인 뇌서·묘지명으로 닫힌다.

先輩有以文名世者某某等七人。自以爲一時豪俊。遂相與爲七賢。蓋慕晉之七賢也。每相會。飮酒賦詩。旁若無人。世多譏之。然後稍沮。時予年方十九。吳德全許爲忘年友。每携詣其會。其後德全遊東都。予復詣其會。李淸卿目予曰。子之德全。東遊不返。子可補耶。予立應曰。七賢豈朝廷官爵。而補其闕耶。未聞嵇,阮之後有承之者。闔座皆大笑。又使之賦詩。占春人二字。予立成口號曰。榮參竹下會。快倒甕中春。未識七賢內。誰爲鑽核人。一座頗有慍色。卽傲然大醉而出。予少狂如此。世人皆目以爲狂客也。

선배 가운데 글로 세상에 이름난 아무개 아무개 등 일곱 사람이 있었다. 스스로 한 시대의 호걸이라 여겨 마침내 서로 더불어 칠현(七賢)이 되었으니 대개 진(晉)나라의 칠현을 사모한 것이다. 만날 때마다 술을 마시고 시를 지으며 곁에 사람이 없는 듯이 하니 세상에서 많이들 나무랐다. 그 뒤에야 조금 누그러졌다.

그때 내 나이 열아홉이었는데 오덕전이 나이를 잊은 벗으로 허락하여 늘 그 모임에 데리고 갔다. 그 뒤 덕전이 동도(東都)에 노닐러 갔을 때 내가 다시 그 모임에 갔더니, 이청경(李淸卿)이 나를 보고 말하였다. 「그대의 덕전이 동쪽에 노닐러 가서 돌아오지 않으니 그대가 그 자리를 메울 수 있겠는가.」 내가 곧바로 응하여 말하였다. 「칠현이 어찌 조정의 벼슬이기에 그 빈자리를 메웁니까. 혜강과 완적의 뒤에 이를 이은 이가 있다는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 온 자리가 다 크게 웃었다.

또 시를 짓게 하며 「춘(春)」과 「인(人)」 두 글자를 운으로 주기에 내가 선 자리에서 구호를 지었다.

영광스럽게 대나무 아래 모임에 끼어 상쾌하게 독 속의 봄술을 기울이네 모르겠네 칠현 가운데 누가 씨를 뚫는 사람인가

온 자리가 자못 언짢은 낯빛이 있었다. 나는 곧 오만하게 크게 취하여 나왔다. 내가 젊어서 미친 것이 이와 같았으므로 세상 사람들이 다 미친 나그네로 지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