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璨) 수좌가 본사로 돌아가는 것을 보내며 쓴 서(序)送璨首座還本寺序
夫浮屠有一入靑山。草喫泉吸。竟一生不迹紅塵者。是誠髠首被緇者之所職然也。然以大道觀之。此亦孤立獨行。守一世之細節耳。又安足導哉。達人則不爾。能與物推移。而不染於物。能與世舒卷。而不滯於世。故不傷高行。而其慈液之及人也亦周矣。吾師之行乎世。遵此道也。赴經筵於王宮帝殿不辭也。受檀施於相門俟邸不拒也。亦與吾輩入詩社參酒場。遊戲自在。無可無不可。眞可謂達者也。然久於京輦。不能無桑下之戀。則世之人不可戶曉。焉知不以師爲不能無眷眷於人間世耶。今也得名藍於山水淸幽之地。手一筇頂一笠。飄飄若閑雲之返岫。則汩汩如我輩。得無羨乎心耶。雖然。僕亦老矣。亦豈不能豁然長往。陪杖屨於白雲靑嶂之側耶。餞席有賦詩以寵者。老居士以序也。
무릇 중 가운데 한 번 푸른 산에 들어가 풀을 씹고 샘물을 마시며 한평생 붉은 티끌에 발을 딛지 않는 이가 있으니, 이는 참으로 머리를 깎고 검은 옷을 입은 이의 직분이 그러한 것이다. 그러나 큰 도로 보면 이 또한 홀로 서서 홀로 행하며 한 세상의 잔 절개를 지키는 것일 뿐이니, 또 어찌 이끌 만하겠는가.
통달한 이는 그렇지 않다. 사물과 더불어 옮겨 가되 사물에 물들지 않고, 세상과 더불어 펴고 거두되 세상에 막히지 않는다. 그러므로 높은 행실을 상하지 않으면서도 그 자비의 물이 사람에게 미치는 것이 또한 두루 하다.
우리 스님이 세상에 행하는 것이 이 도를 따른다. 임금의 궁궐과 대궐 전각의 경연(經筵)에 나아가는 것을 사양하지 않고, 재상의 문과 제후의 집에서 시주 받는 것을 물리치지 않으며, 또한 우리들과 더불어 시 짓는 모임에 들고 술자리에 참여하여 놀이가 자재하니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다. 참으로 통달한 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서울에 오래 있으면 뽕나무 아래의 그리움이 없을 수 없으니, 세상 사람들을 집집이 깨우칠 수 없어 어찌 스님을 두고 인간 세상에 미련이 없지 못하다고 여기지 않을 줄 알겠는가. 이제 산수가 맑고 그윽한 땅에 이름난 절을 얻어, 손에 지팡이 하나 머리에 삿갓 하나로 나부껴 한가한 구름이 산굴로 돌아가듯 하니, 골몰하는 우리 같은 이가 마음에 부러움이 없을 수 있겠는가. 그렇기는 하나 나도 늙었다. 또 어찌 활짝 트여 길이 떠나 흰 구름 푸른 봉우리 곁에서 지팡이와 신을 모시지 못하겠는가. 전별 자리에 시를 지어 빛내는 이들이 있어 늙은 거사가 서를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