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덕전의 「극암(戟巖)」 시 발문吳德全戟巖詩跋尾
동국이상국집 전집 권21 고려 이규보가 평생 지은 글을 아들 이함이 1241년에 엮어 새기고, 손자 이익배가 1251년에 고쳐 보탠 문집. 시와 부, 임금께 올린 표와 전, 절과 탑에 붙인 기, 비명과 묘지명, 편지와 서문, 그리고 몽골이 쳐들어온 때에 오간 국서까지 담겼다. 고구려 시조를 노래한 「동명왕편」이 전집 권3에 있고, 술과 거문고와 시를 벗 삼아 스스로 백운거사라 한 사람의 하루하루가 후집에 남아 있다. 책은 그가 눈을 앓다 붓을 놓는 마지막 시와, 그가 죽은 뒤 남이 지어 붙인 뇌서·묘지명으로 닫힌다.
吳德全爲詩。遒邁勁俊。其詩之膾炙人口者。不爲不多。然未見能押強韻。儼若天成者。及於北山欲題戟巖。則使人占韻。其人故以險韻占之。先生題曰。北嶺巉巉石。邦人號戟巖。迥摏乘鶴晉。高刺上天咸。揉柄電爲火。洗鋒霜是監。何當作兵器。敗楚亦亡凡。其後有北朝使。能詩人也。聞此詩。再三歎美。問是人在否。令作何官。儻可見之耶。我國人茫然無以對。予聞之曰。何不道今方爲制誥學士之任耶。其昧權如此。可歎哉云。
오덕전이 시를 지으면 굳세고 뛰어나고 힘차고 빼어났다. 그 시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것이 적지 않다. 그러나 어려운 운을 눌러 쓰면서도 의젓하게 하늘이 이룬 듯한 것은 보지 못했다.
북산(北山)에서 극암을 읊으려 할 때 사람을 시켜 운을 정하게 하니 그 사람이 짐짓 험한 운으로 정했다. 선생이 이렇게 지었다.
북쪽 재의 가파른 바위를 이 고을 사람들이 극암이라 부르네 멀리 학 탄 진(晉)나라 사람을 찌를 듯하고 높이 하늘 위 함(咸)을 찌르네 자루를 다루는 데는 번개를 불로 삼고 칼끝을 씻는 데는 서리를 물로 삼네 어찌하면 병기를 만들어 초나라를 깨뜨리고 범(凡)나라도 없애랴
그 뒤 북조(北朝)의 사신이 왔는데 시를 잘하는 이였다. 이 시를 듣고 두세 번 감탄하며 아름답게 여기고 「이 사람이 있는가, 무슨 벼슬을 하게 했는가, 혹 만나 볼 수 있겠는가」 물었다. 이 나라 사람들이 멍하니 대답할 말이 없었다. 내가 이를 듣고 말했다. 「어찌 지금 바야흐로 제고(制誥) 학사의 임무를 맡고 있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그 임기응변에 어두움이 이와 같으니 탄식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