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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종창화집(睿宗唱和集)》 발문睿宗唱和集跋尾

동국이상국집 東國李相國集 · 이규보(李奎報) · 1241년 (고려 고종 28) 엮음 · 1251년 고쳐 보탬 · 단락 1 · 한자 229자 · 낭독 2.1분

동국이상국집 전집 권21 고려 이규보가 평생 지은 글을 아들 이함이 1241년에 엮어 새기고, 손자 이익배가 1251년에 고쳐 보탠 문집. 시와 부, 임금께 올린 표와 전, 절과 탑에 붙인 기, 비명과 묘지명, 편지와 서문, 그리고 몽골이 쳐들어온 때에 오간 국서까지 담겼다. 고구려 시조를 노래한 「동명왕편」이 전집 권3에 있고, 술과 거문고와 시를 벗 삼아 스스로 백운거사라 한 사람의 하루하루가 후집에 남아 있다. 책은 그가 눈을 앓다 붓을 놓는 마지막 시와, 그가 죽은 뒤 남이 지어 붙인 뇌서·묘지명으로 닫힌다.

夫天下之未至太平。則雖好文之主。有不得與學士詞臣吟詠風月。以遂優遊之樂矣。屬太平多暇。上不喜文章。則雖才如沈,宋,燕,許。安可預淸燕侍從。得爲雍容賡載之事耶。伏聞睿廟聰明天縱。制作如神。席太平之慶。乘化日之長。常與詞人逸士若郭璵等賦詩著詠。摐金振玉。動中韶鈞。流播於人間。多爲萬口諷頌。實太平盛事也。今所謂睿宗唱和集是已。行于世久矣。臣未得奉覽。始於某人家得而拜讀。想目覩當代之君臣慶會。嗟嘆不足。不覺涕之橫流也。弟恨不得生於其時。綴詞臣之尾。以鼓缶俚音。續天章之末耳。然今上尤好文。但朝夕致太平。則臣亦庶幾矣。又何恨不生於彼時哉。

무릇 천하가 태평에 이르지 못하면 비록 글을 좋아하는 임금이라도 학사와 사신(詞臣)과 더불어 바람과 달을 읊어 넉넉히 노니는 즐거움을 이룰 수 없다. 태평하여 겨를이 많은 때를 만나도 임금이 문장을 좋아하지 않으면, 비록 재주가 심전기·송지문·장열·소정 같더라도 어찌 맑은 잔치에 참여하고 곁에서 모시며 조용히 이어 짓는 일을 할 수 있겠는가.

엎드려 듣건대 예종께서는 총명이 하늘에서 내리시어 짓는 것이 신묘하셨다. 태평의 경사를 자리 삼고 교화된 날의 길음을 타시어, 늘 곽여(郭璵) 같은 시인과 일사(逸士)와 더불어 시를 짓고 읊으셨다. 쇠를 치고 옥을 떨치는 듯한 소리가 소악(韶樂)의 가락에 맞아 인간에 퍼져 많은 이의 입에 외워지니 실로 태평의 성한 일이다. 이제 이른바 《예종창화집》이 이것이다.

세상에 행해진 지 오래인데 신은 받들어 보지 못하다가 비로소 아무개의 집에서 얻어 절하고 읽었다. 당대의 임금과 신하가 경사스럽게 모인 것을 눈으로 보는 듯하여 감탄해도 모자라,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리는 줄 깨닫지 못했다. 다만 그때에 태어나 사신의 꼬리에 붙어 질장구 치는 속된 소리로 임금의 글 끝을 잇지 못한 것이 한스럽다. 그러나 지금 임금께서 더욱 글을 좋아하시니, 다만 아침저녁으로 태평을 이루신다면 신 또한 거의 그럴 수 있을 것이다. 또 어찌 그때에 태어나지 못한 것을 한하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