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동국이상국집 › 전집 권22

유자후(柳子厚)의 「수도론(守道論)」을 반박함反柳子厚守道論

동국이상국집 東國李相國集 · 이규보(李奎報) · 1241년 (고려 고종 28) 엮음 · 1251년 고쳐 보탬 · 단락 1 · 한자 322자 · 낭독 2.9분

동국이상국집 전집 권22 고려 이규보가 평생 지은 글을 아들 이함이 1241년에 엮어 새기고, 손자 이익배가 1251년에 고쳐 보탠 문집. 시와 부, 임금께 올린 표와 전, 절과 탑에 붙인 기, 비명과 묘지명, 편지와 서문, 그리고 몽골이 쳐들어온 때에 오간 국서까지 담겼다. 고구려 시조를 노래한 「동명왕편」이 전집 권3에 있고, 술과 거문고와 시를 벗 삼아 스스로 백운거사라 한 사람의 하루하루가 후집에 남아 있다. 책은 그가 눈을 앓다 붓을 놓는 마지막 시와, 그가 죽은 뒤 남이 지어 붙인 뇌서·묘지명으로 닫힌다.

柳子厚著論曰。守道不如守官。是非聖人之言。傳之者誤也。皮冠者。虞人之物也。物者。道之準也。守其物由其準。而後其道存焉。苟舍之。是失道也。官者。道之器。未有守道而失官者。而曰守道不如守官。蓋亦喪其本矣。柳子之此說。誠然矣。然予以爲此特極於上智者而論之耳。非聖人所以汎爲人而論之者也。何則。苟曰守官不如守道。則其若上智之人。能知道之爲守官之本。官之爲行道之器。而得守其本。則所謂器者。亦從而不喪。如柳子之說矣。若中下人者。未知道之爲守官之本。妄求道之所在。自以爲能守其道。而忽於守官。因以隳職喪局。則不旋踵蹈其禍矣。官可守歟。是喩人而陷於不義。烏在其爲聖人之言耶。苟以爲守道不如守官。而努力恪謹。能守其官。則亦庶幾於道矣。道豈不存乎。聖人言守道不如守官。是乃言守道者也。但言有先後耳。其意未始不同矣。是聖人所以優而柔之。使自求之之義也。何謂傳之者誤歟。

유자후가 논을 지어 말하였다. 「도를 지키는 것이 벼슬을 지키는 것만 못하다」는 것은 성인의 말이 아니요 전한 이가 잘못한 것이다. 가죽 관은 우인(虞人)의 물건이다. 물건은 도의 표준이다. 그 물건을 지키고 그 표준을 따른 뒤에 그 도가 있게 된다. 만약 이를 버리면 이는 도를 잃는 것이다. 벼슬은 도의 그릇이다. 도를 지키면서 벼슬을 잃은 이는 없었다. 그런데 「도를 지키는 것이 벼슬을 지키는 것만 못하다」 하니 이는 또한 그 근본을 잃은 것이다.

유자의 이 말은 참으로 그렇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기에 이는 다만 지극히 지혜로운 이에 국한하여 논한 것일 뿐이요, 성인이 널리 사람을 위하여 논한 것이 아니다. 어째서인가. 만약 「벼슬을 지키는 것이 도를 지키는 것만 못하다」 한다면, 저 지극히 지혜로운 사람은 도가 벼슬을 지키는 근본이 되고 벼슬이 도를 행하는 그릇이 됨을 알아 그 근본을 지킬 수 있으니, 이른바 그릇이라는 것도 또한 따라서 잃지 않을 것이다. 유자의 말과 같다.

그러나 중간이나 아래 사람은 도가 벼슬을 지키는 근본이 됨을 알지 못하고, 함부로 도가 있는 곳을 구하여 스스로 그 도를 지킬 수 있다 여기고 벼슬 지키는 것을 소홀히 한다. 그로 인해 직무를 무너뜨리고 판국을 잃으면 발꿈치를 돌리기도 전에 그 화를 밟게 된다. 벼슬을 지킬 수 있겠는가. 이는 사람을 깨우쳐 의롭지 못한 데 빠뜨리는 것이니, 어디에 성인의 말이 되는 바가 있겠는가.

만약 「도를 지키는 것이 벼슬을 지키는 것만 못하다」 하여, 힘써 삼가고 조심하여 그 벼슬을 지킬 수 있다면 또한 도에 거의 가까울 것이다. 도가 어찌 있지 않겠는가. 성인이 「도를 지키는 것이 벼슬을 지키는 것만 못하다」 한 것은 곧 도를 지키는 것을 말한 것이다. 다만 말에 앞뒤가 있을 뿐이요 그 뜻은 애초에 다르지 않다. 이는 성인이 넉넉하고 부드럽게 하여 스스로 구하게 하는 뜻이다. 어찌 전한 이가 잘못했다 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