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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자후가 《국어》를 그르다 한 것을 그르다 하는 논非柳子厚非國語論

동국이상국집 東國李相國集 · 이규보(李奎報) · 1241년 (고려 고종 28) 엮음 · 1251년 고쳐 보탬 · 단락 1 · 한자 496자 · 낭독 4.5분

동국이상국집 전집 권22 고려 이규보가 평생 지은 글을 아들 이함이 1241년에 엮어 새기고, 손자 이익배가 1251년에 고쳐 보탠 문집. 시와 부, 임금께 올린 표와 전, 절과 탑에 붙인 기, 비명과 묘지명, 편지와 서문, 그리고 몽골이 쳐들어온 때에 오간 국서까지 담겼다. 고구려 시조를 노래한 「동명왕편」이 전집 권3에 있고, 술과 거문고와 시를 벗 삼아 스스로 백운거사라 한 사람의 하루하루가 후집에 남아 있다. 책은 그가 눈을 앓다 붓을 놓는 마지막 시와, 그가 죽은 뒤 남이 지어 붙인 뇌서·묘지명으로 닫힌다.

柳子厚之非國語。予復以爲非也。左氏親受經於仲尼。凡事之可以因經而附者。皆釋於傳。採其餘以爲國語。旣載之傳。而又見於國語者。亦衆矣。何皆誣淫不槩于聖耶。柳子所以非其所非而非之者。請先以一二篇明之。國語曰。周之三川震。伯陽父曰。周將亡矣云云。柳子非之曰。山川者。特天地陰陽之氣。自動自休。自峙自休。是惡乎與我謀。或吸或吹。如輪如機。其孰能知之云云。苟如是則山川之崩震。果可謂非災耶。孔子書春秋地震五。山陵崩陁二。其餘災異。不可勝紀。孔子其可非之耶。詩曰。百川沸騰。山谷卒崩。詩可非之歟。況伯陽父所言。非特左氏書之國語也。後至司馬遷,班固。亦取而載之史矣。夫史者。標準萬世之書也。若誣淫不經之說。則二子何取而書之耶。國語曰。趙宣子驟諫公。公使鋤麑賊之。鋤麑自殺云云。柳子非之曰。宣子之諫君。爲社稷之衛久矣。麑胡不聞之。乃以假寐爲賢耶。不知其大而賢其小耶。是宣子大德不見赦。而以小敬免也。左氏多於文辭。以著其言云云。此亦非所非而非之者也。大抵人之於人。雖素所賢之者。當其時有見其失而非之者。素所未賢者。或於後。有見可敬而禮之者。麑雖素聞宣子之賢。以君命也。不得不往焉。則殺之其任也。脫若復見其失。則殺之心愈堅矣。及見其盛服假寐。而後益賢之而不忍害焉。乃反自殺。是固義也。故左氏旣書于傳。而又載之國語矣。柳子何於傳不非。而獨於此非之耶。凡非其所非而非之者。多此類也。

유자후가 《국어》를 그르다 한 것을 나는 다시 그르다 여긴다. 좌씨는 몸소 중니에게 경을 배웠다. 무릇 일 가운데 경에 따라 붙일 만한 것은 다 전(傳)에 풀이하고 그 나머지를 캐어 《국어》를 지었다. 이미 전에 실었는데 또 《국어》에 보이는 것도 또한 많다. 어찌 다 속이고 지나쳐 성인에 견주지 못한다 하겠는가. 유자가 그르다 할 것이 아닌 것을 그르다 한 것을, 청컨대 먼저 한두 편으로 밝히겠다.

《국어》에 「주나라의 세 냇물이 흔들렸다. 백양보(伯陽父)가 말하기를 '주나라가 장차 망하리라' 하였다」 하였다. 유자가 그르다 하여 말하기를 「산과 내는 다만 하늘과 땅의 음양의 기운이라 절로 움직이고 절로 그치며 절로 우뚝하고 절로 그치는 것이다. 이것이 어찌 우리와 꾀하겠는가. 혹 들이쉬고 혹 내쉬며 바퀴 같고 기틀 같으니 누가 그것을 알 수 있겠는가」 하였다.

만약 이와 같다면 산과 내가 무너지고 흔들리는 것이 과연 재앙이 아니라 할 수 있겠는가. 공자가 《춘추》에 지진을 다섯 번 적고 산과 언덕이 무너지고 기운 것을 두 번 적었으며, 그 나머지 재앙과 이변은 다 적을 수 없다. 공자를 그르다 할 수 있겠는가. 《시》에 「온갖 냇물이 끓어오르고 산과 골짜기가 마침내 무너진다」 하였다. 《시》를 그르다 할 수 있겠는가. 하물며 백양보가 말한 것은 다만 좌씨가 《국어》에 적은 것만이 아니다. 뒤에 사마천과 반고에 이르러서도 또한 취하여 역사에 실었다. 무릇 역사는 만세에 표준이 되는 글이다. 만약 속이고 지나쳐 법도에 맞지 않는 말이라면 두 사람이 어찌 취하여 적었겠는가.

《국어》에 「조선자(趙宣子)가 자주 임금에게 간하니 임금이 서예(鋤麑)를 시켜 그를 죽이게 했다. 서예가 스스로 죽었다」 하였다. 유자가 그르다 하여 말하기를 「선자가 임금에게 간한 것은 사직을 지키기 위함이 오래되었다. 서예가 어찌 이를 듣지 못했겠는가. 그런데 곧 옷을 입은 채 조는 것을 어질게 여겼는가. 그 큰 것을 알지 못하고 그 작은 것을 어질게 여긴 것인가. 이는 선자의 큰 덕은 용서받지 못하고 작은 공경으로 면한 것이다. 좌씨가 문사가 많아 그 말을 드러낸 것이다」 하였다.

이 또한 그르다 할 것이 아닌 것을 그르다 한 것이다. 대저 사람이 사람에 대하여, 비록 평소에 어질게 여기던 이라도 그때에 그 잘못을 보고 그르다 하는 이가 있고, 평소에 어질게 여기지 않던 이라도 혹 뒤에 공경할 만한 것을 보고 예로 대하는 이가 있다. 서예가 비록 평소에 선자의 어짊을 들었으나 임금의 명이므로 가지 않을 수 없었으니 그를 죽이는 것이 그의 임무였다. 만약 다시 그 잘못을 보았다면 죽이려는 마음이 더욱 굳어졌을 것이다. 그런데 옷을 갖추어 입고 조는 것을 본 뒤에야 더욱 어질게 여겨 차마 해치지 못하고 도리어 스스로 죽었으니 이는 참으로 의로운 것이다. 그러므로 좌씨가 이미 전에 적고 또 《국어》에도 실은 것이다. 유자는 어찌 전에서는 그르다 하지 않고 유독 여기서만 그르다 하는가. 무릇 그르다 할 것이 아닌 것을 그르다 한 것이 흔히 이런 종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