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동국이상국집 › 전집 권22

조조(鼂錯)의 원통함을 씻어 주는 논爲鼂錯雪冤論

동국이상국집 東國李相國集 · 이규보(李奎報) · 1241년 (고려 고종 28) 엮음 · 1251년 고쳐 보탬 · 단락 1 · 한자 520자 · 낭독 4.6분

동국이상국집 전집 권22 고려 이규보가 평생 지은 글을 아들 이함이 1241년에 엮어 새기고, 손자 이익배가 1251년에 고쳐 보탠 문집. 시와 부, 임금께 올린 표와 전, 절과 탑에 붙인 기, 비명과 묘지명, 편지와 서문, 그리고 몽골이 쳐들어온 때에 오간 국서까지 담겼다. 고구려 시조를 노래한 「동명왕편」이 전집 권3에 있고, 술과 거문고와 시를 벗 삼아 스스로 백운거사라 한 사람의 하루하루가 후집에 남아 있다. 책은 그가 눈을 앓다 붓을 놓는 마지막 시와, 그가 죽은 뒤 남이 지어 붙인 뇌서·묘지명으로 닫힌다.

古之人論漢之英明之君。則首稱文景。然以誅錯事觀之。景帝不足謂之明矣。且國政。非臣之所能專斷而行之者也。陳其利害而取斷於君上者。臣之職也。受下之謀議。商酌可否。而後行之者。君之明也。錯旣爲漢臣。患諸侯之彊大難制。欲因過削地。以尊京師。此可謂忠於國者也。遂以此奏於上。上亦不能獨裁。與公卿列侯宗室雜議而後行之。則咎不獨在錯矣。脫七國實爲錯而發兵者。業已用其計而致此。則是亦朝廷之恥也。宜徐觀其變。然後誅之未晚也。錯之削諸侯。亦非不慮其反逆而策之者也。宜委以制禦之任。有不可而後誅之亦可矣。況吳王卽山鑄錢。煮海爲鹽。爲反計數十年。而後與六國發之。則名雖誅錯。其意不在錯也。苟其勢可以抗京師。則雖急斬錯以謝。祗自示中國之輕耳。終不爲罷兵明矣。苟不能以區區七國能抗京師。則雖不誅錯。其若予何耶。其誅之也。雖斷自上心。猶爲不可。況聽其讎者之讒。以戮忠臣。內爲袁盎復讎。外爲諸侯報仇。其不明孰大焉。又使中尉紿載行市。是欺臣也。以天子而斬一鼂錯。何必誑耶。是亦非人君之政也。過孰甚焉。惜也銳於爲國遠慮。而反受誅戮。鼂錯之冤。不亦甚乎。以文帝之疏斥賈誼。較諸此則彼特過之小小者耳。況誼之斥也。未幾復徵。傅上之愛子。而其策雖未盡見用。其所採而施於世者亦多矣。則不可謂大失其志者也。然後世猶以不大用爲之冤也。況如錯者乎。予是以譏景帝之不明。以此雪錯之深冤也。嗚呼。有努力扶我身者。誤而少失其手。則未及踣地。而敢怒斥耶。

옛사람이 한나라의 영명한 임금을 논할 때는 문제와 경제를 첫손에 꼽는다. 그러나 조조를 벤 일로 보면 경제는 밝다고 하기에 넉넉하지 않다.

또 나라의 정사는 신하가 오로지 결단하여 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이해를 늘어놓고 임금에게 결단을 받는 것이 신하의 직분이요, 아랫사람의 꾀와 의논을 받아 옳고 그름을 헤아린 뒤에 행하는 것이 임금의 밝음이다. 조조가 이미 한나라의 신하가 되어 제후가 강대하여 제어하기 어려움을 근심하고, 허물을 빌미로 땅을 깎아 서울을 높이고자 했으니 이는 나라에 충성한 것이라 할 만하다. 마침내 이를 임금께 아뢰니 임금도 홀로 결단하지 못하고 공경과 열후와 종실과 더불어 두루 의논한 뒤에 행하였다. 그러니 허물이 조조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설령 일곱 나라가 실로 조조 때문에 군사를 일으켰다 하더라도, 이미 그 계책을 써서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이 또한 조정의 부끄러움이다. 마땅히 천천히 그 변화를 살핀 뒤에 베어도 늦지 않았다. 조조가 제후의 땅을 깎은 것도 또한 그 반역을 헤아리지 않고 꾀한 것이 아니다. 마땅히 막고 다스리는 임무를 맡겨 보고 할 수 없게 된 뒤에 베어도 좋았을 것이다.

하물며 오왕(吳王)은 산에 나아가 돈을 부어 내고 바닷물을 달여 소금을 만들며 수십 년 동안 반란을 꾀한 뒤에 여섯 나라와 함께 일으켰다. 그러니 이름은 비록 조조를 벤다 하였으나 그 뜻은 조조에게 있지 않았다. 만약 그 형세가 서울에 맞설 만하다면, 비록 급히 조조를 베어 사과하더라도 다만 중국의 가벼움을 스스로 보일 뿐이요 끝내 군사를 파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만약 자잘한 일곱 나라로 서울에 맞설 수 없다면, 비록 조조를 베지 않더라도 그들이 나를 어찌하겠는가.

그를 벤 것이 비록 임금의 마음에서 결단한 것이라도 오히려 옳지 않은데, 하물며 그 원수 되는 이의 참소를 듣고 충신을 죽여 안으로는 원앙(袁盎)을 위해 원수를 갚고 밖으로는 제후를 위해 원수를 갚았으니, 그 밝지 못함이 무엇이 이보다 크겠는가. 또 중위(中尉)를 시켜 속여 수레에 태워 저자로 가게 하였으니 이는 신하를 속인 것이다. 천자로서 조조 하나를 베는 데 어찌 반드시 속여야 하는가. 이 또한 임금의 정사가 아니다. 허물이 무엇이 이보다 심하겠는가.

애석하다. 나라를 위해 멀리 헤아리기에 날카로웠으나 도리어 베임을 당했으니 조조의 원통함이 또한 심하지 않은가. 문제가 가의를 멀리 물리친 것을 이에 견주면 저것은 다만 허물 가운데 자잘한 것일 뿐이다. 하물며 가의는 물리쳐진 뒤 얼마 안 되어 다시 불려 임금의 사랑하는 아들의 스승이 되었고, 그 계책이 비록 다 쓰이지는 못했으나 캐어서 세상에 베푼 것이 또한 많으니 그 뜻을 크게 잃었다고 할 수 없다. 그런데도 후세에서 오히려 크게 쓰이지 못한 것을 원통하게 여긴다. 하물며 조조 같은 이랴.

나는 이 때문에 경제의 밝지 못함을 나무라고 이로써 조조의 깊은 원통함을 씻는다. 아, 힘써 내 몸을 붙들어 주는 이가 있는데 잘못하여 조금 그 손을 놓쳤다 하여, 땅에 넘어지기도 전에 감히 성내어 물리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