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서》 두보전에 붙인 사신(史臣)의 찬에 대한 의논唐書杜甫傳史臣贊議
予讀唐書杜子美傳。史臣作贊。美其詩之汪涵萬狀。固悉矣。其末繼之曰。韓愈於文章愼許可。至歌詩獨推曰。李杜文章在。光焰萬丈長。予以爲此則褒之不若不褒也。何則。士有潛德內朗。不大震耀於世者。史臣於直筆之際。力欲揚暉發華。以信於後世。而猶恐人之有以爲譽之過當。則引名賢之辭。憑以爲固可也。至如李杜則其詩如熊膰豹胎。無有不適於人口者。其名固已若雷霆星斗。世無不仰其光駭其響者。非必待昌黎詩之一句。然後益顯者也。宋公何苦憑證其句。自示史筆之弱耶。引其詩或可。其曰愼許可。甚矣。凡言某人愼許可人。而獨許可某人者。猶有慊之之意也。愈若不許可。而無此一句。則史臣其不贊之耶。嗚呼。史臣之言弱也。此贊亦引元稹所謂自詩人已來未有如子美者。此則微之所以直當杜甫切評。而論之者雖引之或可矣。若退之之一句。則將贈友人而偶發於章句者。而非特地論杜公者也。然韓愈。大儒也。雖一句非妄發者。引之或可也。如不言愼許可。則宋公之言。免於弱也。
내가 《당서》의 두자미(杜子美) 전을 읽으니, 사신이 찬을 지어 그 시가 만 가지 모습을 넓게 머금었음을 아름답게 여겼으니 참으로 다 갖추었다. 그 끝에 이어 말하기를 「한유는 문장에 대해 인정하기를 삼갔는데, 시가에 이르러서는 유독 '이백과 두보의 문장이 있어 빛나는 불꽃이 만 길이나 길다'고 추어올렸다」 하였다.
나는 이것이야말로 기리는 것이 기리지 않는 것만 못하다고 여긴다. 어째서인가. 선비 가운데 숨은 덕이 속으로 밝되 세상에 크게 떨쳐 빛나지 못한 이가 있어, 사신이 곧은 붓을 쓰는 즈음에 힘써 그 빛을 드날리고 꽃을 피워 후세에 믿게 하려 하되 오히려 사람들이 지나치게 기렸다 여길까 두려우면, 이름난 어진 이의 말을 끌어 그것에 기대어 굳게 하는 것이 옳다.
이백과 두보 같은 이에 이르러서는 그 시가 곰 발바닥과 표범 새끼집 같아 사람의 입에 맞지 않는 것이 없고, 그 이름이 참으로 이미 우레와 별 같아 세상에 그 빛을 우러르고 그 울림에 놀라지 않는 이가 없다. 반드시 창려(昌黎)의 시 한 구절을 기다린 뒤에야 더욱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송공(宋公)이 무엇이 괴로워 그 구절을 끌어 증거로 삼아 스스로 사필(史筆)의 약함을 보이는가.
그 시를 끄는 것은 혹 괜찮다. 그러나 「인정하기를 삼갔다」고 한 것은 심하다. 무릇 아무개가 남을 인정하기를 삼가는데 유독 아무개만 인정했다고 말하는 것은, 오히려 그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뜻이 있는 것이다. 한유가 만약 인정하지 않아 이 한 구절이 없었다면 사신은 그를 찬하지 않았겠는가. 아, 사신의 말이 약하다.
이 찬은 또 원진(元稹)이 이른바 「시인이 있은 이래로 두자미 같은 이는 없었다」는 말을 끌었다. 이는 원진이 곧바로 두보를 절실히 평한 것이니 논하는 이가 이를 끄는 것은 혹 괜찮다. 그러나 한퇴지의 한 구절은 장차 벗에게 주려다가 우연히 글귀에 나온 것이지 특별히 두공(杜公)을 논한 것이 아니다. 그렇기는 하나 한유는 큰 선비이니 비록 한 구절이라도 함부로 낸 것이 아니므로 이를 끄는 것은 혹 괜찮다. 만약 「인정하기를 삼갔다」고 말하지 않았더라면 송공의 말이 약함을 면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