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목전(杜牧傳)의 시루가 갈라진 일에 대한 반박杜牧傳甑裂事駮
牧傳。有牧之死。炊甑裂。牧曰不祥。予駮之曰。此拘忌小數淫巫瞽史之說耳。牧曰不祥。非醇儒所當言者。史臣宋公宜逸而猶書之。亦雜也。書曰。牝鷄之晨。惟家之索。夫牝固無司晨之任。牝而晨焉。家之怪。孰大於是。甚於國之雉雊鼎耳。鼠舞端門之妖。故聖人存而不删。若甑之裂者。或因火烈。或因水燥。而非必以怪。牧之死適會耳。不足以爲的驗。以予所試觀之。予家去歲秋九月。方爨甑剨而裂。予殊不以爲怪。又今歲二月。甑鳴如牛吼。俄而大裂如人劃破者。竈婦𢥠然失色。奔告於予。予笑自若。適有術人至曰。此不利主人。非痛祈解。恐不免。室人欲亟從其言。予止之曰。死生有命。苟有死期。怪特先兆耳。祈解何益。苟無焉。甑裂其如予何。果不死至于今。且杜牧以何無狀。遇甑一裂而死。予以何德。被甑再裂而能免耶。此不驗明準也。吾恐後人溺於其說。故書以曉之。
두목전에 「두목이 죽을 때 밥 짓는 시루가 갈라졌다. 두목이 상서롭지 못하다 하였다」는 말이 있다. 내가 반박한다.
이는 자잘한 술수에 얽매인 음탕한 무당과 눈먼 사관의 말일 뿐이다. 두목이 상서롭지 못하다 한 것은 순수한 선비가 마땅히 할 말이 아니다. 사신 송공이 마땅히 빼야 할 것을 오히려 적었으니 또한 잡스럽다.
《서》에 「암탉이 새벽에 우는 것은 오직 그 집이 다하는 것이다」 하였다. 무릇 암컷은 참으로 새벽을 맡는 임무가 없는데 암컷이면서 새벽에 울면 집안의 괴이함이 무엇이 이보다 크겠는가. 나라에 꿩이 울고 솥귀에 앉으며 쥐가 단문(端門)에서 춤춘 요괴보다 심하다. 그러므로 성인이 두고 깎지 않았다.
시루가 갈라지는 것 같은 것은 혹 불이 세기 때문이고 혹 물이 마르기 때문이지 반드시 괴이한 것이 아니다. 두목의 죽음은 마침 마주친 것일 뿐이니 확실한 징험으로 삼기에 넉넉하지 않다.
내가 시험해 본 것으로 보건대, 우리 집에서 지난해 가을 구월에 막 불을 때는데 시루가 쩍 하고 갈라졌다. 나는 조금도 괴이하게 여기지 않았다. 또 올해 이월에 시루가 소 우는 소리처럼 울더니 이윽고 사람이 그어 깨뜨린 것처럼 크게 갈라졌다. 부엌 아낙이 두려워 낯빛을 잃고 달려와 내게 고했다. 나는 웃으며 태연하였다. 마침 술사가 이르러 말하기를 「이는 주인에게 이롭지 않으니 통렬히 빌어 풀지 않으면 아마 면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였다. 집사람이 급히 그 말을 따르려 하기에 내가 말렸다. 「죽고 사는 것은 명이 있다. 만약 죽을 때가 있다면 괴이함은 다만 앞선 조짐일 뿐이니 빌어 푼들 무슨 보탬이 되겠는가. 만약 그것이 없다면 시루가 갈라진들 나를 어찌하겠는가.」 과연 죽지 않고 지금에 이르렀다.
또 두목은 무슨 잘못이 있어 시루가 한 번 갈라지자 죽었고, 나는 무슨 덕이 있어 시루가 두 번 갈라졌는데도 면할 수 있었는가. 이는 징험되지 않는 밝은 표준이다. 나는 뒷사람이 그 말에 빠질까 두려워 적어서 깨우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