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동국이상국집 › 전집 권22

사마온공(司馬溫公)이 물독을 깨뜨리는 그림 뒤에 쓰다書司馬溫公擊甕圖後

동국이상국집 東國李相國集 · 이규보(李奎報) · 1241년 (고려 고종 28) 엮음 · 1251년 고쳐 보탬 · 단락 1 · 한자 319자 · 낭독 2.9분

동국이상국집 전집 권22 고려 이규보가 평생 지은 글을 아들 이함이 1241년에 엮어 새기고, 손자 이익배가 1251년에 고쳐 보탠 문집. 시와 부, 임금께 올린 표와 전, 절과 탑에 붙인 기, 비명과 묘지명, 편지와 서문, 그리고 몽골이 쳐들어온 때에 오간 국서까지 담겼다. 고구려 시조를 노래한 「동명왕편」이 전집 권3에 있고, 술과 거문고와 시를 벗 삼아 스스로 백운거사라 한 사람의 하루하루가 후집에 남아 있다. 책은 그가 눈을 앓다 붓을 놓는 마지막 시와, 그가 죽은 뒤 남이 지어 붙인 뇌서·묘지명으로 닫힌다.

古之論者。有謂司馬溫公自爲兒擊甕時。已有活人手段。此誠的論也。君實果歷相四朝。奮發謀議。興利除害。安國家濟蒼生。可謂宋之社稷臣也。此非刻勵習熟而爲之。其漸已見於乳臭中。固受之天者。或曰。君實能鍛成其才。適會居位輔政。有以濟蒼生耳。凡善惡與習而遷。兒時事不足爲的驗也。予曰。非也。昔孔子爲兒時。嘗陳俎豆爲戲。果興文敎。爲萬世師。然此聖人之事。不可以常品論之。若以常品觀之。予少時怯乘馬。馬有駸駸其足者。面蒼然無生色。甚戰也。至今尙爾畏騎駿足。凡奉使乘傳。必擇駑者而後馭之。又生二歲時。常喜執書冊。以手指點其字而若將讀之。父母曰。此兒當業文者也。今果以進士出身。備小儒之數。由此觀之。君實之擊甕。天性也。其安國家濟蒼生。固亦受之天者。非熟習而爲之者審矣。何謂兒時事不足爲驗耶。非特此也。凡善惡勇怯。仁與不仁。孝與不孝。皆於兒時。可略見也。何獨司馬也耶。

옛날 논하는 이 가운데 「사마온공은 아이 적에 물독을 깨뜨릴 때부터 이미 사람을 살리는 수단이 있었다」 한 이가 있으니 이는 참으로 확실한 논이다. 군실(君實)은 과연 네 조정의 정승을 지내며 떨쳐 일어나 꾀하고 의논하여, 이로운 것을 일으키고 해로운 것을 없애 나라를 편안히 하고 백성을 건졌으니 송나라의 사직을 맡은 신하라 할 만하다. 이는 새기고 힘써 익혀서 된 것이 아니라 그 조짐이 이미 젖내 나는 어린 시절에 보였으니 참으로 하늘에서 받은 것이다.

어떤 이가 말하였다. 「군실이 그 재주를 단련해 이루고 마침 자리에 올라 정사를 도울 기회를 만나 백성을 건졌을 뿐입니다. 무릇 선과 악은 익힘에 따라 옮기니 아이 적 일은 확실한 징험으로 삼기에 넉넉하지 않습니다.」

내가 말하였다. 「아니다. 옛날 공자가 아이 적에 일찍이 제기를 벌여 놓고 놀았는데 과연 문교(文敎)를 일으켜 만세의 스승이 되었다. 그러나 이는 성인의 일이니 예사 품등으로 논할 수 없다. 예사 품등으로 보자면, 나는 어릴 때 말 타기를 겁내어 말이 발을 빨리 놀리면 낯빛이 새파래져 생기가 없고 몹시 떨었다. 지금도 오히려 그러하여 좋은 말 타기를 두려워한다. 무릇 사명을 받들어 역마를 탈 때에도 반드시 둔한 말을 가린 뒤에야 몬다. 또 두 살 때에 늘 책 잡기를 좋아하여 손으로 그 글자를 가리키며 장차 읽으려는 듯이 하니, 부모가 말하기를 「이 아이는 마땅히 글을 업으로 삼을 이다」 하였다. 이제 과연 진사로 출신하여 하찮은 선비의 수에 끼었다. 이로 보건대 군실이 물독을 깨뜨린 것은 천성이다. 그가 나라를 편안히 하고 백성을 건진 것도 참으로 또한 하늘에서 받은 것이지 익혀서 된 것이 아님이 분명하다. 어찌 아이 적 일이 징험으로 삼기에 넉넉하지 않다 하는가.」

이뿐만이 아니다. 무릇 선과 악과 용맹과 겁냄, 어짊과 어질지 못함, 효도와 효도하지 않음이 다 아이 적에 대강 볼 수 있다. 어찌 유독 사마씨뿐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