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동국이상국집 › 전집 권22

굴원은 죽는 것이 마땅하지 않았다는 논屈原不宜死論

동국이상국집 東國李相國集 · 이규보(李奎報) · 1241년 (고려 고종 28) 엮음 · 1251년 고쳐 보탬 · 단락 1 · 한자 528자 · 낭독 4.9분

동국이상국집 전집 권22 고려 이규보가 평생 지은 글을 아들 이함이 1241년에 엮어 새기고, 손자 이익배가 1251년에 고쳐 보탠 문집. 시와 부, 임금께 올린 표와 전, 절과 탑에 붙인 기, 비명과 묘지명, 편지와 서문, 그리고 몽골이 쳐들어온 때에 오간 국서까지 담겼다. 고구려 시조를 노래한 「동명왕편」이 전집 권3에 있고, 술과 거문고와 시를 벗 삼아 스스로 백운거사라 한 사람의 하루하루가 후집에 남아 있다. 책은 그가 눈을 앓다 붓을 놓는 마지막 시와, 그가 죽은 뒤 남이 지어 붙인 뇌서·묘지명으로 닫힌다.

古有殺身以成仁。若比干者是已。有殺身以成節者。若伯夷叔齊是已。比干當紂時。其惡不可不諫。諫而被其誅。是死得其所而成其仁也。虎王伐紂。猶有慙德。凡在義士。不可忍視。故孤竹二子。扣馬而諫。諫而不見聽。恥食其粟而死。是亦死得其所而成其節也。若楚之屈原。擧異於是。死不得其所。祇以顯君之惡耳。夫讒說之蔽明。邪諂之害正。自古而然。非楚國君臣而已。原以方正端直之志。爲王寵遇。專任國政。宜乎見同列之妬嫉也。故爲上官大夫所譖。見疏於王。此固常理而不足以爲恨者也。原於此時。宜度王之不寤。滅迹遠遁。混于常流。庶使其王之惡。漸久而稍滅也。原不然。復欲見容於襄王。反爲令尹子蘭所讒。放逐江潭。作湘之纍囚。至是雖欲遁去。其可得乎。是故。憔悴其容。行吟澤畔。作爲離騷。多有怨曠譏刺之辭。則是亦足以顯君之惡。而乃復投水而死。使天下之人。深咎其君。乃至楚俗爲競渡之曲。以慰其溺。賈誼作投水之文。以弔其冤。益使王之惡。大暴於萬世矣。湘水有盡。此惡何滅。且紂之惡。久已浮於天下。雖比干不死。未免爲獨夫而取刺於萬世矣。虎王擧大義忘小嫌。卒王天下。功業施于萬世矣。則其德不以二子之死大損也。況二子非虎王之臣也。乃紂之臣。諫伐其君而死。以成其節也。何與於虎王哉。若懷王則聽讒疏賢而已。當時此事。無國無之。原若不死。則王之惡。想不至大甚。吾故曰。原死非其所。以顯其君之惡耳。予之此論。乃所以雪原之冤。而益貶其君之惡。庶以諷後之信讒斥賢耳。非固譏原也。惜也其死之非其所宜也。嗚戲。

옛날에 몸을 죽여 인(仁)을 이룬 이가 있으니 비간(比干) 같은 이가 이러하다. 몸을 죽여 절개를 이룬 이가 있으니 백이와 숙제 같은 이가 이러하다. 비간은 주(紂)의 때를 당하여 그 악을 간하지 않을 수 없었고 간하다가 베임을 당했으니, 이는 죽어 그 자리를 얻어 그 인을 이룬 것이다. 무왕이 주를 칠 때에도 오히려 부끄러운 덕이 있었으니 무릇 의로운 선비로서는 차마 볼 수 없었다. 그러므로 고죽(孤竹)의 두 아들이 말고삐를 잡고 간하였고, 간하여 들어지지 않자 그 곡식 먹기를 부끄러워하다가 죽었으니 이 또한 죽어 그 자리를 얻어 그 절개를 이룬 것이다.

초나라의 굴원 같은 이는 온통 이와 다르다. 죽어도 그 자리를 얻지 못하고 다만 임금의 악을 드러냈을 뿐이다. 무릇 참소하는 말이 밝음을 가리고 아첨이 바름을 해치는 것은 예로부터 그러했으니 초나라 임금과 신하뿐이 아니다. 굴원은 방정하고 단정하고 곧은 뜻으로 왕의 총애를 받아 나라의 정사를 오로지 맡았으니 같은 반열의 시기와 질투를 받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므로 상관대부(上官大夫)의 참소를 입어 왕에게 멀어졌으니, 이는 참으로 예사 이치라 한할 것이 못 된다.

굴원은 이때에 마땅히 왕이 깨닫지 못할 것을 헤아려 자취를 감추고 멀리 달아나 예사 무리에 섞여, 그 왕의 악이 세월이 오래되면서 점점 사라지게 했어야 했다. 굴원은 그렇게 하지 않고 다시 양왕(襄王)에게 받아들여지고자 하다가 도리어 영윤(令尹) 자란(子蘭)의 참소를 입어 강담(江潭)으로 쫓겨나 상수(湘水)의 죄수가 되었다. 이때에 이르러서는 비록 달아나고자 한들 될 수 있었겠는가.

그러므로 그 모습을 초췌히 하고 못가를 거닐며 읊어 「이소」를 지었는데, 원망하고 비어 있고 나무라고 찌르는 말이 많으니 이 또한 임금의 악을 드러내기에 넉넉하다. 그런데도 다시 물에 몸을 던져 죽어 천하 사람으로 하여금 그 임금을 깊이 허물하게 하였다. 마침내 초나라 풍속에 배 젓는 노래를 지어 그 빠져 죽은 것을 위로하고 가의가 물에 던지는 글을 지어 그 원통함을 조상하기에 이르렀으니, 더욱 왕의 악으로 하여금 만세에 크게 드러나게 하였다. 상수는 다함이 있어도 이 악은 언제 사라지겠는가.

또 주의 악은 오래전에 이미 천하에 떠 있었으니, 비록 비간이 죽지 않았더라도 홀로된 사내가 되어 만세에 나무람을 받는 것을 면하지 못했을 것이다. 무왕은 큰 의를 들어 작은 꺼림을 잊고 마침내 천하에 왕 노릇 하여 공업이 만세에 베풀어졌으니, 그 덕은 두 아들의 죽음으로 크게 덜리지 않았다. 하물며 두 아들은 무왕의 신하가 아니라 곧 주의 신하로서 제 임금을 치는 것을 간하다가 죽어 그 절개를 이룬 것이니 무왕과 무슨 상관이겠는가.

회왕(懷王) 같은 이는 참소를 듣고 어진 이를 멀리했을 뿐이다. 그때에는 이런 일이 없는 나라가 없었다. 굴원이 만약 죽지 않았다면 왕의 악이 생각건대 크게 심한 데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그러므로 「굴원의 죽음은 그 자리가 아니었고 그 임금의 악을 드러냈을 뿐이다」 한다. 나의 이 논은 곧 굴원의 원통함을 씻고 더욱 그 임금의 악을 낮추어, 뒷날 참소를 믿고 어진 이를 물리치는 것을 풍자하려는 것이지 굳이 굴원을 나무라는 것이 아니다. 애석하다, 그 죽음이 마땅한 자리가 아니었음이여.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