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엄(日嚴)의 일을 논함論日嚴事
明廟。實三十七年大平之主也。終雖被廢。其明智有不可形容者。臣請粗論之。時南國有浮屠日嚴者。自稱世尊。人皆傳能理人疾病。雖至盲聾風癩。無不立愈。京師聞之。皆欲迎致。上重違衆志。先使內臣驗其實。內臣還奏如所聞。上不得已使使迎之。勑置東城外弘法寺。其始來也。冒綵㲲巾。乘駮馬。以綾扇障其面。徒衆不可勝計。遮擁馬首。有不得正視其顔者。京師士庶。日夜會其寺。無慮萬餘人。皆唱阿彌陀佛。聲聞十里。乃至公卿搢紳及其配耦。幽閨處女。其聚如林。皆以髮布其前。藉日嚴之足。凡日嚴飮食之餘。沐浴之水。苟得之。雖涓滴貴如千金。無不飮服。當此之際。上若迎入大內。痛加禮敬。則一國變爲胡風。以至男女雜處。淫亂必甚矣。上漸驗其實。放遣江南。明廟之智如此。至聖子神孫。反正享祚。焉知不以此耶。但恨當時無一諫官如韓文部諫迎佛骨者耳。後驗其事。則其僧先敎人曰。萬法唯心。汝若勤念佛曰我病已愈。則病隨而愈矣。愼勿言疾之不愈。以是盲者妄言已視。聾者亦言已聞。所以令人易惑。是豈國之妖者歟。嗚呼。幾誤一國矣。
명종(明宗)은 실로 서른일곱 해 태평의 임금이시다. 끝내 비록 폐위되었으나 그 밝은 슬기는 형용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신이 청컨대 대강 논하겠다.
그때 남쪽 지방에 일엄이라는 중이 있어 스스로 세존이라 일컬었다. 사람들이 다 그가 사람의 병을 고칠 수 있어 비록 눈멀고 귀먹고 중풍 들고 문둥병에 이르기까지 그 자리에서 낫지 않는 것이 없다고 전하였다. 서울에서 이를 듣고 다들 맞아들이고자 하였다. 임금이 뭇사람의 뜻을 어기기 어려워 먼저 내신을 시켜 그 실상을 살피게 하였는데, 내신이 돌아와 들은 것과 같다고 아뢰었다. 임금이 마지못해 사자를 보내 맞아들이고 동성(東城) 밖 홍법사(弘法寺)에 두라고 명하였다.
그가 처음 올 때에 채색 모직 두건을 쓰고 얼룩말을 타고 비단 부채로 그 얼굴을 가렸다. 무리를 다 셀 수 없어 말 머리를 가려 막으니 그 얼굴을 바로 보지 못하는 이가 있었다. 서울의 벼슬아치와 백성이 밤낮으로 그 절에 모이니 무릇 만여 명이었다. 다들 아미타불을 부르니 소리가 십 리에 들렸다. 공경과 벼슬아치와 그 아내와 깊은 규방의 처녀에 이르기까지 그 모임이 숲 같았다. 다들 머리털을 그 앞에 펴서 일엄의 발을 받쳤다. 무릇 일엄이 먹고 마시고 남은 것과 목욕한 물을 진실로 얻으면, 비록 몇 방울이라도 천금같이 귀하게 여겨 마시지 않는 이가 없었다.
이때에 임금이 만약 대궐 안으로 맞아들여 지극히 예로 공경했더라면, 온 나라가 오랑캐 풍속으로 변하여 남녀가 섞여 지내고 음란함이 반드시 심해지는 데 이르렀을 것이다. 임금이 점차 그 실상을 살펴 강남으로 내쫓았다. 명종의 슬기가 이와 같았다. 거룩한 아들과 신묘한 손자가 반정하여 자리를 누린 것이 어찌 이 때문이 아닌 줄 알겠는가. 다만 그때에 한퇴지가 부처 뼈 맞아들이는 것을 간한 것 같은 간관 하나가 없었던 것이 한스러울 뿐이다.
뒤에 그 일을 살펴보니, 그 중이 먼저 사람에게 가르치기를 「만법(萬法)이 오직 마음이다. 너희가 만약 부지런히 염불하며 '내 병이 이미 나았다' 하면 병이 따라서 나을 것이다. 삼가 병이 낫지 않았다고 말하지 말라」 하였다. 이 때문에 눈먼 이는 이미 보인다고 함부로 말하고 귀먹은 이도 이미 들린다고 말했으니 사람을 쉬 홀리게 한 까닭이다. 이것이 어찌 나라의 요괴가 아니겠는가. 아, 하마터면 온 나라를 그르칠 뻔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