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동국이상국집 › 전집 권22

주필(走筆)의 일을 대강 논함論走筆事略言

동국이상국집 東國李相國集 · 이규보(李奎報) · 1241년 (고려 고종 28) 엮음 · 1251년 고쳐 보탬 · 단락 1 · 한자 350자 · 낭독 3분

동국이상국집 전집 권22 고려 이규보가 평생 지은 글을 아들 이함이 1241년에 엮어 새기고, 손자 이익배가 1251년에 고쳐 보탠 문집. 시와 부, 임금께 올린 표와 전, 절과 탑에 붙인 기, 비명과 묘지명, 편지와 서문, 그리고 몽골이 쳐들어온 때에 오간 국서까지 담겼다. 고구려 시조를 노래한 「동명왕편」이 전집 권3에 있고, 술과 거문고와 시를 벗 삼아 스스로 백운거사라 한 사람의 하루하루가 후집에 남아 있다. 책은 그가 눈을 앓다 붓을 놓는 마지막 시와, 그가 죽은 뒤 남이 지어 붙인 뇌서·묘지명으로 닫힌다.

夫唱韻走筆者。使人唱其韻而賦之。不容一瞥者也。其始也。但於朋伴間使酒時。狂無所洩。遂託於詩。以激昂其氣。供一時之快笑耳。不可以爲常法。亦不可於尊貴之前所爲也。此法。李湛之淸卿始倡之矣。予少狂。自以爲彼何人予何人。而獨未爾耶。往往與淸卿賦焉。於是乃始之。然若予者。性本燥急。移之於走筆。又必於昏醉中乃作。故凡不慮善惡。唯以拙速爲貴。非特亂書而已。皆去傍邊點畫。不具字體。若其時不有人隨所下輒問別書于旁。則雖吾亦莽莽不復識也。其格亦於平時所著。降級倍百。然後爲之。不足以章句體裁觀之。實詩家之罪人也。初不意區區此戲之聞于世矣。乃反爲公卿貴戚所及聞知。無不邀飮。勸令爲之。則有或不得已而賦之者。然漸類倡優雜戲之伎。或觀之者如堵墻。尤可笑已。方欲罷不復爲。而復爲今相國崔公所大咨賞。則後進之走筆者。紛紛踵出矣。但此事初若可觀。後則無用。且失其詩體。若寢成風俗。烏知後世有以予爲口實者耶。其醉中所作。多棄去不復記云。

무릇 창운주필(唱韻走筆)이라는 것은 사람을 시켜 그 운을 부르게 하고 지어 내되 한 번 눈 깜박일 틈도 두지 않는 것이다. 그 처음에는 다만 벗들 사이에서 술을 마실 때 미친 기운을 풀 데가 없어, 마침내 시에 의탁하여 그 기운을 격동시키고 한때의 유쾌한 웃음거리로 삼았을 뿐이다. 늘 하는 법으로 삼을 수 없고 또한 높고 귀한 이 앞에서 할 것도 아니다.

이 법은 이담지(李湛之) 청경(淸卿)이 처음 주창하였다. 내가 젊어서 미쳐 스스로 「저 사람은 어떤 사람이고 나는 어떤 사람인데 유독 그러지 못하겠는가」 하여, 이따금 청경과 더불어 지었다. 이에 비로소 시작하였다.

그러나 나 같은 이는 성품이 본디 조급하여 그것을 주필로 옮기고, 또 반드시 어둡게 취한 가운데 지었다. 그러므로 무릇 좋고 나쁨을 헤아리지 않고 오직 서툴러도 빠른 것을 귀하게 여겼다. 다만 어지러이 쓸 뿐 아니라 다 곁의 점과 획을 빼고 글자꼴을 갖추지 않았다. 만약 그때에 내리는 대로 곧 물어서 곁에 따로 적어 두는 사람이 없었다면, 비록 나조차 아득하여 다시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 격조도 평소에 짓는 것보다 백 배나 등급을 낮춘 뒤에야 지었으니 글귀와 체재로 볼 것이 못 된다. 실로 시인 가운데 죄인이다.

처음에는 자잘한 이 놀이가 세상에 알려지리라고는 뜻하지 않았다. 그런데 도리어 공경과 귀척들이 듣고 알게 되어 맞아 술을 마시게 하고 권하여 짓게 하지 않는 이가 없으니, 혹 마지못해 지은 것이 있다. 그러나 점점 광대의 잡스러운 놀이의 재주와 같아져 혹 보는 이가 담장처럼 둘러서니 더욱 우스울 뿐이다. 바야흐로 그만두고 다시 하지 않으려 하는데, 다시 지금 상국 최공이 크게 칭찬하니 후배로서 주필하는 이가 어지러이 뒤를 이어 나온다.

다만 이 일이 처음에는 볼 만한 듯하나 뒤에는 쓸 데가 없고 또 그 시의 체를 잃는다. 만약 점점 풍속을 이룬다면 후세에 나를 두고 구실로 삼는 이가 있을 줄 어찌 알겠는가. 그 취한 가운데 지은 것은 흔히 버려두고 다시 적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