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필(走筆)의 일을 대강 논함論走筆事略言
夫唱韻走筆者。使人唱其韻而賦之。不容一瞥者也。其始也。但於朋伴間使酒時。狂無所洩。遂託於詩。以激昂其氣。供一時之快笑耳。不可以爲常法。亦不可於尊貴之前所爲也。此法。李湛之淸卿始倡之矣。予少狂。自以爲彼何人予何人。而獨未爾耶。往往與淸卿賦焉。於是乃始之。然若予者。性本燥急。移之於走筆。又必於昏醉中乃作。故凡不慮善惡。唯以拙速爲貴。非特亂書而已。皆去傍邊點畫。不具字體。若其時不有人隨所下輒問別書于旁。則雖吾亦莽莽不復識也。其格亦於平時所著。降級倍百。然後爲之。不足以章句體裁觀之。實詩家之罪人也。初不意區區此戲之聞于世矣。乃反爲公卿貴戚所及聞知。無不邀飮。勸令爲之。則有或不得已而賦之者。然漸類倡優雜戲之伎。或觀之者如堵墻。尤可笑已。方欲罷不復爲。而復爲今相國崔公所大咨賞。則後進之走筆者。紛紛踵出矣。但此事初若可觀。後則無用。且失其詩體。若寢成風俗。烏知後世有以予爲口實者耶。其醉中所作。多棄去不復記云。
무릇 창운주필(唱韻走筆)이라는 것은 사람을 시켜 그 운을 부르게 하고 지어 내되 한 번 눈 깜박일 틈도 두지 않는 것이다. 그 처음에는 다만 벗들 사이에서 술을 마실 때 미친 기운을 풀 데가 없어, 마침내 시에 의탁하여 그 기운을 격동시키고 한때의 유쾌한 웃음거리로 삼았을 뿐이다. 늘 하는 법으로 삼을 수 없고 또한 높고 귀한 이 앞에서 할 것도 아니다.
이 법은 이담지(李湛之) 청경(淸卿)이 처음 주창하였다. 내가 젊어서 미쳐 스스로 「저 사람은 어떤 사람이고 나는 어떤 사람인데 유독 그러지 못하겠는가」 하여, 이따금 청경과 더불어 지었다. 이에 비로소 시작하였다.
그러나 나 같은 이는 성품이 본디 조급하여 그것을 주필로 옮기고, 또 반드시 어둡게 취한 가운데 지었다. 그러므로 무릇 좋고 나쁨을 헤아리지 않고 오직 서툴러도 빠른 것을 귀하게 여겼다. 다만 어지러이 쓸 뿐 아니라 다 곁의 점과 획을 빼고 글자꼴을 갖추지 않았다. 만약 그때에 내리는 대로 곧 물어서 곁에 따로 적어 두는 사람이 없었다면, 비록 나조차 아득하여 다시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 격조도 평소에 짓는 것보다 백 배나 등급을 낮춘 뒤에야 지었으니 글귀와 체재로 볼 것이 못 된다. 실로 시인 가운데 죄인이다.
처음에는 자잘한 이 놀이가 세상에 알려지리라고는 뜻하지 않았다. 그런데 도리어 공경과 귀척들이 듣고 알게 되어 맞아 술을 마시게 하고 권하여 짓게 하지 않는 이가 없으니, 혹 마지못해 지은 것이 있다. 그러나 점점 광대의 잡스러운 놀이의 재주와 같아져 혹 보는 이가 담장처럼 둘러서니 더욱 우스울 뿐이다. 바야흐로 그만두고 다시 하지 않으려 하는데, 다시 지금 상국 최공이 크게 칭찬하니 후배로서 주필하는 이가 어지러이 뒤를 이어 나온다.
다만 이 일이 처음에는 볼 만한 듯하나 뒤에는 쓸 데가 없고 또 그 시의 체를 잃는다. 만약 점점 풍속을 이룬다면 후세에 나를 두고 구실로 삼는 이가 있을 줄 어찌 알겠는가. 그 취한 가운데 지은 것은 흔히 버려두고 다시 적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