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동국이상국집 › 전집 권23

지지헌기(止止軒記)止止軒記

동국이상국집 東國李相國集 · 이규보(李奎報) · 1241년 (고려 고종 28) 엮음 · 1251년 고쳐 보탬 · 단락 1 · 한자 563자 · 낭독 5분

동국이상국집 전집 권23 고려 이규보가 평생 지은 글을 아들 이함이 1241년에 엮어 새기고, 손자 이익배가 1251년에 고쳐 보탠 문집. 시와 부, 임금께 올린 표와 전, 절과 탑에 붙인 기, 비명과 묘지명, 편지와 서문, 그리고 몽골이 쳐들어온 때에 오간 국서까지 담겼다. 고구려 시조를 노래한 「동명왕편」이 전집 권3에 있고, 술과 거문고와 시를 벗 삼아 스스로 백운거사라 한 사람의 하루하루가 후집에 남아 있다. 책은 그가 눈을 앓다 붓을 놓는 마지막 시와, 그가 죽은 뒤 남이 지어 붙인 뇌서·묘지명으로 닫힌다.

城之東奉香之里之西肘。有草堂數十楹。白雲居士所寄也。身寄而已。心不寄也。居士謂誰。春卿自號也。榜其軒曰止止。居士自名之也。蓋以玄筮之。得止之首而名之也。止之首𝍒曰。初一。止于止。內明無咎。此言君子時止則止。其智之明如水之內朗也。初二。馬酋止。車軔俟。此言二爲平人。不隱不仕。故車軔俟而馬就止也。居士喜曰。是皆予之志也。予能識其所止而止。則可謂應初一之體。進不急於仕。退不苟於隱。以是而爲平人。則可謂叶初二之辭。予得是而名軒曰止止。果不類予之行藏耶。夫所謂止止者。能知其所止而止之者也。非其所止而止。其止也非止止也。且虎豹麋鹿蛟龍之於藪澤窟穴。識其所止而止之者也。設客行旅寄。以止于城市之中。則人以爲祅。而從而害之必矣。居士之於世。偃蹇寡合。非馴擾之物也。若與人同趨竝騖。以止于名利之域。則是何以異於虎豹麋鹿蛟龍之城市哉。此予所以求其所止而止之者也。不然。祅而害之者至矣。或曰。若子之所言。則必山林窮谷之是處。不與人雜然同域。然後可謂止止矣。今子之所止。乃城市之中。而猶謂之止止。譬之虎豹麋鹿蛟龍之藪澤窟穴。何也。曰。蟲獸之藪澤窟穴。人之城市。亦各其所止之常也。假使人庬然伏藪澤。仄然入窟穴。則亦猶虎豹麋鹿蛟龍之入城市也。毒蟲猛獸。亦必以爲祅。而群而害之矣。人而避人。被蟲獸所害。吾不忍爲也。且人所以忌人規有以害之者。非城市之隘而與處之吝也。徒以競其所求。爭其所利而已。苟與人不爭不競。雖白日有胠吾篋者。避而不見。則人之城市。亦虎豹麋鹿蛟龍之藪澤窟穴也。庸有害之者乎。居士之名軒。蓋以此也。丁卯三月十日。記。

성 동쪽 봉향리(奉香里)의 서쪽 모퉁이에 초당 수십 칸이 있으니 백운거사가 붙어 사는 곳이다. 몸이 붙어 있을 뿐이요 마음이 붙어 있는 것은 아니다. 거사는 누구인가. 춘경(春卿)이 스스로 지은 호다. 그 마루에 「지지(止止)」라 써 붙였으니 거사가 스스로 이름한 것이다. 대개 《태현경(太玄經)》으로 점쳐 지(止)의 수(首)를 얻어 이름한 것이다.

지의 수에 이르기를 「초일(初一)은 머무를 데에 머무니 안이 밝아 허물이 없다」 하였다. 이는 군자가 머무를 때에 머물러 그 지혜의 밝음이 물이 안으로 환한 것과 같음을 말한 것이다. 「초이(初二)는 말이 멈추고 수레의 굄목이 기다린다」 하였다. 이는 둘째가 예사 사람이 되어 숨지도 않고 벼슬하지도 않으므로, 수레 굄목이 기다리고 말이 나아가 멈추는 것을 말한 것이다.

거사가 기뻐하며 말하였다. 「이는 다 내 뜻이다. 내가 그 머무를 데를 알아 머물 수 있다면 초일의 몸을 따랐다 할 만하고, 나아가되 벼슬에 급하지 않고 물러나되 숨는 데 구차하지 않아 이로써 예사 사람이 된다면 초이의 말에 맞았다 할 만하다. 내가 이를 얻어 마루의 이름을 「지지」라 하였으니 과연 내 나아감과 물러남과 비슷하지 않은가.」

무릇 이른바 「지지」라는 것은 그 머무를 데를 알아 머무는 것이다. 머무를 데가 아닌데 머문다면 그 머무름은 「지지」가 아니다. 또 범과 표범과 고라니와 사슴과 이무기와 용이 늪과 못과 굴에 있는 것은 그 머무를 데를 알아 머무는 것이다. 만약 나그네가 다니다가 성과 저자 가운데에 머문다면, 사람들이 요괴로 여겨 따라서 해칠 것이 틀림없다.

거사는 세상에 대하여 뻣뻣하여 어울리는 이가 적으니 길들여진 물건이 아니다. 만약 남과 함께 달리고 나란히 내달려 이름과 이익의 자리에 머문다면, 이것이 범과 표범과 고라니와 사슴과 이무기와 용이 성과 저자에 있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이것이 내가 그 머무를 데를 구하여 머무는 까닭이다. 그렇지 않으면 요괴로 여겨 해치는 이가 이를 것이다.

어떤 이가 말하였다. 「그대의 말과 같다면 반드시 산림과 깊은 골짜기에 처하여 사람과 섞여 같은 자리에 있지 않은 뒤에야 「지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그대가 머무는 곳은 곧 성과 저자 가운데인데 오히려 「지지」라 하며, 범과 표범과 고라니와 사슴과 이무기와 용의 늪과 못과 굴에 비기니 어찌 된 일인가.」

말하였다. 「벌레와 짐승의 늪과 못과 굴, 사람의 성과 저자는 또한 각기 그 머무를 데의 떳떳함이다. 가령 사람이 커다랗게 늪과 못에 엎드리고 비스듬히 굴에 들어간다면, 이 또한 범과 표범과 고라니와 사슴과 이무기와 용이 성과 저자에 드는 것과 같다. 독한 벌레와 사나운 짐승이 또한 반드시 요괴로 여겨 떼 지어 해칠 것이다. 사람이면서 사람을 피하다가 벌레와 짐승에게 해침을 당하는 것은 내가 차마 하지 못한다.

또 사람이 사람을 꺼려 해치려고 꾀하는 것은 성과 저자가 좁아 함께 지내기가 인색해서가 아니다. 다만 그 구하는 바를 겨루고 그 이로운 바를 다투기 때문일 뿐이다. 진실로 남과 다투지 않고 겨루지 않아, 비록 대낮에 내 상자를 여는 이가 있어도 피하고 보지 않는다면, 사람의 성과 저자도 또한 범과 표범과 고라니와 사슴과 이무기와 용의 늪과 못과 굴이다. 어찌 해치는 이가 있겠는가.」

거사가 마루의 이름을 지은 것은 대개 이 때문이다. 정묘년 삼월 열흘에 적는다.

협주 2

人玄陽家八木。

「지(止)」는 《태현경》에서 양가(陽家)에 들며 팔목(八木)이다.

陰陽隔絶。各止其所。故能如水之內自淸明。

음과 양이 막혀 끊어져 각기 제자리에 머문다. 그러므로 물이 안으로 절로 맑고 밝은 것같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