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동국이상국집 › 전집 권23

과일나무를 접붙인 것에 대한 기(記)接菓記

동국이상국집 東國李相國集 · 이규보(李奎報) · 1241년 (고려 고종 28) 엮음 · 1251년 고쳐 보탬 · 단락 1 · 한자 231자 · 낭독 2.1분

동국이상국집 전집 권23 고려 이규보가 평생 지은 글을 아들 이함이 1241년에 엮어 새기고, 손자 이익배가 1251년에 고쳐 보탠 문집. 시와 부, 임금께 올린 표와 전, 절과 탑에 붙인 기, 비명과 묘지명, 편지와 서문, 그리고 몽골이 쳐들어온 때에 오간 국서까지 담겼다. 고구려 시조를 노래한 「동명왕편」이 전집 권3에 있고, 술과 거문고와 시를 벗 삼아 스스로 백운거사라 한 사람의 하루하루가 후집에 남아 있다. 책은 그가 눈을 앓다 붓을 놓는 마지막 시와, 그가 죽은 뒤 남이 지어 붙인 뇌서·묘지명으로 닫힌다.

事有初若妄誕幻怪。而其終乃眞者。其接菓之謂乎。予先君時。有號長身田氏者善接菓。先君使試之。園有惡梨凡二樹。田氏皆鋸斷之。求世所謂名梨者。斫若干梢。安於斷株。以膏泥封之。當其時見之。似妄誕矣。雖至茸抽葉茁。亦似幻怪矣。及鬱然夏陰茂。蕡然秋實成。然後乃信其終眞者。而妄誕幻怪之疑。始去於心矣。先君沒凡九稔。覩樹食實。未嘗不思嚴顔。或攀樹嗚咽。不忍捨去。且古之人以召伯韓宣子之故。有勿翦甘棠。封植嘉樹者。況父之所嘗有而遺之於子者。其恭止之心。何翅勿翦封植而已哉。其實亦可跪而食矣。抑慮先君以此及予者。豈使予革非遷善。當效玆樹耶。聊志而警之耳。

일에는 처음에는 허황하고 괴이한 듯하나 그 끝에는 참인 것이 있으니, 과일나무 접붙이는 것을 이르는 것인가.

내 선친 때에 「키다리 전씨(田氏)」라 부르는 이가 있어 접붙이기를 잘하였다. 선친이 시험하게 하셨다. 동산에 나쁜 배나무 두 그루가 있었는데 전씨가 다 톱으로 잘랐다. 세상에서 이름난 배라 하는 것을 구하여 가지 몇을 베어 자른 그루에 얹고 기름진 진흙으로 봉하였다. 그때에 보니 허황한 듯하였다. 비록 싹이 트고 잎이 돋아나는 데 이르러서도 또한 괴이한 듯하였다. 그런데 여름 그늘이 울창하게 우거지고 가을 열매가 주렁주렁 맺힌 뒤에야 그 끝이 참임을 믿었고, 허황하고 괴이하다는 의심이 비로소 마음에서 사라졌다.

선친이 돌아가신 지 무릇 아홉 해다. 나무를 보고 열매를 먹을 때마다 엄한 얼굴을 생각하지 않은 적이 없다. 혹 나무를 붙들고 흐느끼며 차마 버리고 떠나지 못한다. 또 옛사람은 소백(召伯)과 한선자(韓宣子) 때문에 감당나무를 베지 말고 아름다운 나무를 북돋아 심은 일이 있었다. 하물며 아비가 일찍이 두었다가 자식에게 남긴 것이랴. 그 공경하는 마음이 어찌 베지 않고 북돋아 심는 데 그치겠는가. 그 열매도 또한 무릎 꿇고 먹을 만하다.

또 생각건대 선친이 이것으로 나에게 미치게 하신 것은, 어찌 나로 하여금 그른 것을 고치고 착한 데로 옮기기를 마땅히 이 나무를 본받게 하려 하심이 아니겠는가. 애오라지 적어서 경계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