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동국이상국집 › 전집 권23

사가재기(四可齋記)四可齋記

동국이상국집 東國李相國集 · 이규보(李奎報) · 1241년 (고려 고종 28) 엮음 · 1251년 고쳐 보탬 · 단락 1 · 한자 243자 · 낭독 2.3분

동국이상국집 전집 권23 고려 이규보가 평생 지은 글을 아들 이함이 1241년에 엮어 새기고, 손자 이익배가 1251년에 고쳐 보탠 문집. 시와 부, 임금께 올린 표와 전, 절과 탑에 붙인 기, 비명과 묘지명, 편지와 서문, 그리고 몽골이 쳐들어온 때에 오간 국서까지 담겼다. 고구려 시조를 노래한 「동명왕편」이 전집 권3에 있고, 술과 거문고와 시를 벗 삼아 스스로 백운거사라 한 사람의 하루하루가 후집에 남아 있다. 책은 그가 눈을 앓다 붓을 놓는 마지막 시와, 그가 죽은 뒤 남이 지어 붙인 뇌서·묘지명으로 닫힌다.

昔予先君。嘗置別業於西郭之外。溪谷窅深。境幽地僻。如造別一世界。可樂也。予得而有之。屢相往來。爲讀書閑適之所。有田可以耕而食。有桑可以蠶而衣。有泉可飮。有木可薪。可吾意者有四。故名其齋曰四可。且祿豐官重。乘威挾勢者。凡所欲得無一不可於意者。若予則旣窮且困。顧平生百無一可。而今遽有四可。何僭如之。夫大牢之享。始於藜羹。千里之行。起於門前。蓋其漸也。予居是齋也。若有得田園之樂。則其唾棄世網。拂衣褁足。歸老故園。作大平農叟。擊壤鼓腹。歌詠聖化。以被于管絃。亦何有不可哉。嘗於是齋。著詩三首。詩集中有西郊草堂詩是已。其一句云。快哉農家樂。歸田從此始。是眞予志也。某月日。白雲居士。記。

옛날 내 선친이 일찍이 서쪽 성 밖에 별장을 두셨다. 시내와 골짜기가 깊고 아득하며 지경이 그윽하고 땅이 외져 별다른 한 세계를 만든 듯하니 즐길 만하다. 내가 이를 얻어 가지고 자주 서로 오가며 글 읽고 한가히 지내는 곳으로 삼았다.

밭이 있어 갈아서 먹을 만하고, 뽕나무가 있어 누에를 쳐서 입을 만하고, 샘이 있어 마실 만하고, 나무가 있어 땔감으로 삼을 만하다. 내 뜻에 맞는 것이 넷이 있으므로 그 집을 「사가(四可)」라 이름하였다.

또 녹이 넉넉하고 벼슬이 무거워 위엄을 타고 세력을 낀 이는 무릇 얻고자 하는 것이 하나도 뜻에 맞지 않는 것이 없다. 나 같은 이는 이미 궁하고 또 곤하여 돌아보면 평생에 백 가지 가운데 하나도 맞는 것이 없다가, 이제 갑자기 넷이나 맞는 것이 있으니 무엇이 이보다 참람하겠는가.

무릇 태뢰(大牢)의 잔치도 명아주국에서 시작하고 천 리 길도 문 앞에서 일어나니 대개 그 차츰함이다. 내가 이 집에 살면서 만약 밭과 동산의 즐거움을 얻는다면, 세상의 그물을 침 뱉어 버리고 옷을 떨치고 발을 싸매고 고향으로 돌아가 늙어 태평한 농사꾼이 되어, 땅을 두드리고 배를 두드리며 성인의 교화를 노래하여 관현에 얹은들 또한 무엇이 안 될 것이 있겠는가.

일찍이 이 집에서 시 세 수를 지었으니 시집 가운데 「서교초당시(西郊草堂詩)」가 이것이다. 그 한 구절에 「상쾌하다 농가의 즐거움이여, 밭으로 돌아감이 이로부터 시작되네」 하였으니 이것이 참으로 내 뜻이다. 아무 달 아무 날 백운거사가 적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