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재기(通齋記)通齋記
衆允通人楊生應才者。卜築于城北。善接養花木。其園林之勝。頗有聞於京都。予遂往觀焉。環堵蕭然而已。初若無奇觀勝致。殊不類所聞者。及主人贊至其園。然後環視周矚。求勝之所從有而得有聞者。則園方可四十步許。有珍木名菓。植植爭立。昵不相侵。離不至迂。是皆生之均疏數而序植者也。別爲塢以居衆花。花各數十種。皆世所罕見。或方開或已落。映林繡地。交錯糾紛。日萼紅。張麗華之嬌醉也。露葩濕。楊貴妃之始浴也。風枝擧。趙飛燕之體輕也。落者如愼夫人之却座。覆者如李夫人之掩被。以花之諭乎目如此。愛之不能移去。藉草良久而後起。自花塢而少北。有石臺平如局。又潔淨可不席而坐。蒲桃之緣樹下垂者。如纓珞然可愛。下有石井。味極淸甘。洩而爲小泓。有稚葦戢戢始生。予曰。更少高其廉。益以渟滀。則可池而放鳧鴨也。還至石臺酒數巡。主人目予曰。僕之有是齋。莫有標榜。若將有待於先生者。請一溷可乎。予於是遂名之曰通齋。夫由道以冥觀。齊泯萬體。則夫所謂通與塞。了不可得見者也。然以天道論之。日月星宿山川丘陵。爲物之巨者也。然未免盈虛消息否泰通塞之變者。由未嘗離陰陽之數故也。況其餘哉。然則境欲爲通境。而爲人所礙。則煙愁月慘。終不爲通境矣。人已爲通人。而爲境所塞。則高人才子北首而莫有至者。孰知有通人哉。今是齋也。境已通而通人居之。盍以通貺名耶。雖欲讓而不受。又焉逃是名哉。且天地無私。豈獨私楊生以泉石。私楊生以花柳歟。直由心匠之妙耳。若爾則濃花芳草。非受於天也。受於楊生之手也。碧井淸泉。非產於地也。產於楊生之心也。噫。吾不知是齋昔爲人有。則地頑園俗。草荒木老。萬景韜晦而不出。及遇楊生。然後爲神仙別洞耶。假使楊生棄而不居。又屬於人。則又焉知不爲豕槽馬廏之地哉。生又乞爲記。故因目之所寓而志之耳。楊生頗尙俠。喜趨人之急。不可不與遊者。
뭇사람이 통인(通人)이라 인정하는 양생 응재(楊生應才)라는 이가 성 북쪽에 자리를 잡고 집을 지었는데, 꽃과 나무를 접붙이고 기르기를 잘하였다. 그 동산과 숲의 빼어남이 자못 서울에 들렸다. 내가 마침내 가서 보았다.
담장이 두른 것이 쓸쓸할 뿐이라, 처음에는 기이한 볼거리와 빼어난 정취가 없어 자못 들은 것과 같지 않은 듯하였다. 그런데 주인이 이끌어 그 동산에 이르러서야 둘러보고 두루 살펴, 빼어남이 있게 된 까닭을 구하여 들은 바가 있게 된 것을 얻었다.
동산은 사방 마흔 걸음쯤인데 진기한 나무와 이름난 과일이 빽빽이 다투어 섰으되, 가까워도 서로 침노하지 않고 떨어져도 멀지 않았다. 이는 다 양생이 성글고 빽빽함을 고르게 하여 차례로 심은 것이다.
따로 둑을 만들어 온갖 꽃을 두었는데 꽃이 각기 수십 종이요 다 세상에 드물게 보이는 것이었다. 혹은 바야흐로 피고 혹은 이미 졌는데 숲에 비치고 땅에 수를 놓아 서로 뒤섞여 어지러웠다. 볕에 꽃받침이 붉은 것은 장여화(張麗華)가 아리땁게 취한 것이요, 이슬에 꽃잎이 젖은 것은 양귀비가 갓 목욕한 것이며, 바람에 가지가 들리는 것은 조비연(趙飛燕)의 몸이 가벼운 것이다. 떨어지는 것은 신부인(愼夫人)이 자리를 물리는 것 같고 엎어진 것은 이부인(李夫人)이 이불을 덮은 것 같다. 꽃이 눈에 비유되는 것이 이와 같아 사랑스러워 옮겨 갈 수 없었다. 풀을 깔고 한참 앉았다가 일어났다.
꽃 둑에서 조금 북쪽으로 가면 돌로 된 대(臺)가 있어 평평하기가 바둑판 같고, 또 깨끗하여 자리를 깔지 않고도 앉을 만하다. 나무를 타고 아래로 드리운 포도가 영락(纓珞) 같아 사랑스럽다. 아래에 돌 우물이 있는데 맛이 몹시 맑고 달다. 새어 나와 작은 못이 되었는데 어린 갈대가 다북다북 처음 났다. 내가 말하였다. 「다시 그 가장자리를 조금 높이고 물을 더 고이게 하면 못을 만들어 오리와 집오리를 놓을 만하겠다.」
돌 대로 돌아와 술이 몇 순배 돌자 주인이 나를 보고 말하였다. 「제게 이 집이 있으나 이름 붙인 것이 없습니다. 마치 장차 선생께 기다림이 있는 듯하니 청컨대 한 번 더럽혀 주심이 어떻겠습니까.」 내가 이에 마침내 「통재(通齋)」라 이름하였다.
무릇 도로 말미암아 그윽이 보아 온갖 몸을 가지런히 하고 없애면, 저 이른바 통함과 막힘이란 아주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하늘의 도로 논하자면, 해와 달과 별과 산과 내와 언덕은 사물 가운데 큰 것이다. 그런데도 차고 비고 사라지고 자라며 막히고 트이고 통하고 막히는 변화를 면하지 못하는 것은, 일찍이 음양의 이치를 떠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물며 그 나머지랴.
그렇다면 지경이 통한 지경이 되고자 해도 사람에게 막히면, 안개가 시름겹고 달이 참담하여 끝내 통한 지경이 되지 못한다. 사람이 이미 통한 사람이 되었어도 지경에 막히면, 높은 이와 재주 있는 이가 북쪽으로 머리를 두고 이르는 이가 없으니 누가 통한 사람이 있는 줄 알겠는가.
이제 이 집은 지경이 이미 통했고 통한 사람이 사는 곳이다. 어찌 「통」이라는 이름을 주지 않겠는가. 비록 사양하여 받지 않으려 한들 또 어찌 이 이름을 피하겠는가.
또 하늘과 땅은 사사로움이 없으니 어찌 유독 양생에게만 샘과 돌을 사사로이 주고 양생에게만 꽃과 버들을 사사로이 주겠는가. 다만 마음의 솜씨가 묘한 데서 말미암을 뿐이다. 그렇다면 짙은 꽃과 꽃다운 풀은 하늘에서 받은 것이 아니라 양생의 손에서 받은 것이요, 푸른 우물과 맑은 샘은 땅에서 난 것이 아니라 양생의 마음에서 난 것이다.
아, 나는 모르겠다. 이 집이 예전에 남의 소유였을 때는 땅이 무디고 동산이 속되며 풀이 거칠고 나무가 늙어 온갖 경치가 빛을 감추고 나오지 않다가, 양생을 만난 뒤에야 신선의 별천지가 된 것인가. 가령 양생이 버리고 살지 않아 또 남에게 넘어간다면, 또 어찌 돼지 구유와 말 마구간의 땅이 되지 않을 줄 알겠는가.
양생이 또 기를 지어 달라 청하므로 눈에 붙인 것을 따라 적을 뿐이다. 양생은 자못 의협을 숭상하여 남의 급함에 달려가기를 좋아하니, 더불어 놀지 않을 수 없는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