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재기(泰齋記)泰齋記
夫緣境而漸染者。人之情也。耳猒嘈哳而不聞淸溜之聲。目倦華靡而不矚靑山之色。則煩滯之心。有時而萌矣。然山水之勝。求諸遠則易。求諸近則難。故求之城中而未得。則之郊圻之外。之郊圻之外而未得。則尙無可奈何矣。惟其慕肥遁樂獨善。高蹈遠遊者然後得之也。是以。愛山水之篤者。不可享富貴之樂。嗜富貴之深者。不得致山水之美。而兼之者鮮矣。今知奏事于公居富貴之中。致山水之美。以帝城猶謂之遠。遂卜於帝闕之傍。是昔鄭員外所居也。當時茂苑殘莊而已。公得之。尋泉脈之攸出。築石而甃之。凡飮吸盥漱。煎茶點藥之用。皆仰此井。因泉之汎濫者。瀦作大池。被以菱芡。放鵝鴨其中。至於風軒水榭花塢竹閣。無不侈其制。使三十六洞之景。盡入於朱門華屋之內矣。又何必肥遁遠遊。然後享山水之樂耶。公指崇丘之亞然者曰。此予之望闕臺也。予歎曰。旨哉。公之名是臺也。今公以喉舌之任。朝夕密邇龍顔。猶謂之未足居。必近於帝闕。又尙以爲未足。而乃成望闕之臺。此眞古所謂心罔不在王室者也。又指岌然高者曰望月臺也。翼然如飛者曰快心亭也。因謂予。曰予之標榜也如是。予所未名者。子爲我名之也。予謹名其園曰芳華。井曰噴玉。池曰涵碧。竹軒曰種玉。皆言其狀也。摠而名其齋曰泰。易泰卦。有之曰天地交而萬物通。上下交而其志同。今公當君子道長之時。佐王同志財成輔相。使萬物大通而天地交泰。然後體逸心泰。得此優游之樂。則吾以泰名齋。不中的歟。先是。公使內翰李眉叟記快心亭。已書于生絹障子。立其亭之右。又使予作此記。欲對峙於其左。其好事如此。眉叟。文之雄者也。狀物周悉。故於此略之。第敍所以名之之意耳。
무릇 지경을 인연하여 점점 물드는 것은 사람의 정이다. 귀가 시끄러운 소리에 물려 맑은 물 흐르는 소리를 듣지 못하고, 눈이 화려하고 사치한 것에 지쳐 푸른 산빛을 보지 못하면, 번거롭고 막힌 마음이 때때로 싹튼다.
그러나 산수의 빼어남은 먼 데서 구하면 쉽고 가까운 데서 구하면 어렵다. 그러므로 성안에서 구하다가 얻지 못하면 성 밖 들로 가고, 성 밖 들로 가서도 얻지 못하면 오히려 어찌할 수 없다. 오직 숨어 사는 것을 사모하고 홀로 착한 것을 즐겨 높이 밟고 멀리 노니는 이라야 그런 뒤에 얻는다. 이 때문에 산수를 사랑함이 도타운 이는 부귀의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고, 부귀를 즐김이 깊은 이는 산수의 아름다움을 이루지 못하니 이를 겸한 이가 드물다.
이제 지주사(知奏事) 아무 공은 부귀 가운데 살면서 산수의 아름다움을 이루었다. 도성도 오히려 멀다 하여 마침내 대궐 곁에 자리를 잡았으니 이는 옛날 정 원외(鄭員外)가 살던 곳이다. 그때에는 무성한 동산의 쇠잔한 별장일 뿐이었다.
공이 이를 얻어 샘줄기가 나오는 곳을 찾아 돌을 쌓고 벽돌로 쌓았다. 무릇 마시고 세수하고 양치하고 차를 달이고 약을 다리는 데 다 이 우물을 우러른다. 샘이 넘치는 것을 따라 물을 모아 큰 못을 만들고 마름과 가시연을 덮으며 거위와 오리를 그 가운데 놓았다. 바람 부는 마루와 물가 정자와 꽃 둑과 대나무 집에 이르기까지 그 제도를 사치하게 하지 않은 것이 없어, 서른여섯 골짜기의 경치로 하여금 다 붉은 문 화려한 집 안으로 들어오게 하였다. 또 어찌 반드시 숨어 살고 멀리 노닌 뒤에야 산수의 즐거움을 누리겠는가.
공이 우뚝한 언덕을 가리키며 말하였다. 「이는 내 망궐대(望闕臺)다.」 내가 감탄하여 말하였다. 「아름답습니다, 공이 이 대를 이름한 것이. 이제 공이 목구멍과 혀의 임무로 아침저녁 임금의 얼굴을 가까이 모시면서도 오히려 머무는 것이 넉넉하지 않다 하여 반드시 대궐에 가까이하고, 또 오히려 넉넉하지 않다 하여 곧 망궐의 대를 이루었으니, 이는 참으로 옛날에 이른바 '마음이 왕실에 있지 않은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또 우뚝 높은 것을 가리켜 「망월대(望月臺)다」 하고, 날개를 편 듯 나는 것을 가리켜 「쾌심정(快心亭)이다」 하였다. 이어 내게 말하였다. 「내가 이름 붙인 것이 이와 같소. 내가 이름 붙이지 못한 것은 그대가 나를 위해 이름 지어 주오.」
내가 삼가 그 동산을 「방화(芳華)」라 하고, 우물을 「분옥(噴玉)」이라 하고, 못을 「함벽(涵碧)」이라 하고, 대나무 마루를 「종옥(種玉)」이라 하였으니 다 그 모습을 말한 것이다. 통틀어 그 집을 「태(泰)」라 이름하였다.
《주역》 태괘(泰卦)에 「하늘과 땅이 사귀어 만물이 통하고, 위와 아래가 사귀어 그 뜻이 같다」 하였다. 이제 공이 군자의 도가 자라는 때를 당하여 임금을 도와 뜻을 같이하고 마름질하고 도와, 만물로 하여금 크게 통하게 하고 하늘과 땅이 사귀어 태평하게 한 뒤에, 몸이 편안하고 마음이 넉넉하여 이 넉넉히 노니는 즐거움을 얻었으니, 내가 「태」로 집을 이름한 것이 과녁에 맞지 않겠는가.
이보다 앞서 공이 내한(內翰) 이미수(李眉叟)에게 「쾌심정기」를 짓게 하여 이미 생초 병풍에 써서 그 정자의 오른쪽에 세웠고, 또 나에게 이 기를 짓게 하여 그 왼쪽에 마주 세우려 하였다. 그 일 좋아함이 이와 같다. 미수는 글의 웅걸이다. 사물을 그려 냄이 두루 갖추었으므로 여기서는 생략하고, 다만 이름 지은 뜻만 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