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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대루기(大樓記)又大樓記

동국이상국집 東國李相國集 · 이규보(李奎報) · 1241년 (고려 고종 28) 엮음 · 1251년 고쳐 보탬 · 단락 1 · 한자 635자 · 낭독 5.7분

동국이상국집 전집 권24 고려 이규보가 평생 지은 글을 아들 이함이 1241년에 엮어 새기고, 손자 이익배가 1251년에 고쳐 보탠 문집. 시와 부, 임금께 올린 표와 전, 절과 탑에 붙인 기, 비명과 묘지명, 편지와 서문, 그리고 몽골이 쳐들어온 때에 오간 국서까지 담겼다. 고구려 시조를 노래한 「동명왕편」이 전집 권3에 있고, 술과 거문고와 시를 벗 삼아 스스로 백운거사라 한 사람의 하루하루가 후집에 남아 있다. 책은 그가 눈을 앓다 붓을 놓는 마지막 시와, 그가 죽은 뒤 남이 지어 붙인 뇌서·묘지명으로 닫힌다.

夫在陽則舒。在陰則慘。處高則快。處卑則鬱。是人所以受之天而固常有者也。老子曰。雖有榮觀。燕處超然。月令曰。可以居高明處臺榭。蓋謂是也。雖然。樓臺觀榭之大小繁簡。亦沿人之勢而各有當焉。雖於位同貴均者。顧人所屬望則異矣。人心所不當大而大之。則人不以爲可。而皆謂之過矣。至如功豐德鉅。望壓萬人。處一國奔走瞻望之地者。雖極其大也。人不以爲侈。而猶以爲隘也。是今承制崔公之所以作大樓於居室之南偏者也。上可以坐客千人。下可以方車百乘。高則橫絶鳥道。大則蔽虧日月。碧瑤瑩柱。玉舃承跋。陽馬負阿。矯首軒挐。飛禽走獸。因木生姿。自棟宇已來未之有也。按仙經。神仙有玉樓十二。然世無眼覩者。不知其制度何如。而其中有何等奇觀。嘗以此爲恨。及觀是樓。雖天之玉樓。想不能侈玆也。其東偏安佛龕。有營佛事。則邀桑門衲子。多至數百人。恢恢有餘地。直樓之南。闢毬場無慮四百許步。平坦如砥。繚以周墻。連亘數里。公嘗以暇日召賓客。開瓊筵命玉觴。及于目倦乎姿色之靡曼。耳厭乎絲行之激越。則顧可以壯其觀暢其氣者。莫若擊毬走馬之戲也。於是乎命善馭如王良,造父之輩。乘十影之足。跨千里之蹄。翕忽揮霍。星奔電掣。將東復西。欲走反駐。人相叢手。馬相攢蹄。爭毬於跳轉滅沒之中。譬若群龍揚鬣奮爪。爭一箇眞珠於大海之裏。吁可駭也。大抵擊毬走馬。非以平衢廣陌。則疑若不可。而公獨不爾。使戲於周墻環廡之間者。何哉。凡廣陌也平衢也。雖立標樹柱。要不出其限。猶有不守關禁。逸而過之者。此直由地不束心不撿故爾。不若置之於墻廡之間。觀其廻環宛轉。不離其域。地束而枝有餘。心檢而巧愈出。此公之所以爲樂也。噫。樓雖欲不邀。而萬景之效於玆樓者如彼。公雖欲不受。而樓之供於公者如此。凡勝特之觀。皆聚於玆樓。則予恨左右好事者之無有以聚勝。請於公而暑其額也。

무릇 볕에 있으면 펴지고 그늘에 있으면 참담하며, 높은 데 처하면 상쾌하고 낮은 데 처하면 답답하다. 이는 사람이 하늘에서 받아 참으로 늘 지니는 것이다. 노자가 「비록 영화로운 볼거리가 있어도 한가히 처하여 뛰어나다」 하였고, 「월령(月令)」에 「높고 밝은 데 거처하고 대와 정자에 처할 만하다」 하였으니 대개 이를 이른 것이다.

그렇기는 하나 누대와 정자의 크고 작음과 번거롭고 간략함도 또한 사람의 형세를 따라 각기 마땅함이 있다. 비록 지위가 같고 귀함이 고른 이라도 돌아보아 사람이 바라는 바는 다르다. 사람의 마음에 마땅히 크게 할 것이 아닌데 크게 하면 사람들이 옳게 여기지 않고 다 지나치다 한다. 공이 넉넉하고 덕이 크며 명망이 만인을 누르고 한 나라가 달려가 우러르는 자리에 처한 이에 이르러서는, 비록 그 큼을 다하더라도 사람들이 사치하다 여기지 않고 오히려 좁다고 여긴다. 이것이 지금 승제 최공이 사는 집 남쪽 가에 큰 누각을 지은 까닭이다.

위로는 손 천 사람이 앉을 만하고 아래로는 수레 백 대를 나란히 할 만하다. 높기로는 새 길을 가로질러 끊고 크기로는 해와 달을 가린다. 푸른 옥으로 기둥을 빛나게 하고 옥 신발로 받침을 삼았으며, 양마(陽馬)가 언덕을 지고 머리를 들어 높이 뻗쳤다. 나는 새와 달리는 짐승이 나무를 따라 자태를 냈으니, 마룻대와 처마가 생긴 이래로 있지 않던 것이다.

신선의 경전을 살펴보면 신선에게 옥루(玉樓) 열둘이 있다 한다. 그러나 세상에 눈으로 본 이가 없어 그 제도가 어떠하며 그 가운데 어떤 기이한 볼거리가 있는지 알지 못한다. 일찍이 이를 한스럽게 여겼는데 이 누각을 보매, 비록 하늘의 옥루라도 생각건대 이보다 사치하지 못할 듯하다.

그 동쪽 가에 불감(佛龕)을 두어 불사를 베풀 일이 있으면 승려를 맞아 많게는 수백 사람에 이르러도 넉넉히 남는 자리가 있다. 누각의 바로 남쪽에 격구장을 열었는데 무릇 사백 걸음쯤이라 평탄하기가 숫돌 같고, 두른 담이 잇달아 몇 리에 뻗쳤다.

공이 일찍이 한가한 날에 손을 불러 옥 같은 자리를 열고 옥 잔을 명하였다. 눈이 곱고 아리따운 자태에 지치고 귀가 줄 소리의 격렬함에 물리게 되면, 돌아보아 그 볼거리를 씩씩하게 하고 그 기운을 트이게 할 것으로는 격구하고 말 달리는 놀이만 한 것이 없다.

이에 왕량(王良)과 조보(造父) 같은 이에게 잘 몰게 하여 열 그림자의 발을 타고 천 리의 발굽에 걸터앉게 한다. 홀연히 빠르게 별이 달리고 번개가 치듯, 동으로 가려다 다시 서로 가고 달리려다 도리어 멈춘다. 사람이 서로 손을 모으고 말이 서로 발굽을 모아, 뛰어 구르고 사라졌다 나타나는 가운데 공을 다툰다. 비유하자면 뭇 용이 갈기를 떨치고 발톱을 떨쳐 큰 바다 속에서 진주 한 알을 다투는 것 같으니 아, 놀랄 만하다.

대저 격구하고 말 달리는 것은 평탄한 거리와 넓은 길이 아니면 안 될 듯한데 공만은 그렇지 않아, 두른 담과 둘린 행랑 사이에서 놀게 하니 어째서인가. 무릇 넓은 길과 평탄한 거리는 비록 표를 세우고 기둥을 심어도 요컨대 그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인데, 오히려 관문과 금지를 지키지 않고 벗어나 지나가는 이가 있다. 이는 다만 땅이 묶지 않고 마음이 단속하지 않기 때문이다. 담과 행랑 사이에 두어 그 돌고 굽이도는 것이 그 지경을 떠나지 않는 것을 보는 것만 못하다. 땅이 묶으매 재주가 남고 마음이 단속되매 공교로움이 더욱 나오니, 이것이 공이 즐거움으로 삼는 까닭이다.

아, 누각이 비록 맞이하지 않으려 해도 온갖 경치가 이 누각에 바치는 것이 저와 같고, 공이 비록 받지 않으려 해도 누각이 공에게 바치는 것이 이와 같다. 무릇 빼어나고 특별한 볼거리가 다 이 누각에 모였으니, 나는 좌우에 일 좋아하는 이가 있어 빼어난 것을 모아 공에게 청하여 그 이마에 이름을 써 붙이는 이가 없는 것을 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