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양 자오당기(自娛堂記)桂陽自娛堂記
貞祐七年孟夏。予自左司諫知制誥。謫守桂陽。州之人。以深山之側雚葦之間一頽然如蝸之破殼者。爲大守之居。觀其制度。則拋梁架棟。強名屋耳。仰不足以擡頭。俯不足以橫膝。當暑處之。如入深甑中而遭蒸灼也。妻兒臧獲。矉之皆不欲就居。予獨喜焉。灑掃而處之。因榜其堂曰自娛。客有詰其由者曰。今之太守。古之邦伯。賓客請謁。日相踵繼。登是堂者。皆官曹之俊秀。儒釋之魁奇。無不與太守享其樂者。而太守遽稱之曰自娛。則其不以向之賓客。置人品中耶。何示人以不廣歟。予笑而應之曰。客安有是言哉。方僕之爲省郞也。出則黃裾喝道。入則方丈滿前。當是之時。在膏梁之子。則雖若不足。於僕則大過矣。然詩人命薄。自古而然。忽一旦被有司所誣枉。而落此幽荒卑濕之地者。殆天也。非人也。若屋宇宏傑。居處華靡。不痛自貶損。則非天所以處我之意。而祗益招禍耳。然則玆陋也。獨予之所自娛。而衆人之所深矉也。豈可以己之所偏嗜。而欲強人以同之哉。如或有籩豆之設。聲色之歡。則予亦何心獨享其樂。而忍不與賓客共之耶。然居是州處是堂。其無此樂也審矣。又何疑哉。客慙而退。因以誌之。時己卯六月二十四日也。
정우(貞祐) 칠년 초여름에 내가 좌사간 지제고에서 계양(桂陽)의 수령으로 귀양 갔다. 고을 사람들이 깊은 산 곁 갈대 사이에 있는, 달팽이가 껍질이 깨진 것처럼 무너져 가는 집 하나를 태수의 거처로 삼았다.
그 제도를 보면 들보를 얹고 마룻대를 걸어 억지로 집이라 이름한 것일 뿐이다. 우러러도 머리를 들기에 넉넉하지 않고 굽어도 무릎을 뻗기에 넉넉하지 않다. 더위를 당해 거기 있으면 깊은 시루 속에 들어가 찌고 데는 것 같다. 아내와 아이와 종들이 찡그리며 다 나아가 살려 하지 않았다. 나만이 홀로 기뻐하며 물 뿌리고 쓸고 거기 처하였다. 이로 인해 그 집에 「자오(自娛)」라 써 붙였다.
손 가운데 그 까닭을 따지는 이가 있어 말하였다. 「지금의 태수는 옛날의 방백(邦伯)입니다. 손님과 뵙기를 청하는 이가 날마다 서로 잇달아, 이 집에 오르는 이가 다 관아의 준수한 이와 유가와 불가의 뛰어난 이라 태수와 그 즐거움을 함께 누리지 않는 이가 없습니다. 그런데 태수가 갑자기 「스스로 즐긴다」 일컬으니, 이는 앞서 말한 손님들을 사람 축에 두지 않는 것입니까. 어찌 사람에게 넓지 못함을 보이십니까.」
내가 웃으며 대답하였다. 「그대가 어찌 이런 말을 하는가. 바야흐로 내가 성랑(省郞)이 되었을 때에는 나가면 누른 옷 입은 이가 길을 치우고 들어오면 한 길 되는 상이 앞에 가득했다. 이때를 당하여 기름진 것을 먹는 집 자식에게는 비록 넉넉하지 않은 듯하나 나에게는 크게 지나쳤다. 그러나 시인의 명이 박한 것은 예로부터 그러하다. 문득 하루아침에 유사(有司)에게 무고를 당해 이 그윽하고 거칠고 낮고 축축한 땅에 떨어진 것은 아마 하늘이지 사람이 아니다. 만약 집이 크고 뛰어나며 거처가 화려하고 사치하여 통렬히 스스로 낮추고 덜지 않는다면, 이는 하늘이 나를 대접하는 뜻이 아니요 다만 더욱 화를 부를 뿐이다.
그렇다면 이 누추함은 유독 내가 스스로 즐기는 바요 뭇사람이 깊이 찡그리는 바다. 어찌 제가 치우쳐 즐기는 것으로 남에게 억지로 같이하게 하려 하겠는가. 만약 혹 제기의 차림과 소리와 빛깔의 즐거움이 있다면, 내가 또한 무슨 마음으로 홀로 그 즐거움을 누리고 차마 손님과 함께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이 고을에 살고 이 집에 처하여 이런 즐거움이 없는 것이 분명하니 또 무엇을 의심하겠는가.」
손이 부끄러워하며 물러갔다. 이로 인해 이를 적는다. 때는 기묘년 유월 스무나흗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