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양 초정기(草亭記)桂陽草亭記
桂陽。僻在蓬艾之間。無一林泉勝境可以遊踐者。唯南山之側。有一亭焉。父老相傳云。故相國許公洪才嘗典是州。初相其地。築石而臺之。故太守李諱實忠。疏水作沼。跨亭於其上也。一間十椽。覆之以茅。示儉也。縱廣不過八尺。坐不過八人。殺其度也。水出巖罅。極寒冽如氷。雖盛夏入浴。毛髮立豎。不可奈久。加以盤松茂樹。布陰產涼。淸風自來。畏景不逼。最愜於避暑。故有額曰滌暑。然州人猶以草亭呼之。或曰。此地有奇形勝勢。尤利於爲州者。斯類巫瞽不經之說。儒者所宜愼導。然俚言野語。有時而中。亦不可不信也。先僕之未到。忽爲燒琴煮鶴者所毀。荒涼舊地而已。予見而傷之。召州吏謂曰。亭是李太守所創。庸害汝州。而乃敢毀耶。古人有思其人。不翦甘棠者。敢毀亭耶。吏默然而退。尋拾舊材。咄嗟更搆。明日。以畢事來告。予與僚友置酒落之。噫。予以去歲孟炎。自補闕出守是州。至今年六月。除拜禮部郞中起居注知制誥。將詣天闕。僚友諸君曰。此亭。太守所重開也。不留誌。無以使後者知之。予然之。因書大槩。囑後來者之無輕廢毀。且爲李太守存不朽之迹耳。時庚辰七月日。老守禮部員外郞李某記。
계양은 쑥과 다북쑥 사이에 외지게 있어 노닐고 밟을 만한 숲과 샘의 빼어난 지경이 하나도 없다. 오직 남산 곁에 정자 하나가 있다.
늙은이들이 서로 전하기를 「돌아간 상국 허공 홍재(許公洪才)가 일찍이 이 고을을 맡았을 때 처음 그 땅을 살펴 돌을 쌓아 대를 만들었고, 돌아간 태수 이휘 실충(李諱實忠)이 물을 트고 못을 만들어 그 위에 정자를 걸쳤다」 한다.
한 칸에 서까래 열이요 띠로 덮었으니 검소함을 보인 것이다. 세로와 가로가 여덟 자에 지나지 않고 앉는 이가 여덟 사람에 지나지 않으니 그 법도를 줄인 것이다. 물이 바위 틈에서 나오는데 몹시 차가워 얼음 같다. 비록 한여름에 들어가 목욕해도 털이 곤두서 오래 견딜 수 없다. 게다가 서린 솔과 무성한 나무가 그늘을 펴고 서늘함을 내며 맑은 바람이 절로 와 두려운 볕이 다가오지 못한다. 더위를 피하기에 가장 알맞으므로 「척서(滌暑)」라는 이름이 있다. 그러나 고을 사람들은 오히려 「초정(草亭)」이라 부른다.
어떤 이가 말하기를 「이 땅에 기이한 형세와 빼어난 기세가 있어 고을을 다스리는 데 더욱 이롭다」 한다. 이런 따위는 무당과 눈먼 이의 법도에 맞지 않는 말이라 유자가 마땅히 이끌기를 삼가야 할 바다. 그러나 속된 말과 시골 이야기도 때로 맞는 것이 있으니 또한 믿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이르기 전에 문득 거문고를 태우고 학을 삶는 자에게 헐려 거친 옛터가 되었을 뿐이었다. 내가 보고 마음 상하여 고을 아전을 불러 말하였다. 「정자는 이 태수가 지은 것이다. 어찌 너희 고을에 해가 되기에 감히 헐었느냐. 옛사람 가운데 그 사람을 생각하여 감당나무를 베지 않은 이가 있는데 감히 정자를 헐었느냐.」 아전이 잠자코 물러갔다. 이윽고 옛 재목을 주워 눈 깜짝할 사이에 다시 얽었다. 이튿날 일을 마쳤다고 고하러 왔다. 내가 동료들과 술자리를 차려 낙성하였다.
아, 나는 지난해 초여름에 보궐(補闕)에서 나가 이 고을을 지켰고, 올해 유월에 예부낭중 기거주 지제고에 임명되어 장차 대궐로 나아가려 한다. 동료 여러분이 말하였다. 「이 정자는 태수가 거듭 연 것입니다. 기록을 남기지 않으면 뒤에 오는 이가 알게 할 길이 없습니다.」 내가 그렇게 여겨, 이로 인해 대강을 적어 뒤에 오는 이가 가벼이 헐어 버리지 말기를 부탁하고 또 이 태수를 위해 썩지 않을 자취를 남길 뿐이다. 때는 경진년 칠월 아무 날, 늙은 수령 예부원외랑 이 아무개가 적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