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동국이상국집 › 전집 권24

계양 초정기(草亭記)桂陽草亭記

동국이상국집 東國李相國集 · 이규보(李奎報) · 1241년 (고려 고종 28) 엮음 · 1251년 고쳐 보탬 · 단락 1 · 한자 390자 · 낭독 3.6분

동국이상국집 전집 권24 고려 이규보가 평생 지은 글을 아들 이함이 1241년에 엮어 새기고, 손자 이익배가 1251년에 고쳐 보탠 문집. 시와 부, 임금께 올린 표와 전, 절과 탑에 붙인 기, 비명과 묘지명, 편지와 서문, 그리고 몽골이 쳐들어온 때에 오간 국서까지 담겼다. 고구려 시조를 노래한 「동명왕편」이 전집 권3에 있고, 술과 거문고와 시를 벗 삼아 스스로 백운거사라 한 사람의 하루하루가 후집에 남아 있다. 책은 그가 눈을 앓다 붓을 놓는 마지막 시와, 그가 죽은 뒤 남이 지어 붙인 뇌서·묘지명으로 닫힌다.

桂陽。僻在蓬艾之間。無一林泉勝境可以遊踐者。唯南山之側。有一亭焉。父老相傳云。故相國許公洪才嘗典是州。初相其地。築石而臺之。故太守李諱實忠。疏水作沼。跨亭於其上也。一間十椽。覆之以茅。示儉也。縱廣不過八尺。坐不過八人。殺其度也。水出巖罅。極寒冽如氷。雖盛夏入浴。毛髮立豎。不可奈久。加以盤松茂樹。布陰產涼。淸風自來。畏景不逼。最愜於避暑。故有額曰滌暑。然州人猶以草亭呼之。或曰。此地有奇形勝勢。尤利於爲州者。斯類巫瞽不經之說。儒者所宜愼導。然俚言野語。有時而中。亦不可不信也。先僕之未到。忽爲燒琴煮鶴者所毀。荒涼舊地而已。予見而傷之。召州吏謂曰。亭是李太守所創。庸害汝州。而乃敢毀耶。古人有思其人。不翦甘棠者。敢毀亭耶。吏默然而退。尋拾舊材。咄嗟更搆。明日。以畢事來告。予與僚友置酒落之。噫。予以去歲孟炎。自補闕出守是州。至今年六月。除拜禮部郞中起居注知制誥。將詣天闕。僚友諸君曰。此亭。太守所重開也。不留誌。無以使後者知之。予然之。因書大槩。囑後來者之無輕廢毀。且爲李太守存不朽之迹耳。時庚辰七月日。老守禮部員外郞李某記。

계양은 쑥과 다북쑥 사이에 외지게 있어 노닐고 밟을 만한 숲과 샘의 빼어난 지경이 하나도 없다. 오직 남산 곁에 정자 하나가 있다.

늙은이들이 서로 전하기를 「돌아간 상국 허공 홍재(許公洪才)가 일찍이 이 고을을 맡았을 때 처음 그 땅을 살펴 돌을 쌓아 대를 만들었고, 돌아간 태수 이휘 실충(李諱實忠)이 물을 트고 못을 만들어 그 위에 정자를 걸쳤다」 한다.

한 칸에 서까래 열이요 띠로 덮었으니 검소함을 보인 것이다. 세로와 가로가 여덟 자에 지나지 않고 앉는 이가 여덟 사람에 지나지 않으니 그 법도를 줄인 것이다. 물이 바위 틈에서 나오는데 몹시 차가워 얼음 같다. 비록 한여름에 들어가 목욕해도 털이 곤두서 오래 견딜 수 없다. 게다가 서린 솔과 무성한 나무가 그늘을 펴고 서늘함을 내며 맑은 바람이 절로 와 두려운 볕이 다가오지 못한다. 더위를 피하기에 가장 알맞으므로 「척서(滌暑)」라는 이름이 있다. 그러나 고을 사람들은 오히려 「초정(草亭)」이라 부른다.

어떤 이가 말하기를 「이 땅에 기이한 형세와 빼어난 기세가 있어 고을을 다스리는 데 더욱 이롭다」 한다. 이런 따위는 무당과 눈먼 이의 법도에 맞지 않는 말이라 유자가 마땅히 이끌기를 삼가야 할 바다. 그러나 속된 말과 시골 이야기도 때로 맞는 것이 있으니 또한 믿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이르기 전에 문득 거문고를 태우고 학을 삶는 자에게 헐려 거친 옛터가 되었을 뿐이었다. 내가 보고 마음 상하여 고을 아전을 불러 말하였다. 「정자는 이 태수가 지은 것이다. 어찌 너희 고을에 해가 되기에 감히 헐었느냐. 옛사람 가운데 그 사람을 생각하여 감당나무를 베지 않은 이가 있는데 감히 정자를 헐었느냐.」 아전이 잠자코 물러갔다. 이윽고 옛 재목을 주워 눈 깜짝할 사이에 다시 얽었다. 이튿날 일을 마쳤다고 고하러 왔다. 내가 동료들과 술자리를 차려 낙성하였다.

아, 나는 지난해 초여름에 보궐(補闕)에서 나가 이 고을을 지켰고, 올해 유월에 예부낭중 기거주 지제고에 임명되어 장차 대궐로 나아가려 한다. 동료 여러분이 말하였다. 「이 정자는 태수가 거듭 연 것입니다. 기록을 남기지 않으면 뒤에 오는 이가 알게 할 길이 없습니다.」 내가 그렇게 여겨, 이로 인해 대강을 적어 뒤에 오는 이가 가벼이 헐어 버리지 말기를 부탁하고 또 이 태수를 위해 썩지 않을 자취를 남길 뿐이다. 때는 경진년 칠월 아무 날, 늙은 수령 예부원외랑 이 아무개가 적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