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동국이상국집 › 전집 권24

계양에서 바다를 바라본 기록桂陽望海志

동국이상국집 東國李相國集 · 이규보(李奎報) · 1241년 (고려 고종 28) 엮음 · 1251년 고쳐 보탬 · 단락 1 · 한자 399자 · 낭독 3.7분

동국이상국집 전집 권24 고려 이규보가 평생 지은 글을 아들 이함이 1241년에 엮어 새기고, 손자 이익배가 1251년에 고쳐 보탠 문집. 시와 부, 임금께 올린 표와 전, 절과 탑에 붙인 기, 비명과 묘지명, 편지와 서문, 그리고 몽골이 쳐들어온 때에 오간 국서까지 담겼다. 고구려 시조를 노래한 「동명왕편」이 전집 권3에 있고, 술과 거문고와 시를 벗 삼아 스스로 백운거사라 한 사람의 하루하루가 후집에 남아 있다. 책은 그가 눈을 앓다 붓을 놓는 마지막 시와, 그가 죽은 뒤 남이 지어 붙인 뇌서·묘지명으로 닫힌다.

路四出桂之徼。唯一面得通於陸。三面皆水也。始予謫守是州。環顧水之蒼然浩然者。疑入島嶼中。悒悒然不樂。輒低首閉眼不欲見也。及二年夏六月。除拜省郞。將計日上道。以復于京師。則向之蒼然浩然者。皆可樂也。於是凡可以望海者。無不遊踐。始於萬日寺樓上望之。大舶點波心。僅若鳧鴨之游泳者。小舟則如人入水微露其頭者。帆蓆之去。僅類人揷高帽而行者。群山衆島。杳然相望。有屺者峐者。跂者伏者。脊出者䯻擢者。中穿如穴者。首凸如傘頭者。寺僧來佐望。輒以手指點之。島曰。彼紫燕也。高燕也。麒麟也。山曰。彼京都之鵠嶺也。彼昇天府之鎭也。龍山也。仁州之望也。通津之望也。歷歷而數。如指諸掌。是日予甚樂焉。與與遊者觴之。乘醉而反。後數日。遊明月寺亦如之。然明月頗有山之掩翳者。不若萬日之豁敞也。後數日。復循山而北。竝海而東。觀潮水之激薄與海市之變怪。或乘馬。或步行。稍憊而後還焉。與遊者某某人。皆携壺縱之。嗚呼。水向者之水也。心向者之心也。以向之所忌見者。今反爲嗜觀。豈以得區區一官之故歟。心吾心也。不能自制。使因時貿易之如此。其於一死生齊得喪。得可冀乎。後尙可警故志之。

길이 사방으로 나는 계양의 변두리는 오직 한 면만 뭍에 통하고 세 면이 다 물이다. 처음 내가 이 고을에 귀양 와 수령이 되었을 때, 물이 푸르고 아득한 것을 둘러보고 섬 가운데 들어온 것인가 의심하여 답답하게 즐겁지 않았다. 문득 머리를 숙이고 눈을 감아 보려 하지 않았다.

두 해째 여름 유월에 이르러 성랑(省郞)에 임명되어 장차 날을 헤아려 길을 떠나 서울로 돌아가게 되니, 앞서 푸르고 아득하던 것이 다 즐길 만하였다. 이에 무릇 바다를 바라볼 만한 곳이면 노닐어 밟지 않은 데가 없었다.

만일사(萬日寺) 누각 위에서 바라보기 시작했다. 큰 배가 물결 가운데 점 같아 겨우 오리와 집오리가 헤엄치는 것 같고, 작은 배는 사람이 물에 들어가 머리만 살짝 내민 것 같다. 돛을 달고 가는 것은 겨우 사람이 높은 갓을 꽂고 가는 것 같다. 뭇 산과 여러 섬이 아득히 서로 바라보는데, 민둥한 것도 있고 나무 있는 것도 있으며, 발돋움한 것도 있고 엎드린 것도 있으며, 등마루가 나온 것도 있고 상투가 뽑힌 것도 있으며, 가운데가 구멍처럼 뚫린 것도 있고 머리가 일산 꼭대기처럼 볼록한 것도 있다.

절의 중이 와서 바라보는 것을 도와 문득 손으로 가리켰다. 섬을 두고는 「저것은 자연도(紫燕島)요 고연도(高燕島)요 기린도(麒麟島)입니다」 하고, 산을 두고는 「저것은 서울의 곡령(鵠嶺)이요, 저것은 승천부(昇天府)의 진산이요 용산(龍山)이요 인주(仁州)의 진산이요 통진(通津)의 진산입니다」 하며 또렷또렷 세니 손바닥을 가리키는 듯하였다. 이날 나는 몹시 즐거웠다. 함께 노니는 이와 술을 마시고 취하여 돌아왔다.

며칠 뒤 명월사(明月寺)에 노닌 것도 또한 그러하였다. 그러나 명월사는 자못 산에 가린 것이 있어 만일사의 훤히 트인 것만 못하였다.

며칠 뒤 다시 산을 따라 북쪽으로 가고 바다를 끼고 동쪽으로 가서, 밀물이 부딪치는 것과 신기루가 괴이하게 변하는 것을 보았다. 혹 말을 타고 혹 걸어서 조금 지친 뒤에 돌아왔다. 함께 노닌 이는 아무개 아무개인데 다 술병을 들고 마음껏 즐겼다.

아, 물은 앞서의 그 물이요 마음은 앞서의 그 마음이다. 앞서 보기 꺼리던 것을 이제 도리어 즐겨 보게 되었으니 어찌 자잘한 벼슬 하나를 얻은 까닭인가. 마음은 내 마음이건만 스스로 억제하지 못하여 때에 따라 이처럼 바뀌게 하니, 죽고 사는 것을 하나로 보고 얻고 잃는 것을 가지런히 하는 데 이르기를 바랄 수 있겠는가. 뒤에 오히려 경계할 만하므로 이를 적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