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개동기(天開洞記)天開洞記
泰和二年壬戌歲。予去城東之舊居。卜遷于城南安申之里。有冷泉潺湲。出於洞之左趾之巖竇。洞深地奧。如山村野居。蕭洒可愛。予居之甚樂。但洞名塞。雖吾亦不喜其名。後數載。有白秀才廷珪者來卜隣。其嚴君右承宣翰林學士某。或來寓居。往往嘗謂予曰。洞名殊未佳。子盍改之耶。予對曰。業已呼之久矣。非特此洞。擧一國皆呼之。予雖名之。豈盡戶曉。使皆導耶。矧微者所名。孰從之耶。遂不改至于今。然予之卜居是洞。今已二十餘年矣。自始來不數載。得除拜翰林。驟歷華要。今已踐四品矣。白君亦如之。自卜居于此。始得仕。累遷至侍御史。自爾美官豐祿者。衮衮來居。鬱乎騶騎之旁午。則予以爲天將大啓玆洞矣。夫否極則泰。塞久則通。是陰陽常數。洞之將啓也。予不可以不新其名。以答天意。於是。乃名之曰天開。今雖未使人導吾所名者。安知後世不有人能喩萬人。使皆得導玆名耶。人雖不呼之。天若知所以名之之意。則洞之益啓也無疑矣。況始之名塞者。人猶從之。若玆名豈終廢者耶。貞祐十一年癸未歲記。
태화(泰和) 이년 임술년에 내가 성 동쪽의 옛집을 떠나 성 남쪽 안신리(安申里)로 옮겨 자리를 잡았다. 찬 샘이 졸졸 골짜기 왼쪽 기슭의 바위 구멍에서 나온다. 골짜기가 깊고 땅이 그윽하여 산골 마을이나 들집 같아 시원하고 사랑스러웠다. 내가 살면서 몹시 즐거웠다. 다만 골짜기 이름이 「색(塞)」이라 비록 나도 그 이름을 좋아하지 않았다.
몇 해 뒤 백 수재 정규(白秀才廷珪)라는 이가 와서 이웃에 자리를 잡았다. 그 아버지인 우승선 한림학사 아무개가 혹 와서 붙어 살았는데 이따금 내게 말하였다. 「골짜기 이름이 자못 아름답지 못하니 그대가 어찌 고치지 않는가.」 내가 대답하였다. 「이미 부른 지 오래입니다. 이 골짜기뿐 아니라 온 나라가 다 그렇게 부릅니다. 제가 비록 이름을 짓는다 한들 어찌 집집이 다 깨우쳐 다들 그렇게 부르게 하겠습니까. 하물며 하찮은 이가 지은 이름을 누가 좇겠습니까.」 마침내 고치지 않고 지금에 이르렀다.
그러나 내가 이 골짜기에 자리 잡아 산 지 이제 이미 스무 해 남짓이다. 처음 온 뒤 몇 해 되지 않아 한림에 임명되고 빠르게 화려하고 요긴한 자리를 거쳐 이제 이미 사품을 밟았다. 백군도 또한 그러하여 여기에 자리 잡은 뒤로 비로소 벼슬하여 여러 번 옮겨 시어사에 이르렀다. 이로부터 아름다운 벼슬과 넉넉한 녹을 받는 이가 끊임없이 와서 살아, 말 탄 하인이 사방으로 오가는 것이 성하다.
그래서 나는 하늘이 장차 이 골짜기를 크게 열려 하는 것이라 여긴다. 무릇 막힘이 다하면 트이고 막힌 지 오래면 통하니 이는 음양의 떳떳한 이치다. 골짜기가 장차 열리려 하니 내가 그 이름을 새로 하여 하늘의 뜻에 답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곧 「천개(天開)」라 이름하였다.
이제 비록 사람들에게 내가 지은 이름을 부르게 하지 못하나, 후세에 능히 만 사람을 깨우쳐 다들 이 이름을 부르게 할 이가 없을 줄 어찌 알겠는가. 사람이 비록 부르지 않아도 하늘이 만약 이름 지은 뜻을 안다면 골짜기가 더욱 열릴 것이 의심할 바 없다. 하물며 처음에 「색」이라 이름한 것도 사람들이 오히려 좇았으니, 이 이름 같은 것이 어찌 끝내 폐하겠는가. 정우 십일년 계미년에 적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