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동국이상국집 › 전집 권24

의왕사(醫王寺)에서 처음으로 아라한전(阿羅漢殿)을 지은 것에 대한 기醫王寺。始創阿羅漢殿記。

동국이상국집 東國李相國集 · 이규보(李奎報) · 1241년 (고려 고종 28) 엮음 · 1251년 고쳐 보탬 · 단락 1 · 한자 576자 · 낭독 5.1분

동국이상국집 전집 권24 고려 이규보가 평생 지은 글을 아들 이함이 1241년에 엮어 새기고, 손자 이익배가 1251년에 고쳐 보탠 문집. 시와 부, 임금께 올린 표와 전, 절과 탑에 붙인 기, 비명과 묘지명, 편지와 서문, 그리고 몽골이 쳐들어온 때에 오간 국서까지 담겼다. 고구려 시조를 노래한 「동명왕편」이 전집 권3에 있고, 술과 거문고와 시를 벗 삼아 스스로 백운거사라 한 사람의 하루하루가 후집에 남아 있다. 책은 그가 눈을 앓다 붓을 놓는 마지막 시와, 그가 죽은 뒤 남이 지어 붙인 뇌서·묘지명으로 닫힌다.

昔者。我佛氏之弟子有五百大士。初得阿羅漢道。便自以爲究竟滅度。故閱華嚴鹿苑方等般若四時。猶未證大法。至法華日輪亭午時。開佛知見。入大乘藏。則五百聖師於天台法門。爲有因矣。今夫距京師若干步。有古殘寺。曰醫王。天台老宿惠拔來居之。悉修廢更新。非復舊醫王也。宗門上匠大禪師覺公來遊。方禮慈氏殿。見五百尊像散頓陬隙。霾侵塵蝕。丹靑漫暗。遂召拔公。相與拂拭。異眼而同泣。仰弔尊容。四手而一心。共尋遺逸。課其所未得。則凡二十有七幀也。拔公謂禪師曰。尊像之在此。歷祀爲塵埃所蔽。雖常住如吾輩者。猶不得而見之。至禪師始見而發之。此豈無待而然耶。禪師亦噓戲良久。尋募工繪畫。補其所未得者。其古像則崔侍郞光宰請緝理之。師欣然許之。其理之也。悉以水類洗。垢落色見。宛然稍新。凡緣飾無不新之。皆軸以檀香。并畫主佛監齋使者像。拔公特新其殿以迎之。是寺於是始有五百聖師之殿。此豈聖師與法門因緣之致耶。初禪師命工畫尊容。夢有人以所畫像授之。師先受一像視之。乃頭陀像也。明日。畫工以功畢來告。果先授一幀。髮垂過額。其夢中所見也。又有一尼請於崔公得一幀。欲補還之而未爾。夫人未知尼之請去。搜尋未得。夜夢一僧來告曰。我在尼院。夫人覺而異之。訪於尼院。果得焉。噫。人苟有篤誠。則至人之應物也。如符合吻交。若此其速。庸可議乎。且尊像之久沒也。我大禪師。始見而發之。乃至補足其闕。則譬之爲山。幾已穹然矣。其從而築之。增至岌嶪者。拔公崔公之謂也。託斯文而欲勒此功山者。居士春卿也。居士亦儒衣而學步止觀者也。合是而能事畢矣。若他日得見五百普明如來。此豈非今日之因歟。明昌六年月日記。

옛날 우리 부처의 제자에 오백 대사가 있었다. 처음에 아라한의 도를 얻고 곧 스스로 끝까지 멸도(滅度)했다고 여겼다. 그러므로 화엄(華嚴)과 녹원(鹿苑)과 방등(方等)과 반야(般若)의 네 때를 지나고도 오히려 큰 법을 증득하지 못했다. 법화(法華)의 해가 한낮에 이르러서야 부처의 지견을 열어 대승의 곳간에 들었으니, 그렇다면 오백 성사(聖師)는 천태(天台)의 법문에 인연이 있는 것이다.

이제 서울에서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옛 쇠잔한 절이 있어 「의왕」이라 한다. 천태의 노숙(老宿) 혜발(惠拔)이 와서 살며 무너진 것을 다 고쳐 새롭게 하니 다시 옛 의왕사가 아니다.

종문(宗門)의 뛰어난 장인인 대선사 각공(覺公)이 와서 노닐다가 바야흐로 자씨전(慈氏殿)에 예를 올리는데, 오백 존상이 구석과 틈에 흩어져 놓여 흙비에 침노당하고 티끌에 좀먹어 단청이 흐려진 것을 보았다. 마침내 발공을 불러 서로 더불어 떨고 닦으니 눈은 달라도 마음은 같아 함께 울었다. 우러러 존안을 조상하며 손은 넷이나 마음은 하나로 함께 빠진 것을 찾아, 얻지 못한 것을 헤아리니 무릇 스물일곱 폭이었다.

발공이 선사에게 말하였다. 「존상이 여기 있으면서 여러 해 티끌에 가려, 비록 늘 머무는 우리 같은 이도 오히려 보지 못했습니다. 선사에 이르러 비로소 보고 드러내셨으니 이것이 어찌 기다림 없이 그러한 것이겠습니까.」 선사도 또한 한참 한숨짓고 탄식하였다.

이윽고 장인을 모아 그림을 그려 얻지 못한 것을 채웠다. 그 옛 상은 최 시랑 광재(崔侍郞光宰)가 손질하기를 청하니 스님이 기꺼이 허락하였다. 그것을 손질할 때 다 물 종류로 씻으니 때가 떨어지고 빛깔이 드러나 완연히 조금 새로워졌다. 무릇 가장자리 꾸밈을 새로 하지 않은 것이 없고 다 단향으로 축을 하였으며, 아울러 주불(主佛)과 감재사자(監齋使者)의 상을 그렸다. 발공이 특별히 그 전각을 새로 하여 맞이하였다. 이 절이 이에 비로소 오백 성사의 전각을 두게 되었으니, 이것이 어찌 성사와 법문의 인연이 이룬 것이 아니겠는가.

처음에 선사가 장인에게 존상을 그리라 명했을 때 꿈에 어떤 사람이 그린 상을 주었다. 스님이 먼저 상 하나를 받아 보니 곧 두타(頭陀)의 상이었다. 이튿날 화공이 공역을 마쳤다고 고하러 왔는데, 과연 먼저 한 폭을 주었고 머리털이 드리워 이마를 지났으니 그 꿈에 본 것이었다.

또 어떤 비구니가 최공에게 청하여 한 폭을 얻었는데 채워 돌려주려 하다가 그러지 못했다. 부인이 비구니가 청하여 간 줄 알지 못하고 찾아도 얻지 못했다. 밤 꿈에 어떤 중이 와서 고하기를 「나는 비구니의 절에 있다」 하였다. 부인이 깨어 이상하게 여겨 비구니의 절에 물으니 과연 얻었다.

아, 사람이 진실로 도타운 정성이 있으면 지극한 이가 사물에 응하는 것이 부절이 맞고 입술이 맞는 것 같아 이처럼 빠르니 어찌 의논할 수 있겠는가.

또 존상이 오래 묻혀 있다가 우리 대선사가 비로소 보고 드러내어 마침내 그 빠진 것을 채우기에 이르렀으니, 산을 만드는 데 비유하면 거의 이미 우뚝해진 것이다. 뒤따라 쌓아 높고 험한 데까지 더한 것은 발공과 최공을 이르는 것이다. 이 글에 부탁하여 이 공덕의 산을 새기려 한 이는 거사 춘경이다. 거사도 또한 유자의 옷을 입고 지관(止觀)을 배우는 이다. 이를 합하면 능히 할 일이 다 갖추어졌다. 만약 뒷날 오백 보명여래(普明如來)를 뵙게 된다면 이것이 어찌 오늘의 인연이 아니겠는가. 명창(明昌) 육년 아무 달 아무 날에 적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