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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사(開天寺) 청석탑(靑石塔)의 기와 명開天寺靑石塔記銘

동국이상국집 東國李相國集 · 이규보(李奎報) · 1241년 (고려 고종 28) 엮음 · 1251년 고쳐 보탬 · 단락 2 · 한자 319자 · 낭독 2.9분

동국이상국집 전집 권24 고려 이규보가 평생 지은 글을 아들 이함이 1241년에 엮어 새기고, 손자 이익배가 1251년에 고쳐 보탠 문집. 시와 부, 임금께 올린 표와 전, 절과 탑에 붙인 기, 비명과 묘지명, 편지와 서문, 그리고 몽골이 쳐들어온 때에 오간 국서까지 담겼다. 고구려 시조를 노래한 「동명왕편」이 전집 권3에 있고, 술과 거문고와 시를 벗 삼아 스스로 백운거사라 한 사람의 하루하루가 후집에 남아 있다. 책은 그가 눈을 앓다 붓을 놓는 마지막 시와, 그가 죽은 뒤 남이 지어 붙인 뇌서·묘지명으로 닫힌다.

宗室廣陵侯沔。軒裳中。有出塵之想。淡如也。方外之交。有高僧某者。就豐歲縣之南壤。得古寺曰開天。方創而新之也。侯爲之檀越。尤有力焉。師之高弟弟子玄規見之。乃嘆曰。師所樹立如此。吾居其門。無一事有所措焉。則亦一恥也。於是遂立梵所謂窣堵波者。悉用靑石爲之。展轉盤互。凡十有三級。旣成。遂報於侯。且曰。髡所腐亦土毛。若恬安汨沒。無分寸之效。而溘先朝露。則其若國恩何。用是思有以奉福朝家者。今營此區區一石浮圖。旣辦矣。第待爲文者銘之。爲不朽之圖耳。侯聞其言。嘉其所守惇固有不可欺者。書抵隴西李春卿。託以記銘。予雖不能文。義不欲蓋人之善。且重違侯請。敢受而銘之。時皇上卽祚之元年某月日也。銘曰。

종실 광릉후 면(廣陵侯沔)은 벼슬아치 가운데 티끌을 벗어난 생각이 있어 담박하다. 세상 밖의 사귐에 어떤 고승이 있어, 풍세현(豐歲縣)의 남쪽 땅에 나아가 개천이라는 옛 절을 얻어 바야흐로 지어 새롭게 하였다. 후가 그를 위해 시주가 되어 더욱 힘을 썼다.

스님의 높은 제자 현규(玄規)가 이를 보고 곧 탄식하였다. 「스님이 세운 것이 이와 같은데 내가 그 문하에 있으면서 한 가지 일도 손댄 바가 없으니 이 또한 한 가지 부끄러움이다.」 이에 마침내 범어로 이른바 솔도파(窣堵波)라는 것을 세우되 다 푸른 돌로 만들었다. 굴려 돌리고 서리어 무릇 열세 층이었다.

이미 이루어지자 마침내 후에게 아뢰고 또 말하였다. 「중이 썩힐 것도 또한 땅의 털입니다. 만약 편안히 골몰하여 조금의 공효도 없이 아침 이슬보다 먼저 사라진다면 나라의 은혜를 어찌하겠습니까. 이 때문에 나라에 복을 받들 것을 생각하였습니다. 이제 이 자잘한 돌탑 하나를 지어 이미 마쳤으니, 다만 글 짓는 이가 명(銘)을 지어 썩지 않을 도모로 삼기를 기다릴 뿐입니다.」

후가 그 말을 듣고 그 지키는 바가 도탑고 굳어 속일 수 없는 것이 있음을 아름답게 여겨, 글을 써 농서 이춘경(隴西李春卿)에게 부쳐 기와 명을 부탁하였다. 내가 비록 글을 잘하지 못하나 의리로 남의 착함을 덮으려 하지 않고, 또 후의 청을 거듭 어기기 어려워 감히 받아 명을 짓는다. 때는 황상께서 즉위하신 첫해 아무 달 아무 날이다. 명에 이른다.

2명

雙林滅度。是我大雄。若云已滅。一切皆空。雖塔全身。何有於中。是滅非滅。究竟無漏。百億化身。於何不覩。然則是塔。亦佛所住。佛從何來。塔復何物。見塔忘塔。寶塔乃出。由是塔故。得見諸佛。

쌍림(雙林)에서 멸도하신 이 이는 우리 대웅(大雄)이시네 만약 이미 멸했다 하면 온갖 것이 다 비었네 비록 온몸을 탑에 모셨으나 그 가운데 무엇이 있으랴 이 멸함은 멸함이 아니니 마침내 샘이 없네 백억의 화신을 어디선들 보지 못하랴 그렇다면 이 탑도 또한 부처가 머무시는 곳이네 부처는 어디서 오시며 탑은 또 무슨 물건인가 탑을 보되 탑을 잊으면 보배 탑이 곧 나오네 이 탑으로 말미암은 까닭에 모든 부처를 뵙게 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