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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향산 보현사 당주 비로자나여래 장륙 소상기(丈六塑像記)妙香山普賢寺堂主毗盧遮那如來丈六塑像記

동국이상국집 東國李相國集 · 이규보(李奎報) · 1241년 (고려 고종 28) 엮음 · 1251년 고쳐 보탬 · 단락 1 · 한자 748자 · 낭독 6.8분

동국이상국집 전집 권24 고려 이규보가 평생 지은 글을 아들 이함이 1241년에 엮어 새기고, 손자 이익배가 1251년에 고쳐 보탠 문집. 시와 부, 임금께 올린 표와 전, 절과 탑에 붙인 기, 비명과 묘지명, 편지와 서문, 그리고 몽골이 쳐들어온 때에 오간 국서까지 담겼다. 고구려 시조를 노래한 「동명왕편」이 전집 권3에 있고, 술과 거문고와 시를 벗 삼아 스스로 백운거사라 한 사람의 하루하루가 후집에 남아 있다. 책은 그가 눈을 앓다 붓을 놓는 마지막 시와, 그가 죽은 뒤 남이 지어 붙인 뇌서·묘지명으로 닫힌다.

佛滅度久矣。不有遺像。安所歸心。然則浮屠者之營造佛像。乃其職也。如吾儒家者流。繪畫夫子之像而宗事之也。雖然。其間有予所不悅者。若無賴男子假形浮屠。聲言營寺造佛。而其實自奉者是已。此則規有以取必於人。先務爲奇行。乃殘形垢服。燃頭灼臂。無所不爲。或冬月洗足踏雪。大其聲唱其願。徇路行喝。乃至千門萬戶。無所不踐。有不隨喜者。輒諭之強之。必取銖金寸帛然後乃已。此非特自造墮地獄之業。亦焉知不使人得慳貪誹謗之罪耶。何則。心之誠者。雖不飾其外。人悅而奉之。內之僞者。雖務奇示異。求眩於人。鮮克有心敬者。理之常也。比丘學珠。實誠而不僞者也。嘗棲妙香山普賢寺。草衣宴坐。不迹紅塵者久矣。普賢寺者。北地之名寺也。凡高人釋子遺世鍊眞者之所嘗遊集也。越貞祐某年丙子。契丹闌犯封境。無佛寺神祠。皆焚滅之。是寺亦爲煨燼。像設從而蕩掃。師慨然發憤。思欲營妥佛像。自以爲偏方小土。不可以成大事。遂間開徑到京師。每於稠人中。但言其所以營之之意。而不力於丐請。然見其貌聞其言者。無不悅而奉之。自上方至公侯卿相善男信女。皆願爲檀那。其委珍貨如山積焉。師於是充其經費。乃塑成堂主毗盧遮那如來丈六像及其補處文殊,普賢兩菩薩尊像。悉飾以金銀百寶。使光彩爛發。梵相具足。儼然若口言目動。而淸淨法身。宛如在前。至於鍾磬鑪缸之具。無不極其制而侈焉。噫。此大事也。脫使巨官腆祿者營之。有不堪其勞費者。學珠特一鉢髡耳。雖集衆緣。銖積寸累。然後爲之。顧力省效敏如此。則是豈偶然哉。必萬劫宿願之所漸也。及成。權措于相國崔公別齋。縉紳士大夫高人韻士。無不坌集膜拜。如見眞身。其以偈頌形容梵相者。不可勝計。予嘗謂師曰。夫以心法觀之。猶欲直踏其頂上。吾子方且塑其像。其於見性。不亦遼乎。師笑之曰。世薄民偸甚矣。焉得使人人皆坦然知直悟之旨耶。凡人情。對境起想。由想得因。然後入於道眞者也。予之營此像。蓋欲驅人以歸眞。勖人以敬佛耳。予始頷之。師曰。子旣頷吾言。其爲我記之可乎。予以不能文爲解。師不聽。凡納踵於吾門者累十。予懼其不已。遂筆之。師亦頗能屬文。著讚佛頌。其意有足觀者。貞祐十一年癸未二月日。某記。

부처가 멸도하신 지 오래다. 남긴 상이 있지 않으면 어디에 마음을 돌리겠는가. 그렇다면 중이 불상을 짓는 것은 곧 그 직분이다. 우리 유가의 무리가 부자(夫子)의 상을 그려 높이 섬기는 것과 같다.

그렇기는 하나 그 사이에 내가 좋아하지 않는 것이 있다. 무뢰한 사내가 중의 모습을 빌려 절을 짓고 불상을 만든다 소리쳐 말하면서 실은 제 몸을 받드는 자가 이것이다. 이런 자는 남에게 반드시 얻어 내려고 꾀하여, 먼저 기이한 행실 하기에 힘써 곧 몸을 상하고 옷을 더럽히며 머리를 태우고 팔을 지지며 하지 않는 것이 없다. 혹 겨울 달에 발을 씻고 눈을 밟으며 그 소리를 크게 하여 그 서원을 부르고, 길을 따라 다니며 외쳐 천 문 만 호에 이르기까지 밟지 않는 데가 없다. 따라 기뻐하지 않는 이가 있으면 문득 타이르고 억지로 시켜, 반드시 몇 푼의 금과 몇 치의 비단을 얻은 뒤에야 그만둔다. 이는 다만 스스로 지옥에 떨어질 업을 지을 뿐 아니라, 또한 사람으로 하여금 인색하고 탐하고 헐뜯는 죄를 얻게 하지 않을 줄 어찌 알겠는가.

어째서인가. 마음이 정성스러운 이는 비록 그 밖을 꾸미지 않아도 사람들이 기뻐하며 받들고, 속이 거짓인 이는 비록 기이한 것에 힘쓰고 남다른 것을 보여 사람에게 홀리기를 구해도 마음으로 공경하는 이가 드무니 이치의 떳떳함이다.

비구 학주(學珠)는 실로 정성스럽고 거짓이 없는 이다. 일찍이 묘향산 보현사에 깃들어 풀옷으로 고요히 앉아 붉은 티끌에 발을 딛지 않은 지 오래다. 보현사는 북쪽 지방의 이름난 절이다. 무릇 높은 이와 승려로 세상을 버리고 참됨을 단련하는 이가 일찍이 노닐며 모이던 곳이다.

정우 아무 해 병자년에 거란이 함부로 국경을 범하여 불사와 신사를 가리지 않고 다 불태워 없앴다. 이 절도 또한 잿더미가 되고 불상도 따라서 쓸려 없어졌다. 스님이 개연히 분발하여 불상을 지어 편안히 모실 것을 생각하였다. 스스로 치우친 지방의 작은 땅이라 큰일을 이룰 수 없다고 여겨 마침내 사이 길을 열어 서울에 이르렀다. 매번 사람이 많은 가운데서 다만 그것을 짓는 뜻만 말하고 빌기를 힘쓰지 않았다. 그런데 그 모습을 보고 그 말을 들은 이가 기뻐하며 받들지 않는 이가 없었다. 위로 임금에게서 공후와 경상과 선남선녀에 이르기까지 다 시주가 되기를 원하여, 진귀한 재물을 맡기는 것이 산처럼 쌓였다.

스님이 이에 그 경비를 채워 곧 당주 비로자나여래 장륙상과 그 보처(補處)인 문수와 보현 두 보살의 존상을 빚어 이루었다. 다 금과 은과 온갖 보배로 꾸며 광채가 찬란히 피어나고 부처의 상이 갖추어져, 엄연히 입으로 말하고 눈을 움직이는 듯하며 맑고 깨끗한 법신이 완연히 앞에 있는 듯하다. 종과 경쇠와 화로와 항아리의 도구에 이르기까지 그 제도를 다하여 넉넉하게 하지 않은 것이 없다.

아, 이는 큰일이다. 만약 큰 벼슬과 두터운 녹을 가진 이에게 짓게 하더라도 그 수고와 비용을 감당하지 못할 것이 있다. 학주는 다만 바리때 하나를 든 중일 뿐이다. 비록 뭇 인연을 모아 몇 푼을 쌓고 몇 치를 포갠 뒤에 하였으나, 돌아보건대 힘을 덜고 효험이 빠른 것이 이와 같으니 이것이 어찌 우연이겠는가. 반드시 만겁의 묵은 서원이 젖어 든 것이다.

이루어지자 상국 최공의 별채에 임시로 모셨는데, 벼슬아치와 사대부와 높은 이와 운치 있는 선비가 몰려와 절하고 참된 몸을 뵙듯이 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게송으로 부처의 상을 형용한 이를 다 셀 수 없다.

내가 일찍이 스님에게 말하였다. 「무릇 마음의 법으로 보면 오히려 그 정수리 위를 곧바로 밟고자 하는데, 그대는 바야흐로 또 그 상을 빚으니 성품을 보는 데는 또한 멀지 않은가.」 스님이 웃으며 말하였다. 「세상이 야박하고 백성이 각박함이 심하다. 어찌 사람마다 다 훤히 곧바로 깨닫는 뜻을 알게 할 수 있겠는가. 무릇 사람의 정은 지경을 마주하여 생각을 일으키고, 생각으로 말미암아 인연을 얻은 뒤에 참된 도에 드는 것이다. 내가 이 상을 짓는 것은 대개 사람을 몰아 참됨으로 돌아가게 하고 사람에게 힘써 부처를 공경하게 하려는 것일 뿐이다.」 내가 비로소 끄덕였다.

스님이 말하였다. 「그대가 이미 내 말에 끄덕였으니 나를 위해 기록해 주는 것이 어떻겠는가.」 내가 글을 잘하지 못한다고 풀어 말했으나 스님이 듣지 않고, 무릇 내 문에 발꿈치를 들인 것이 여러 열 번이었다. 나는 그가 그치지 않을까 두려워 마침내 붓으로 적는다. 스님도 또한 자못 글을 지을 줄 알아 「찬불송(讚佛頌)」을 지었는데 그 뜻이 볼 만한 것이 있다. 정우 십일년 계미년 이월 아무 날에 아무개가 적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