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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륜사 장륙금상의 영험을 주워 모은 기王輪寺丈六金像靈驗收拾記

동국이상국집 東國李相國集 · 이규보(李奎報) · 1241년 (고려 고종 28) 엮음 · 1251년 고쳐 보탬 · 단락 2 · 한자 1,792자 · 낭독 15.4분

동국이상국집 전집 권25 고려 이규보가 평생 지은 글을 아들 이함이 1241년에 엮어 새기고, 손자 이익배가 1251년에 고쳐 보탠 문집. 시와 부, 임금께 올린 표와 전, 절과 탑에 붙인 기, 비명과 묘지명, 편지와 서문, 그리고 몽골이 쳐들어온 때에 오간 국서까지 담겼다. 고구려 시조를 노래한 「동명왕편」이 전집 권3에 있고, 술과 거문고와 시를 벗 삼아 스스로 백운거사라 한 사람의 하루하루가 후집에 남아 있다. 책은 그가 눈을 앓다 붓을 놓는 마지막 시와, 그가 죽은 뒤 남이 지어 붙인 뇌서·묘지명으로 닫힌다.

詳夫自佛法之波及三韓也。由中及外。列刹相望。至如像設。無寺無之。但諸佛。一體也。凡像設所在。有顯靈應與不爾者。是凡夫思想未到處。其何以測之哉。雖然。諸佛菩薩之於神通方便。遊戲自在。無可無不可。亦不可以色相求之者也。然則其不顯光靈。非不爲也。始藏其用而已矣。若時乎應機赴感。有以顯其靈應。是亦自然方便所示。而蓋至人之細也。然以世之凡眼見之。則安得不驚駭且異。而篤生精信之心耶。精信之心篤。則佛輒應之。而其靈應又益顯矣。是世所譁傳某寺某佛像有大靈驗者之類是已。今夫都城之北。有寺曰王輪。是海東宗恒轉法輪之大伽藍也。寺有毗盧遮那丈六金像一軀。聞昔有二比丘。曰巨貧。曰皎光。同發願欲。鑄成金像。作俗諺所謂棟梁者。其所謂棟梁者。凡浮屠之勸人布施。營作佛事者之稱也。巨貧主其事。皎光佐之。巨貧忽一日謂佐者曰。事有不稱吾意者多矣。加之年亦老矣。必不能卒事。當入皆骨山。自焚而化。汝可拾吾舍利。持以勸人。則無有不樂施者。夫然后事可辦矣。言訖。入其山鍊道。至丙申八月十五日。於摩訶衍方丈北岫。生茶毗其身。皎公依其言。收靈骨盛于箱。自負擔歸京師。勸人檀施。則自上方至搢紳士庶人。無不施財。如山積焉。板方里有散將官。窮不能施物。有女年可十三。願以此納之。俾供使役。皎公不得已受之。時城南有將軍。失其名。年老無息。願贖此女爲養息。因納布五百段。又星臺洞有寡婦。家貧無長物。可捨以所寶大鏡施之。因告曰。此鏡久歸於人。今猶未還。故不能以此時輟納。迨鎔金之日。方取而齎去耳。皎公唯諾。至其時。以日遠偶忘之。不告鏡主而鑄焉。及成。凡相好無不具足端嚴。唯心胸有虧缺處。僧甚恐之。方議補鑄。鏡主聞像之已成也。大懷嗟惋。然業已捨之。故遂將其鏡往納焉。有以鏡置佛胸之缺隙者。其隙與鏡。甚穩當相御。因假置之。遲明日欲銘之。然後塡補之。至曉見焉。則鏡已自合。宛若鎔鑄而了無痕迹矣。都城觀者如堵。無不駭異。此靈驗一也。像成。輦入于寺。是日欲妥於金堂。以戶庳不得容。期翌旦將去上之限木。然後納焉。及旦見之。則佛已端然八座矣。此靈驗二也。崔侍中精安常痛敬丈六像。以其宅之在寺之南隣。故每上官之時。則到寺門。輒下馬禮拜而後去焉。及退公則至朝宗門。又下馬再拜。步過寺門。然後騎焉。凡所得新物。先奉之而後敢嘗。又往往造于堂。手煎茶供養。如是者久焉。忽夢丈六告曰。汝事我誠勤矣。然不若寺之南里鷹揚府老兵之歸心也。公明日使人尋其家。果有一老兵在焉。公親往訪之問曰。聞汝之常敬某寺丈六。信然耶。其敬之也。又別作何般耶。對曰。老僕自中風莫興。凡已七年矣。但晨夕聞鍾聲。則向其處合掌而已。安更有餘事哉。公曰。如是則老夫所以事佛者。其不若汝誠之至矣。由是大重其人。每受祿輒以一斛賜之。此靈驗三也。又侍中受祿之日。有緇褐僧到門乞食。公賜以食。觀其飮啖。有異於常者。別炊飯一斗進焉。復喫了無遺。公大異之。以祿一斛施之。使蒼頭負之而隨。及出門。告遣奴卽還。自負擔出歸。公聞之。急使人尋之。不得其迹。公親出追之。聞有負米一僧入王輪寺門者。卽入寺尋之。又不知其所如。偶欲禮丈六。入金堂見之。則有祿一斛在佛香案上。於是大悟。其僧乃丈六權化也。此靈驗四也。是皆故首座僧傑。傳之於宗門大士正林者也。正林後亦爲僧統。皆釋門老匠。精信謹篤大和尙也。豈妄傳之哉。其古老所傳章章播在人口者。則方丈六之入于寺也。以大車載之。輓者無慮百萬人。塡咽道路。有豚市商人輩。亦發隨喜心。倂力推轂。衆力如是而車忽不行。典事僧怪之。登高岸望之。則有群豕夾轂而行。因悟惡業之爲礙也。禁其人不得與推輪。然後車乃得行。此靈驗五也。又以古今擧國人所嘗親見者言之。國將有變。丈六先出汗示之。丈六出汗。則左右補處泥塑像及石刻華嚴經中凡如來世尊佛菩薩字。亦皆霑濕。餘字則否焉。是亦丈六所以護我國家。先之以警曉者已。此靈驗六也。皎公鑄此像。自成廟御宇八年大宋端拱元年戊子始之。至丁酉歲。凡十年乃成矣。按傑公所傳云。寺經回祿之災。凡文籍與丈六靈驗十餘條記。竝爲煨燼。今貧道所傳。特遺漏餘也。以是言之。則靈驗不啻此耳。後復有記其遺漏者。追附于此。亦可也。唯崔侍中齋僧事。所說不同。傑公之言則曰。有緇褐僧到門乞食云云。業門耆舊今之所說則云。公每趁日飯一僧。屬其奴曰。汝出求僧。先遇者是有緣僧。▣▣必以是邀之。奴一日出求僧。有一僧衣裳藍縷。形貌極醜。奴避而不邀。更覓他僧。則又其僧出見之。如是者數四。奴嫌其醜。便不肯邀之。還以狀白於公。公怒曰。是吾所謂有緣僧也。汝速去邀之。奴出見。又其僧在焉。則邀致於宅。公賜以食云云。此說未知孰是。兩皆有異。故存之。國家以丈六殿之頽殘。方命而修葺也。今相國淸河崔公。甚有力焉。公又聞佛蓋與幢蓋之多至殘毀。乃嘆曰。此皆梵儀之眉目也。不崇飾。無以備佛儀之最巨者。尋命工營之。百寶光明。爛然奪目。眞古所未見也。公覽遺記。嗟嘆不已。但以其所記。皆方言俚語。而不可久其傳。故命予文之。小子敢再拜稽首。爲之記云。時大歲乙西十二月日。朝議大夫試國子祭酒翰林侍講學士知制誥李奎報字春卿。謹誌。復讚之以頌曰。

자세히 살피건대 불법이 삼한에 미친 뒤로 안에서 밖에 이르기까지 절들이 서로 바라보게 되었다. 불상을 모신 데 이르러서는 절마다 없는 곳이 없다. 다만 모든 부처는 한 몸이다. 무릇 불상이 있는 곳에 신령한 응답을 드러내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있으니, 이는 범부의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자리라 무엇으로 헤아리겠는가.

그렇기는 하나 모든 부처와 보살은 신통과 방편에 있어 노닒이 자재하여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으며, 또한 빛깔과 모습으로 구할 수 있는 이가 아니다. 그렇다면 그 빛과 신령함을 드러내지 않음은 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다만 그 씀을 감추어 둘 뿐이다. 때로 기틀에 응하고 느낌에 나아가 그 신령한 응답을 드러냄이 있으면, 이 또한 저절로 그러한 방편이 보인 것이요 대개 지극한 이에게는 자잘한 일이다.

그러나 세상의 범상한 눈으로 보면 어찌 놀라고 또 이상히 여겨 도타운 믿음의 마음을 내지 않겠는가. 도타운 믿음의 마음이 두터우면 부처가 문득 응하여 그 신령한 응답이 또 더욱 드러난다. 이것이 세상에서 「아무 절 아무 불상에 큰 영험이 있다」고 떠들썩하게 전하는 따위이다.

이제 도성 북쪽에 절이 있어 왕륜(王輪)이라 한다. 이는 해동의 종문이 늘 법륜을 굴리는 큰 가람이다. 절에 비로자나(毗盧遮那) 장륙금상 한 구가 있다.

들으니 옛날에 두 비구가 있어 하나는 거빈(巨貧)이요 하나는 교광(皎光)이었다. 함께 서원을 내어 금상을 부어 이루고자 하여 속된 말로 이른바 동량(棟梁)이 되었다. 그 이른바 동량이란 무릇 중이 사람에게 보시를 권하여 불사를 경영하는 이를 일컫는 말이다. 거빈이 그 일을 맡고 교광이 도왔다.

거빈이 어느 날 문득 돕는 이에게 말하였다. 「일에 내 뜻에 맞지 않는 것이 많다. 게다가 나이도 늙었으니 반드시 일을 마치지 못할 것이다. 마땅히 개골산(皆骨山)에 들어가 스스로 불살라 죽을 터이니, 너는 내 사리를 주워 지니고 사람에게 권하라. 그러면 즐겨 보시하지 않는 이가 없을 것이다. 그런 뒤에야 일을 이룰 수 있다.」

말을 마치고 그 산에 들어가 도를 닦다가 병신년 팔월 보름에 마하연(摩訶衍) 방장의 북쪽 봉우리에서 산 채로 제 몸을 다비하였다. 교공이 그 말대로 신령한 뼈를 거두어 상자에 담고 스스로 지고 서울로 돌아와 사람에게 시주를 권하니, 위로 임금에게서 벼슬아치와 선비와 뭇 백성에 이르기까지 재물을 내놓지 않는 이가 없어 산처럼 쌓였다.

판방리(板方里)에 맡은 자리 없는 장교 하나가 있었는데 가난하여 물건을 내놓지 못하였다. 나이 열세 살쯤 된 딸이 있어 이 아이를 바쳐 부릴 일을 하게 하기를 원하였다. 교공이 마지못해 받았다. 그때 성 남쪽에 장군이 있었는데 이름은 잃었다. 나이 늙고 자식이 없어 이 아이를 물러 받아 기를 자식으로 삼기를 원하여 베 오백 단을 바쳤다.

또 성대동(星臺洞)에 과부가 있었는데 집이 가난하여 값나갈 물건이 없어, 보배로 여기던 큰 거울을 내놓아 시주하려 하였다. 이에 알려 말하였다. 「이 거울이 오래 남의 손에 가 있어 이제까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지금 바로 내놓지 못합니다. 쇠를 녹이는 날에 이르러서야 찾아 가져가겠습니다.」 교공이 그러라고 하였다.

그때가 되자 날이 멀어 우연히 잊고 거울 주인에게 알리지 않은 채 부어 만들었다. 이루어지고 보니 무릇 상호가 갖추어지지 않음이 없이 단정하고 엄숙한데, 오직 가슴 한복판에 이지러진 데가 있었다. 중이 몹시 두려워하여 바야흐로 기워 다시 부을 것을 의논하였다.

거울 주인이 상이 이미 이루어졌다는 말을 듣고 크게 한탄하였으나 이미 내놓기로 한 것이라 마침내 그 거울을 가져다 바쳤다. 어떤 이가 거울을 부처의 가슴 이지러진 틈에 놓아 보니 그 틈과 거울이 아주 알맞게 서로 맞았다. 그래서 임시로 놓아 두고, 날이 밝기를 기다려 새긴 뒤에 메우려 하였다. 새벽에 보니 거울이 이미 저절로 붙어 흡사 부어 만든 듯 조금도 자국이 없었다. 도성 사람이 담처럼 둘러서서 보고 놀라 이상히 여기지 않는 이가 없었다. 이것이 영험의 첫째이다.

상이 이루어지자 수레에 실어 절로 들여왔다. 이날 금당(金堂)에 편안히 모시려 하였으나 문이 낮아 들어가지 못하였다. 이튿날 아침에 위의 문지방 나무를 떼어 낸 뒤에 들이기로 하였다. 아침에 보니 부처가 이미 단정히 자리에 앉아 있었다. 이것이 영험의 둘째이다.

최시중 정안(崔侍中精安)이 늘 장륙상을 지극히 공경하였다. 그 집이 절의 남쪽 이웃에 있었으므로, 벼슬에 나갈 때마다 절 문에 이르면 문득 말에서 내려 절한 뒤에 갔다. 공무에서 물러나 조종문(朝宗門)에 이르면 또 말에서 내려 두 번 절하고 절 문을 걸어 지난 뒤에 말을 탔다. 무릇 새로 얻은 물건은 먼저 바친 뒤에야 감히 맛보았다. 또 이따금 법당에 나아가 손수 차를 달여 공양하였다. 이같이 한 지 오래였다.

어느 날 문득 꿈에 장륙이 일러 말하였다. 「네가 나를 섬김이 참으로 부지런하다. 그러나 절 남쪽 마을 응양부(鷹揚府) 늙은 군사가 마음을 돌린 것만 못하다.」 공이 이튿날 사람을 시켜 그 집을 찾으니 과연 늙은 군사 하나가 있었다. 공이 몸소 찾아가 물었다. 「듣건대 네가 늘 아무 절 장륙을 공경한다 하니 참말이냐. 그 공경하는 것이 또 따로 어떤 모양이냐.」 대답하였다. 「늙은 종이 중풍이 들어 일어나지 못한 지 이미 일곱 해입니다. 다만 새벽과 저녁에 종소리를 들으면 그쪽을 향해 손을 모을 뿐입니다. 어찌 다시 다른 일이 있겠습니까.」 공이 말하였다. 「이와 같다면 늙은 내가 부처를 섬기는 것이 네 정성의 지극함만 못하다.」 이로 말미암아 그 사람을 크게 무겁게 여겨 녹을 받을 때마다 문득 한 섬씩 주었다. 이것이 영험의 셋째이다.

또 시중이 녹을 받는 날에 검은 베옷 입은 중이 문에 이르러 밥을 빌었다. 공이 밥을 주고 그 먹는 것을 보니 여느 사람과 다름이 있었다. 따로 밥 한 말을 지어 올리니 다시 다 먹고 남기지 않았다. 공이 크게 이상히 여겨 녹 한 섬을 시주하고 종에게 지워 따라가게 하였다. 문을 나서자 종에게 곧 돌아가라 이르고 스스로 지고 나가 돌아갔다.

공이 이를 듣고 급히 사람을 시켜 찾았으나 자취를 얻지 못하였다. 공이 몸소 나가 뒤쫓았다. 쌀을 진 중 하나가 왕륜사 문으로 들어갔다는 말을 듣고 곧 절에 들어가 찾았으나 또 간 곳을 알 수 없었다. 마침 장륙에게 절하려고 금당에 들어가 보니 녹 한 섬이 부처의 향안 위에 놓여 있었다. 이에 크게 깨달으니 그 중은 곧 장륙이 잠시 몸을 나툰 것이었다. 이것이 영험의 넷째이다.

이는 다 돌아가신 수좌 승걸(僧傑)이 종문의 큰스님 정림(正林)에게 전한 것이다. 정림은 뒤에 또한 승통이 되었다. 다 불문의 노련한 대가요 믿음이 도탑고 삼가는 큰 화상이니 어찌 망령되이 전하였겠는가.

옛 노인이 전하여 사람들 입에 뚜렷이 오르내리는 것은 이러하다. 장륙이 절로 들어올 때 큰 수레에 싣고 끄는 이가 어림잡아 백만 명이어서 길을 메웠다. 돼지 저자의 장사치 무리도 따라 기뻐하는 마음을 내어 힘을 모아 바퀴를 밀었다. 여럿의 힘이 이러한데도 수레가 문득 가지 않았다. 일을 맡은 중이 괴이하게 여겨 높은 언덕에 올라 바라보니 돼지 떼가 바퀴를 끼고 가고 있었다. 이에 나쁜 업이 걸림이 됨을 깨달아 그 사람들이 바퀴 미는 데 끼지 못하게 하니 그런 뒤에야 수레가 갈 수 있었다. 이것이 영험의 다섯째이다.

또 예나 이제나 온 나라 사람이 일찍이 몸소 본 것으로 말하면 이러하다. 나라에 변이 있으려 하면 장륙이 먼저 땀을 내어 보인다. 장륙이 땀을 내면 좌우 보처(補處)의 흙으로 빚은 상과 돌에 새긴 『화엄경』 가운데 무릇 여래·세존·불·보살이라는 글자도 다 젖는데 나머지 글자는 그렇지 않다. 이 또한 장륙이 우리나라를 지키려고 먼저 깨우쳐 알리는 것이다. 이것이 영험의 여섯째이다.

교공이 이 상을 부은 것은 성종께서 나라를 다스리신 여덟째 해, 송나라 단공(端拱) 원년 무자년에 시작하여 정유년에 이르기까지 무릇 열 해 만에 이루어졌다.

걸공이 전한 것을 살피면 이렇게 말하였다. 「절이 불의 재앙을 겪어 무릇 문적과 장륙의 영험 열 몇 조목을 적은 기록이 다 타 버렸다. 이제 빈도가 전하는 것은 다만 빠지고 남은 것일 뿐이다.」 이로 말하면 영험이 이뿐만이 아니다. 뒤에 다시 그 빠진 것을 적는 이가 있으면 여기에 뒤따라 붙여도 좋다.

오직 최시중이 중에게 재를 올린 일은 말하는 바가 같지 않다. 걸공의 말은 「검은 베옷 입은 중이 문에 이르러 밥을 빌었다」운운한 것이다. 불문의 늙은이들이 이제 말하는 것은 이러하다. 공이 날마다 중 하나를 밥 먹이려고 그 종에게 당부하였다. 「너는 나가서 중을 구하라. 먼저 만나는 이가 인연 있는 중이다. □□ 반드시 이 사람을 맞아 오라.」 종이 하루는 나가 중을 구하는데 한 중이 옷이 남루하고 생김새가 몹시 추하였다. 종이 피하고 맞지 않은 채 다시 다른 중을 찾으면 또 그 중이 나와 보였다. 이같이 하기를 서너 번 하였다. 종이 그 추함을 싫어하여 곧 맞으려 하지 않고 돌아와 사정을 공에게 아뢰었다. 공이 성내어 말하였다. 「이가 내가 말한 인연 있는 중이다. 너는 빨리 가서 맞아 오라.」 종이 나가 보니 또 그 중이 있으므로 집으로 맞아 왔다. 공이 밥을 주었다 운운한다. 이 말은 어느 것이 옳은지 알 수 없다. 둘이 다 다르므로 그대로 둔다.

나라에서 장륙전이 무너지고 헐었다 하여 바야흐로 명하여 고쳐 이었다. 이제 상국 청하 최공(淸河崔公)이 매우 힘을 썼다. 공이 또 불개(佛蓋)와 당개(幢蓋)가 많이 헐고 깨졌다는 말을 듣고 이에 탄식하여 말하였다. 「이는 다 부처 의장의 눈썹이요 눈이다. 높이 꾸미지 않으면 부처 의장 가운데 가장 큰 것을 갖출 수 없다.」 이어 장인에게 명하여 만들게 하니 온갖 보배가 빛나 눈부시게 눈을 빼앗았다. 참으로 예로부터 보지 못한 것이었다.

공이 남은 기록을 보고 탄식하기를 마지않았다. 다만 그 적힌 것이 다 시골말과 상스러운 말이어서 오래 전할 수 없었으므로 나에게 명하여 글로 다듬게 하였다. 소자가 감히 두 번 절하고 머리를 조아려 기를 짓는다. 때는 을유년 십이월 아무 날. 조의대부 시국자좨주 한림시강학사 지제고 이규보(李奎報), 자는 춘경(春卿)이 삼가 적는다. 다시 송으로 기린다.

협주 1

曾

일찍이

2송

淸淨一體。月映秋水。卽之朗然。攬之邈矣。毗盧境地。本絶思議。造像者夢。讚者亦爾。

맑고 깨끗한 한 몸이여 달이 가을 물에 비치네 나아가면 환하고 잡으려 하면 아득하네 비로자나의 경지는 본디 생각과 의논이 끊겼네 상을 지은 이도 꿈이요 기리는 이도 또한 그러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