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사에서 앞과 같이 붙인 방문大安寺同前榜
夫浮屠氏之法。一也。或稱禪或稱敎。何也。佛心謂之禪。佛說謂之敎。敎也者。得法之具也。沿而得之。則筌蹄也芻狗也。如或不然。桎梏文字。而迷其指歸。則終身遑遑。求佛甚勤。而見效轉遲也。若禪者。佛與祖見性之一印也。夫靈源本覺。如月淸淨。本無點埃。苟不爲妄情所染。有以廻光返照。懸解迢悟。則自家已分。直趣菩提。其路甚捷。其功甚速。是禪之爲無上大乘也。由是我太祖大王。因哲師祕要。崇信宗門。乃大闢五百禪宇。闡揚心法。然後北兵自却。無復寇邊。然則禪之利於世也。可勝導哉。後雖祖述舊章。燃燈不絶。道或因時否塞。故宗風祖脈。幾微不振。自爾國步連致搶攘。世莫知其端緖。獨樞密相國崔公。慨然發憤。思有以復振宗綱。重華祖樹。乃銳意參禪。凡衲僧之籍籍有名者。雖至幽隱。無不屈節邀致。若中外伽藍演禪法之所。則月課殿最。賞勤詰慢。以激其鋒矣。力行如是。未及數年。而禪風復大扇矣。頑虜之入境。未幾自熄。亦未必不由禪力之致然也。今夫鳳城之外鵠嶺之北。有大安寺者。儲靈蓄秀。實三韓之根柢。本欲鎭宣智論。却兵壓災之地。而閱年寢遠。棟宇傾圮。殊不合先王創制之意。以是上方命有司。更創而新之。制度宏侈。無以復加矣。然立寺。所以弘法也。寺立而法筵猶寂。亦義所不能忍視也。故我相國悉以私錢。充其經費。肇自今年四月十五日。開大會。其餘鼻孔遼天之輩。無不詣席。拈槌豎拂。辨駮西來之旨。凜乎機鋒不可觸也。間或點破佛眼語錄。指明心要。於是乎自縉紳大夫。至于士庶。奔赴諦聽。瞙拜踊躍。於其法味也。無有不浹肌膚淪骨髓而歸之者。是豈三韓萬世太平極理之漸耶。嗚呼。世及下衰。風俗澆漓。爲公卿宰輔者。不可純以仁義禮樂化民成俗。必參用佛法。靜截人心。膏潤由生。於以鎭國。以作金城之固。此亦執政者之一段奇策也。人公處身富貴。不爲富貴所折困。耽嗜禪法。執志牢確。乃至輕財重法。汲汲於佛事。爲國家奉福如此。則其愛君享上。安民濟世之志。淵乎不可涯也。非夙植般若種智。安能及是耶。赴會禪流。具疏于左云耳。
무릇 부처의 법은 하나다. 더러 선이라 하고 더러 교라 하는 것은 어째서인가. 부처의 마음을 선이라 하고 부처의 말씀을 교라 한다. 교란 법을 얻는 도구다. 그것을 따라 얻으면 고기 잡는 통발이요 짚으로 만든 개다. 혹 그렇지 않아 글자에 손발이 묶여 그 돌아갈 데를 모르면, 죽도록 허둥대며 부처 구하기를 몹시 부지런히 해도 효험 보기가 도리어 더디다.
선이란 부처와 조사가 성품을 본 하나의 도장이다. 무릇 신령한 근원과 본래의 깨달음은 달과 같이 맑고 깨끗하여 본디 한 점 티끌도 없다. 진실로 망령된 정에 물들지 않고 빛을 돌이켜 되비추어 매인 데서 풀리고 멀리 깨달으면, 제 집 제 분수에서 곧바로 보리로 나아가니 그 길이 매우 가깝고 그 공이 매우 빠르다. 이것이 선이 위없는 큰 수레인 까닭이다.
이로 말미암아 우리 태조대왕께서 철사(哲師)의 비요를 좇아 종문을 높이 믿어 오백 곳 선방을 크게 열고 마음의 법을 드날리셨다. 그런 뒤에 북쪽 군사가 저절로 물러가 다시는 변방을 넘보지 않았다. 그렇다면 선이 세상에 이로움을 이루 다 말할 수 있겠는가.
뒤에 비록 옛 법을 이어 좇아 등불 밝힘이 끊이지 않았으나 도가 때를 따라 막히기도 하였다. 그러므로 종문의 기풍과 조사의 맥이 거의 떨치지 못하였다. 그로부터 나라의 운수가 잇달아 어지러움에 이르렀으나 세상이 그 실마리를 알지 못하였다.
오직 추밀상국 최공(崔公)이 개연히 분발하여 종문의 벼리를 다시 떨치고 조사의 나무를 거듭 꽃피울 것을 생각하였다. 이에 뜻을 날카로이 하여 선에 참여하고, 무릇 이름이 자자한 납승이면 비록 그윽이 숨은 이라도 몸을 굽혀 맞아 오지 않는 이가 없었다. 안팎 가람에서 선법을 펴는 곳은 달마다 성적을 매겨 부지런한 이를 상 주고 게으른 이를 꾸짖어 그 날카로움을 북돋웠다. 힘써 행함이 이와 같아 몇 해가 못 되어 선의 기풍이 다시 크게 일었다. 모진 오랑캐가 국경에 들어왔다가 오래지 않아 저절로 사그라진 것도 선의 힘으로 그리된 것이 아니라고는 반드시 말할 수 없다.
이제 봉성(鳳城) 밖 곡령(鵠嶺) 북쪽에 대안사(大安寺)라는 절이 있다. 신령함을 쌓고 빼어남을 모아 실로 삼한의 뿌리다. 본디 지혜의 논을 눌러 펴고 군사를 물리치고 재앙을 누르려던 땅인데, 해가 흘러 차츰 멀어지자 마룻대와 집이 기울어 무너져 선왕이 지으신 뜻에 자못 맞지 않았다. 이 때문에 임금께서 바야흐로 유사에게 명하여 다시 지어 새롭게 하셨다. 제도가 넓고 훌륭하여 더 보탤 것이 없었다.
그러나 절을 세움은 법을 넓히기 위함이다. 절은 섰는데 법의 자리가 아직 고요하다면 또한 의리로 차마 볼 수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 상국이 제 돈을 다 내어 그 경비를 채우고 올해 사월 보름부터 큰 모임을 열었다.
그 밖에 콧구멍이 하늘로 치솟은 무리도 자리에 나아오지 않는 이가 없었다. 방망이를 들고 불자를 세워 서쪽에서 온 뜻을 따져 논하니 늠름하여 그 기틀의 칼끝을 건드릴 수 없었다. 틈틈이 『불안어록(佛眼語錄)』을 짚어 밝히고 마음의 요긴함을 가리켜 밝혔다. 이에 벼슬아치와 대부에서 선비와 뭇 백성에 이르기까지 달려와 자세히 듣고 절하며 뛰놀았다. 그 법의 맛에 살갗에 젖고 골수에 스며 돌아가지 않는 이가 없었다. 이 어찌 삼한 만세의 태평과 지극한 다스림의 조짐이 아니겠는가.
아, 세상이 내려가 쇠하고 풍속이 야박해졌다. 공경과 재상 된 이가 오로지 어짊과 의로움과 예와 풍류만으로 백성을 가르쳐 풍속을 이룰 수 없다. 반드시 불법을 아울러 써서 사람의 마음을 고요히 끊어야 기름진 젖음이 이로 말미암아 생긴다. 그로써 나라를 눌러 쇠로 된 성의 굳음을 짓는 것이니, 이 또한 정사를 잡은 이의 한 가지 기이한 꾀다.
공은 몸을 부귀에 두고도 부귀에 꺾이고 시달리지 않으며 선법을 즐겨 뜻 잡음이 굳고 확실하다. 재물을 가벼이 여기고 법을 무겁게 여기기에 이르러 불사에 급급하며 나라를 위해 복을 받들기가 이와 같다. 그렇다면 임금을 사랑하고 윗분을 받들며 백성을 편안히 하고 세상을 건지려는 뜻이 깊어 끝을 헤아릴 수 없다. 일찍이 반야의 종지(種智)를 심지 않았다면 어찌 여기에 미칠 수 있겠는가.
모임에 나아온 선객들을 왼쪽에 갖추어 적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