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동국이상국집 › 전집 권25

서보통사에서 행한 앞과 같은 방문西普通寺行同前榜

동국이상국집 東國李相國集 · 이규보(李奎報) · 1241년 (고려 고종 28) 엮음 · 1251년 고쳐 보탬 · 단락 1 · 한자 727자 · 낭독 6.4분

동국이상국집 전집 권25 고려 이규보가 평생 지은 글을 아들 이함이 1241년에 엮어 새기고, 손자 이익배가 1251년에 고쳐 보탠 문집. 시와 부, 임금께 올린 표와 전, 절과 탑에 붙인 기, 비명과 묘지명, 편지와 서문, 그리고 몽골이 쳐들어온 때에 오간 국서까지 담겼다. 고구려 시조를 노래한 「동명왕편」이 전집 권3에 있고, 술과 거문고와 시를 벗 삼아 스스로 백운거사라 한 사람의 하루하루가 후집에 남아 있다. 책은 그가 눈을 앓다 붓을 놓는 마지막 시와, 그가 죽은 뒤 남이 지어 붙인 뇌서·묘지명으로 닫힌다.

夫道有顯晦。其所以顯且光焉者。蓋亦際乎時契乎人而已矣。所謂時也者。主英臣明。力護佛乘之會也。法於是乎際焉。則其顯之也可必。所謂人也者。法王僧傑。能紹祖統。傳佛心印者也。法於斯而契焉。則其光之也亦爾。觀夫心印之作也。源乎西竺。泒乎中土。波及乎我國久矣。自太祖至後嗣。以聖繼聖。莫不痛信斯法。有以培擁國基。然未有若今之尤赫赫然大煽者。此蓋我聖上陛下銳於崇奉。而我參政相國崔公。隨唱輒和。特立爲宗門外護。皐夔其身。璨忍其心。故縉紳士大夫靡然隨之。咸以不涉心學爲恥。漸漬法味。流潤一國。此所謂法之際乎時者也。於是法雄僧傑。莫不揚鬐奮翮。騰蹂叢林。使祖燈光焰。炳炳與日月爭懸。是亦法之契乎人者也。況今國步稍梗。且復有強隣之覘諜者。勢不可以無備。是以上方未嘗不與公卿宰執。議其所以壓勝之術。而參政相國。乃以爲方祖聖之創國也。其於却戎鎭兵。則以闡揚心法。著爲甲令矣。夫繕甲兵以攘夷狄。不若以金剛寶釰逆折姦萌。築金城以圖守禦。不若借本分鉗槌鍛固邦基矣。轉資糗以餉萬軍。不若養一禪子先省其費。本朝所以閒三載設談禪大會於普濟寺。亦聖祖之貽範也。苟利社稷如此。則雖別開譚席。滋暢眞源。可也。何必待三年。而又何獨普濟寺而已耶。遂以是聞于上。上亦悅而肯之。尋勅有司。畫其經費。敞大會于三大禪宇。曰普濟。曰廣明。此寺預其一焉。凡集衲子。各滿指千。其若高人宿望之匿耀幽巖者。無不禮而致焉。至於居止燕息之所。灌嗽熏浴之具。無不特地潔新。蓋示心敬也。於兹寺則請禪之宗匠某公主之。或極談禪理。或點破正法眼藏。肇自孟炎二十二日。至首秋之下旬。凡八十有八日而罷。甘液所滲。霑洽三韓周矣。噫。禪法之爲岌岌最上宗乘。已不可容言矣。其却兵壓災。莫斯之猛者。何哉。以見性證智揣之也。禪無地位階等。超然直趣。故其路捷。其效速。由此觀之。雖移之於他。其揆一也。以此却兵。何效不速。以此壓災。何功不捷哉。夫然則我國家之祚業。侔天比地。彌萬世長久。於此可卜矣。上堂所擧。禪談祖話。已落衆聽。此不詳之。第悉法會所作之端倪耳。參赴禪流。具載左方云。

무릇 도에는 드러남과 어둠이 있다. 드러나고 또 빛나는 까닭은 대개 때를 만나고 사람에 맞는 데 있을 뿐이다. 이른바 때란 임금이 뛰어나고 신하가 밝아 힘써 부처의 수레를 지키는 만남이다. 법이 여기에서 때를 만나면 그 드러남을 기필할 수 있다. 이른바 사람이란 법의 임금이요 뛰어난 중으로 조사의 계통을 이어 부처의 마음 도장을 전하는 이다. 법이 여기에 맞으면 그 빛남도 또한 그러하다.

마음 도장이 일어난 것을 보면 서쪽 천축에서 근원하고 중국에서 갈라져 우리나라에 미친 지 오래다. 태조로부터 뒤를 이은 임금들에 이르기까지 성군이 성군을 이어 이 법을 깊이 믿지 않은 이가 없었으니, 그로써 나라의 터를 북돋아 안았다. 그러나 오늘처럼 더욱 혁혁하게 크게 일어난 적은 없었다.

이는 대개 우리 성상 폐하께서 높이 받드는 데 날카로우시고, 우리 참정상국 최공(崔公)이 부르는 대로 문득 화답하여 우뚝 서서 종문의 바깥 울타리가 된 까닭이다. 고요(皐陶)와 기(夔)로 그 몸을 삼고 승찬(僧璨)과 홍인(弘忍)으로 그 마음을 삼았다. 그러므로 벼슬아치와 사대부가 쏠리듯 따라 다들 마음의 학문에 발 들이지 못함을 부끄러이 여겼다. 법의 맛에 차츰 젖어 그 젖음이 온 나라에 흘렀다. 이것이 이른바 법이 때를 만났다는 것이다.

이에 법의 영웅과 뛰어난 중들이 지느러미를 떨치고 날개를 떨쳐 총림을 밟고 뛰어올라, 조사의 등불 빛이 환하게 해와 달과 걸림을 다투게 하였다. 이 또한 법이 사람에 맞은 것이다.

하물며 이제 나라 형세가 자못 막히고 또 굳센 이웃이 엿보는 일이 있으니 형세가 대비 없을 수 없다. 이 때문에 임금께서 일찍이 공경과 재상들과 더불어 눌러 이길 방도를 의논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참정상국이 이에 말하였다. 「조종의 성군께서 나라를 세우실 때에 오랑캐를 물리치고 군사를 누르는 일에 대하여 마음의 법을 드날리는 것으로 으뜸가는 법령을 삼으셨다. 무릇 갑옷과 병기를 손질하여 오랑캐를 물리치는 것은 금강의 보배 칼로 간악한 싹을 미리 꺾는 것만 못하다. 쇠 성을 쌓아 지킬 것을 꾀하는 것은 본분의 집게와 망치를 빌려 나라의 터를 두드려 굳히는 것만 못하다. 군량을 날라 만 군사를 먹이는 것은 선객 하나를 길러 먼저 그 비용을 더는 것만 못하다. 본조에서 세 해 걸러 보제사(普濟寺)에서 담선 대회를 베푸는 것도 성스러운 조상께서 남기신 본보기다. 진실로 사직에 이로움이 이와 같다면 비록 따로 말하는 자리를 열어 참된 근원을 불려 펴도 좋다. 어찌 반드시 세 해를 기다리며, 또 어찌 유독 보제사뿐이겠는가.」

마침내 이로써 임금께 아뢰니 임금도 기뻐하여 옳게 여기셨다. 이어 유사에게 칙하여 그 경비를 마련하게 하고 세 큰 선방에서 큰 모임을 열었다. 보제와 광명(廣明)이라 하는데 이 절이 그 하나에 든다. 무릇 모인 납자가 저마다 백 사람을 채웠다. 높은 이와 덕망 있는 이로 그윽한 바위에 빛을 감춘 이는 예로 맞아 오지 않은 이가 없었다. 머물고 쉬는 곳과 씻고 양치하고 향 피워 목욕하는 도구에 이르기까지 특별히 깨끗하고 새롭게 하지 않은 것이 없었으니, 대개 마음의 공경을 보인 것이다.

이 절에서는 선의 종장인 아무 공을 청하여 주관하게 하였다. 더러 선의 이치를 끝까지 말하고 더러 『정법안장(正法眼藏)』을 짚어 밝혔다. 첫여름 스무이틀부터 시작하여 초가을 하순에 이르기까지 무릇 여든여드레 만에 파하였다. 단 이슬이 스민 것이 삼한을 두루 적셨다.

아, 선법이 우뚝한 가장 높은 종문의 수레임은 이미 말을 붙일 것도 없다. 그것이 군사를 물리치고 재앙을 누르는 데 이보다 매서운 것이 없음은 어째서인가. 성품을 보고 지혜를 얻는 것으로 헤아려 보라. 선에는 자리와 층계가 없어 뛰어넘어 곧바로 나아간다. 그러므로 그 길이 가깝고 그 효험이 빠르다. 이로 보면 비록 다른 데로 옮겨도 그 헤아림은 하나다. 이것으로 군사를 물리치는데 어느 효험인들 빠르지 않겠으며, 이것으로 재앙을 누르는데 어느 공인들 빠르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복된 업이 하늘과 짝하고 땅과 견주어 만세에 길고 오래리라는 것을 여기서 점칠 수 있다. 당에 올라 든 선의 말과 조사의 이야기는 이미 뭇 사람의 귀에 떨어졌으니 여기서는 자세히 적지 않는다. 다만 법회에서 한 일의 실마리를 다 적을 뿐이다. 모임에 나아온 선객들은 왼쪽에 갖추어 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