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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담사(龍潭寺) 총림 모임 방문龍潭寺叢林會榜

동국이상국집 東國李相國集 · 이규보(李奎報) · 1241년 (고려 고종 28) 엮음 · 1251년 고쳐 보탬 · 단락 1 · 한자 475자 · 낭독 4.2분

동국이상국집 전집 권25 고려 이규보가 평생 지은 글을 아들 이함이 1241년에 엮어 새기고, 손자 이익배가 1251년에 고쳐 보탠 문집. 시와 부, 임금께 올린 표와 전, 절과 탑에 붙인 기, 비명과 묘지명, 편지와 서문, 그리고 몽골이 쳐들어온 때에 오간 국서까지 담겼다. 고구려 시조를 노래한 「동명왕편」이 전집 권3에 있고, 술과 거문고와 시를 벗 삼아 스스로 백운거사라 한 사람의 하루하루가 후집에 남아 있다. 책은 그가 눈을 앓다 붓을 놓는 마지막 시와, 그가 죽은 뒤 남이 지어 붙인 뇌서·묘지명으로 닫힌다.

夫祖駕西來。心法之行乎中國尙矣。然猶未及於三韓。曁新羅王子道義國師航海入唐。求法於地藏和尙。得而東還。遂入定陳田寺。蜜傳心印。然後禪轍始輾于東土矣。及我太祖肇基王業。篤崇禪法。於是刱五百禪宇於中外。以處衲子。間歲設談禪大會於京師。所以鎭北兵也。九山釋子。先其會一年。各以其山門。占斷外方之伽藍。而開法會涉冬節。是之謂叢林。按禪記梵云盆陁婆那。此言叢林。因祖師舍那婆斯所住。故名之也。今之叢林。豈其遺法耶。於是會也。長老輩相與硺磨志行。研覃心學。申之整頓宗門規繩。凜凜乎不可犯也。是大莊嚴論所云如是衆僧。乃衆智之叢林。一切善門。集在其中者是已。然叢林所嚮。其主人所以應接供奉。繁夥浩大。似不堪支。故凡住其寺者皆難之。況迦智於九山爲大。而衲子之輩林會霧集。濟濟如也哉。若東道之禮。有不如法。則年少沙彌輩。呵責萬端。有不可言者。由是益難之。今丙戌叢林之會于龍潭也。住公湛伊。篤實人也。自以爲凡爲浮屠者。其於營善作福也。雖遊行四方。勸學弘道。猶欲爲之。何況居國伽藍。得致同門學子之肯來一集。是天幸也。何有大不可。而輒形猒怠之色耶。於是罄倒儲㣥。以充其費。雖至下座沙彌。敬若大賓。故學者之輩。如入勝房樂土。及其去也。尙眷眷焉不能無桑下之戀矣。自某月日開堂。至某月日罷會。其會上禪子若干人。具書于左。以爲之標表也。

무릇 조사의 수레가 서쪽에서 온 뒤로 마음의 법이 중국에 행해진 것은 오래다. 그러나 아직 삼한에는 미치지 못하였다. 신라 왕자 도의국사(道義國師)가 바다를 건너 당에 들어가 지장화상(地藏和尙)에게 법을 구하여 얻고서 동쪽으로 돌아왔다. 마침내 진전사(陳田寺)에 들어 자리를 정하고 마음 도장을 은밀히 전하였다. 그런 뒤에야 선(禪)의 수레바퀴가 비로소 우리 땅에 굴렀다.

우리 태조께서 왕업의 터를 처음 여시고는 선의 법을 도탑게 받드셨다. 이에 서울과 지방에 선방 오백을 세워 중들을 머물게 하시고, 해를 걸러 서울에서 담선대회(談禪大會)를 여셨으니 북쪽의 군사를 누르려는 것이었다. 아홉 산의 중들은 그 모임보다 한 해 앞서 저마다 제 산문으로 지방의 절을 차지하고 법회를 열어 겨울을 넘기니, 이를 총림(叢林)이라 한다. 「선기(禪記)」를 보면 범어로 분타바나라 하고 이를 총림이라 옮기는데, 조사 사나바사가 머문 데서 이름한 것이다. 오늘의 총림도 아마 그 남은 법이 아니겠는가.

이 모임에서 장로들은 서로 뜻과 행실을 갈고 다듬으며 마음의 학문을 깊이 파고, 거듭 종문의 규율을 바로잡아 서늘하여 감히 범할 수 없게 한다. 이것이 《대장엄론(大莊嚴論)》에 이른 「이러한 여러 중은 곧 여러 지혜의 총림이니 온갖 착한 문이 그 가운데 모여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총림이 향하는 곳에서는 그 주인이 맞이하고 받들어 대는 일이 번거롭고 많고 크고 넓어 견디어 내지 못할 듯하다. 그래서 그 절에 머무는 이는 다들 이를 어렵게 여긴다. 하물며 가지산(迦智山)은 아홉 산에서 큰 곳이라 중들이 숲처럼 모이고 안개처럼 몰려들어 그 성함이 이와 같으니 더욱 그렇다. 만일 주인 노릇하는 예가 법대로 되지 않으면 나이 어린 사미들이 꾸짖는 것이 만 가지라, 차마 말로 못 할 것까지 있다. 이 때문에 더욱 어렵게 여긴다.

이제 병술년 총림 모임이 용담에서 열렸다. 머무는 이 담이공(湛伊公)은 도탑고 참된 사람이다. 스스로 이렇게 여겼다. 「무릇 중이 된 이가 착한 일을 하여 복을 짓는 데는, 사방을 떠돌며 배움을 권하고 도를 넓히는 처지라도 오히려 하려 든다. 하물며 나라의 절에 살면서 같은 문의 배우는 이들이 즐거이 와서 한자리에 모이게 되었으니 이는 하늘이 준 다행이다. 무엇이 크게 못 될 일이 있어 문득 싫고 게으른 낯빛을 드러내겠는가.」 이에 쌓아 둔 곳간을 다 기울여 그 비용을 채웠다. 아랫자리 사미에 이르기까지 큰 손님을 맞듯 공경하였다. 그래서 배우는 이들이 좋은 방과 즐거운 땅에 들어온 듯하였고, 떠날 때에도 오히려 못 잊어 뽕나무 아래에서 묵은 정을 그리는 마음이 없을 수 없었다.

어느 달 어느 날에 당을 열고 어느 달 어느 날에 모임을 마쳤다. 그 모임에 오른 선객 몇 사람을 왼쪽에 갖추어 적어 표시로 삼는다.

협주 1

入定 — 선정(禪定)에 드는 것으로도 읽힌다. 절 이름이 바로 뒤에 오므로 「들어가 자리 잡다」로 읽었다. ― 옮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