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과 계율의 글을 함께 익히려 모임을 맺는 글華嚴律章疏講習結社文
夫生國君之土。食國土之毛。無芥子許有補於世者。貧道是已。環顧一身。無可效萬一者。但日夜思欲以區區微力。彌縫佛敎之頽綱。以此奉福朝家耳。今國家崇信法門切矣。法門雖衆。華嚴圓敎。最爲極唱。若談其旨。如譽天地之大。故於玆略之。所謂律者。梵言毗舍那。唐言調伏者是也。謂能調伏六根三表故耳。八萬四千法門。由是而生。是以。如來十大弟子中。唯稱離耶能持律。則律之時義。其大矣哉。故自祖聖各於福地。輾此法輪。其所由來者尙矣。然陵夷至于後世。名在而實廢。器存而用弛。是貧道所嘗嘆息也。且佛氏之旨。幽遠微妙。不可直悟。故於是有章疏鈔傳之學興焉。然由文句詰屈。不可易解。則必須師友以相磨。群集講習。然後是可以言道矣。比來學者各立幔幢。自相爲賢。忌群居喜獨學者皆是。有執卷而難詰者。茫然不能往復酬酢。是亦貧道所嘆者也。竊不自揆。痛欲興此二敎。因與某等共結精舍。廣招學子。使各根究佛法之宗源。此志苟遂。雖死之日。猶生之年也。凡欲入社者。咸來棲集。若鬱於久住。有意遊方者。則聽其所之。不必局於一也。檀越之布施。量已之所堪。不必強其所不能也。其朝夕之供。則廉約爲先。不必妄爲糜費也。先約以三年。於其中增損之。不必拘於限也。此其立社之大槪也。
무릇 임금의 땅에 나서 나라 땅의 곡식을 먹으면서 겨자씨만큼도 세상에 보탬이 없는 자, 바로 이 빈도(貧道)입니다. 이 한 몸을 둘러보아도 만분의 하나라도 바칠 것이 없습니다. 다만 밤낮으로 이 하찮은 힘으로나마 무너진 불교의 벼리를 꿰매어 이로써 나라에 복을 받들려 생각할 뿐입니다.
이제 나라가 법문을 받들어 믿음이 간절합니다. 법문이 비록 많으나 화엄의 원만한 가르침이 으뜸으로 지극합니다. 그 뜻을 말하자면 하늘과 땅의 큼을 기리는 것과 같으니 여기서는 줄입니다. 이른바 율(律)이란 범어로 「비사나」요 중국 말로 「조복(調伏)」이 이것입니다. 여섯 감각(六根)과 세 가지 업을 능히 길들여 엎드리게 하기 때문입니다. 팔만 사천 법문이 이로부터 나옵니다. 그러므로 여래의 열 큰 제자 가운데 오직 우바리(優波離耶)만이 율을 잘 지녔다 일컬어지니, 율이 때에 지니는 뜻이 크지 않습니까.
그래서 조사와 성인들이 저마다 복된 땅에서 이 법의 바퀴를 굴렸으니 그 유래가 오랩니다. 그러나 차츰 낮아져 뒷세상에 이르러서는 이름은 있으나 실상은 없어지고 그릇은 있으나 쓰임은 늘어졌으니, 이는 빈도가 일찍이 한숨지어 온 바입니다.
또 부처의 뜻은 아득히 멀고 미묘하여 곧바로 깨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에 글을 풀고 뽑고 전하는 학문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글귀가 뒤엉키고 굽어 쉬이 풀 수 없으니, 반드시 스승과 벗으로 서로 갈고 떼 지어 모여 익힌 뒤에야 도를 말할 수 있습니다. 요즘 배우는 이들은 저마다 막을 치고 기를 세워 서로 제가 어질다 하니, 떼 지어 사는 것을 싫어하고 홀로 배우기를 좋아하는 자들이 다 이렇습니다. 책을 들고 따져 묻는 이가 있으면 멍하여 주고받지 못합니다. 이 또한 빈도가 한숨짓는 바입니다.
가만히 스스로를 헤아리지 못하고 이 두 가르침을 간절히 일으키고자 합니다. 그래서 아무들과 함께 정사(精舍)를 맺고 배우는 이를 널리 불러 저마다 부처 법의 뿌리와 근원을 파고들게 하려 합니다. 이 뜻이 이루어진다면 죽는 날이라도 오히려 살아 있는 해와 같습니다.
무릇 이 모임에 들려는 이는 다 와서 깃들어 모이십시오. 만일 오래 머무는 것이 답답하여 떠돌 뜻이 있으면 그 가는 데를 그대로 따를 것이니, 한곳에 묶지 않습니다. 시주의 베풂은 제 힘으로 감당할 만큼만 헤아릴 것이니, 못 할 일을 억지로 시키지 않습니다. 아침저녁 공양은 검소함을 앞세울 것이니, 함부로 허비하지 않습니다. 먼저 세 해로 약속하고 그 안에서 더하고 덜 것이니, 기한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이것이 모임을 세우는 큰 줄기입니다.
협주 1
代人作
남을 대신하여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