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동국이상국집 › 전집 권26

낭중 윤위(尹威)께 올리는 글呈尹郞中威書

동국이상국집 東國李相國集 · 이규보(李奎報) · 1241년 (고려 고종 28) 엮음 · 1251년 고쳐 보탬 · 단락 1 · 한자 878자 · 낭독 8.1분

동국이상국집 전집 권26 고려 이규보가 평생 지은 글을 아들 이함이 1241년에 엮어 새기고, 손자 이익배가 1251년에 고쳐 보탠 문집. 시와 부, 임금께 올린 표와 전, 절과 탑에 붙인 기, 비명과 묘지명, 편지와 서문, 그리고 몽골이 쳐들어온 때에 오간 국서까지 담겼다. 고구려 시조를 노래한 「동명왕편」이 전집 권3에 있고, 술과 거문고와 시를 벗 삼아 스스로 백운거사라 한 사람의 하루하루가 후집에 남아 있다. 책은 그가 눈을 앓다 붓을 놓는 마지막 시와, 그가 죽은 뒤 남이 지어 붙인 뇌서·묘지명으로 닫힌다.

月日。某官某再拜。上短書于天曹郞中座右。僕是相國河東公之門下生也。拔出於千百人中。署爲第一。是可謂特達之遇矣。閣下於相國爲玉潤。則宜遇僕如弟行。而凡相國所以待僕之始末也。閣下又宜知之。故言之不疑。相國方柄用時。喜推轂後進。故士之沐膏潤霑滋液者。不爲不多。僕居門下。獨不得與蒙斯恩者。非相國之過。而乃僕之自召也。蓋僕少時。嘗使酒放曠。因得狂易之名。則相國非不欲成就之也。蓋忌狂名。不早爲之地。但以爲年少負氣狂之耳。行且自改。然後用之未晚也。及被病乞退也。俾予作三表。然後大加賞愛。不以僕爲狂。追咎往者之不用。於蟻床中裁箚子甚力。遂薦于上。上亦聞予狂名。竟不能用。以是窮蟄至於是也。宗伯尙爾。況他人哉。自搢紳至于朋伴。莫不以狂目之。僕亦不堪衆人之口。因自號狂客。狂非虛名。亦誠有之。夫大丈夫有才不奮。有蘊不洩。則氣洶洶如水之遇廻曲而渟蓄吼怒。不得發洩。及中酒然後氣發於胸次。到于喉吻。如水之決隄齧岸。崩騰汎溢。不能自止。盡洩然後已。是所以狂也。然此特失意之中憑酒而狂耳。非若中風狂走者。若一旦得意。爲官爵功名所能銜勒。則雖以百計勸之爲狂。終不肯爾。何則。窮則薄其生。達則嗇其身。是亦人之常情也。況士之自狂而反者。不可爲致遠之器。盍覩夫馬乎。馬本在人家。馴服柔良者。則雖間有奇種。亦鮮見籋雲逐日之足矣。其若生長山林海島之間者。見人狂走若駭鹿然。不可遽捉。設捉之。亦不可易馭。幸縻而致之。養于人家。猶啖嚙樹木。不習芻粟。馭則赴坑谷馳淵川。迨馭者僵仆然後乃止。及日久稍狃於人。於是乎屢加銜勒。習以步驟。則足成千里之逸蹄矣。虎帝曰。泛駕之馬。跅弛之士。御之而已。蓋謂此也。嗟乎。一國之人。莫不以僕爲狂人。而及閣下見之。一接笑談。然後知僕之不狂。卽以國士遇之。恨相知之晚。僕每造門。輒倒屣欣迎。促膝握手。朝不知日晡。晚或侵夜分。僕或被酒狂叫。閣下猶不以爲狂。而乃曰。此子實不狂也。但緣有才不奮。無所發洩而爲此也。雖昔鮑叔管仲之相知。白牙子期之暗契。亦何以加之哉。若爾則閣下之於僕。可謂密勿繾綣。心照神交者。而今幸當天曹銓選之任。似可拯拔。則僕若眞狂者。決自必於心恃舊冒觸。略無疑忌。若不幸不如意。則反成怨恚。孤負從前繾綣顧眄之恩矣。僕不然。以愚心忖之。閣下特天曹之執事官耳。非領天曹而主張其柄者也。但因事乘便。微扣于執政相國而已。過此。想不能有所專輒矣。欲扣而無便隙之乘。則無可奈何。已扣而不見聽。則亦無可奈何矣。其得與未得。在一頃刻間耳。皆命也。豈敢多言。

어느 달 어느 날, 아무 벼슬 아무는 두 번 절하고 이부(天曹) 낭중 좌우께 짧은 글을 올립니다.

저는 상국 하동공(河東公)의 문하생입니다. 천백 사람 가운데서 뽑혀 첫째로 매겨졌으니, 이는 남달리 통한 만남이라 할 만합니다. 합하는 상국께 사위가 되시니 마땅히 저를 아우처럼 대하실 것입니다. 또 상국이 저를 대하신 처음과 끝을 합하께서도 마땅히 아실 터이니, 그래서 의심 없이 말씀드립니다.

상국이 바야흐로 권세를 잡고 쓰이실 때 뒤에 오는 이를 밀어 주기를 즐기셨으므로, 기름진 은택에 목욕하고 단 물에 젖은 선비가 적지 않았습니다. 저는 문하에 있으면서 홀로 그 은혜를 입지 못하였으니, 이는 상국의 허물이 아니요 제가 스스로 부른 것입니다.

대개 저는 젊을 때 술을 부려 거침없이 놀아 미치고 경솔하다는 이름을 얻었습니다. 상국이 저를 이루어 주려 하지 않으신 것이 아니라, 대개 미쳤다는 이름을 꺼려 일찍 자리를 마련해 주지 않으신 것입니다. 다만 나이 젊어 기운을 믿고 미친 것일 뿐이니 차차 스스로 고친 뒤에 쓰더라도 늦지 않다 여기셨습니다. 병이 들어 물러나기를 청하실 때에 저에게 표 셋을 짓게 하시고, 그런 뒤에 크게 기려 사랑하시며 저를 미쳤다 여기지 않으시고 지난날 쓰지 않은 것을 뒤늦게 뉘우치셨습니다. 병석에서 차자(箚子)를 매우 힘써 지어 마침내 임금께 천거하셨으나, 임금도 제가 미쳤다는 이름을 들으셔서 끝내 쓰지 못하셨습니다. 이 때문에 궁하게 엎드려 여기까지 이르렀습니다.

종백께서도 그러하셨으니 하물며 다른 사람이겠습니까. 벼슬아치로부터 벗들에 이르기까지 저를 미쳤다고 보지 않는 이가 없습니다. 저도 뭇 사람의 입을 견디지 못하여 스스로 광객(狂客)이라 불렀습니다. 미쳤다는 것이 헛된 이름만은 아니요, 또 참으로 그런 데가 있습니다.

무릇 대장부가 재주가 있어도 떨치지 못하고 쌓인 것이 있어도 쏟지 못하면, 기운이 들끓어 물이 굽이를 만나 괴어 쌓이고 울부짖으며 터져 나오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술에 취한 뒤에야 기운이 가슴에서 일어나 목구멍과 입에 이르니, 물이 둑을 터뜨리고 언덕을 물어 무너지고 넘쳐 스스로 그치지 못하여 다 쏟아 낸 뒤에야 마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이 미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이는 다만 뜻을 잃은 가운데 술에 기대어 미치는 것일 뿐이요, 중풍이 들어 미쳐 달리는 것과는 같지 않습니다. 만일 하루아침에 뜻을 얻어 벼슬과 공명이 재갈과 굴레가 되어 준다면, 백 가지로 꾀어 미치라 권하여도 끝내 그러지 않을 것입니다. 왜 그런가. 궁하면 제 삶을 가볍게 여기고 통하면 제 몸을 아끼니, 이 또한 사람의 예사 마음입니다. 하물며 스스로 미쳤다가 돌아온 선비가 멀리 이를 그릇이 되지 못하겠습니까.

저 말을 보지 않으십니까. 말이 본디 사람의 집에 있어 길들어 부드럽고 순한 것은, 비록 더러 남다른 종자가 있어도 구름을 밟고 해를 좇는 발은 보기 드뭅니다. 산과 숲과 바다 섬 사이에서 나고 자란 것은 사람을 보면 놀란 사슴처럼 미친 듯 달아나 대뜸 잡을 수 없습니다. 잡았다 해도 또 쉬이 부릴 수 없습니다. 다행히 매어 끌어와 사람의 집에서 기르면 오히려 나무를 씹어 먹고 여물과 곡식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부리면 구덩이와 골짜기로 뛰어들고 못과 내로 달려, 부리는 이가 나자빠진 뒤에야 그칩니다. 날이 오래되어 차츰 사람에게 익으면 이에 재갈과 굴레를 거듭 매어 걸음과 달림을 익히니, 마침내 천 리를 가는 빼어난 발굽을 이룹니다. 한나라 무제가 「수레를 뒤집는 말과 제멋대로인 선비는 부리면 될 뿐이다」 하였으니, 대개 이를 말한 것입니다.

아, 온 나라 사람이 저를 미친 사람이라 하지 않는 이가 없는데, 합하께서 저를 보시고 한번 웃으며 이야기를 나눈 뒤에는 제가 미치지 않았음을 아시고 곧 나라의 선비로 대하시며 서로 안 것이 늦음을 한하셨습니다. 제가 문에 갈 때마다 신을 거꾸로 신고 기쁘게 맞으시며 무릎을 맞대고 손을 잡아, 아침에 만나면 해가 기우는 것을 모르고 저녁이면 밤이 깊도록 이르렀습니다. 제가 더러 술에 취해 미친 듯 외쳐도 합하는 오히려 미쳤다 여기지 않으시고 이르셨습니다. 「이 사람은 참으로 미친 것이 아니다. 다만 재주가 있어도 떨치지 못하여 쏟을 데가 없어 이러는 것이다.」 옛날 포숙과 관중이 서로 안 것이나 백아와 종자기(鍾子期)가 말없이 맞은 것이라도 또 무엇을 여기에 더하겠습니까.

그렇다면 합하께서 저에게는 은밀히 마음을 다해 얽히고 속으로 비추어 깊이 사귀신 분이라 할 만합니다. 그런데 이제 다행히 이부에서 사람 고르는 자리를 맡으시어 건져 올려 주실 만하니, 제가 만일 참으로 미친 자라면 마음에 결단하고 옛 정을 믿어 함부로 들이대며 조금도 의심하고 꺼릴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다행하지 못하여 뜻대로 되지 않으면 도리어 원망이 되어, 앞서 얽히어 돌보아 주신 은혜를 저버리게 될 것입니다.

저는 그렇지 않습니다. 어리석은 마음으로 헤아려 보면, 합하는 다만 이부의 일을 맡아보는 벼슬일 뿐이요 이부를 거느려 그 권세를 주장하는 이가 아닙니다. 다만 일에 따라 편한 때를 타서 정사를 잡은 상국께 가만히 두드릴 뿐이요, 이를 넘어서는 혼자 마음대로 하실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두드리려 하여도 탈 만한 편한 틈이 없으면 어찌할 수 없고, 이미 두드렸으되 들어 주지 않으면 또한 어찌할 수 없습니다. 얻는 것과 얻지 못하는 것은 한 순간에 달렸을 뿐이니 다 운명입니다. 어찌 감히 말을 많이 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