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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국 최선(崔詵)께 올리는 글上崔相國詵書

동국이상국집 東國李相國集 · 이규보(李奎報) · 1241년 (고려 고종 28) 엮음 · 1251년 고쳐 보탬 · 단락 1 · 한자 1,289자 · 낭독 11.7분

동국이상국집 전집 권26 고려 이규보가 평생 지은 글을 아들 이함이 1241년에 엮어 새기고, 손자 이익배가 1251년에 고쳐 보탠 문집. 시와 부, 임금께 올린 표와 전, 절과 탑에 붙인 기, 비명과 묘지명, 편지와 서문, 그리고 몽골이 쳐들어온 때에 오간 국서까지 담겼다. 고구려 시조를 노래한 「동명왕편」이 전집 권3에 있고, 술과 거문고와 시를 벗 삼아 스스로 백운거사라 한 사람의 하루하루가 후집에 남아 있다. 책은 그가 눈을 앓다 붓을 놓는 마지막 시와, 그가 죽은 뒤 남이 지어 붙인 뇌서·묘지명으로 닫힌다.

十二月日。門生某官謹再拜奉書執政相國太學士閣下。僕一昨展謁台階。伏蒙賜坐。慰勉備至。垂問比來所著幾何。幷及玉堂承乏之言。驚聳震懼。拜謝而退。僕誠無似者也。文不足備國華。才不能壓人望。而閣下過聽。至以文翰之任期之。踰分之榮。非所敢當。祗以爲愧。莫知其由。反覆尋譯。始得其所以然者。閣下之言。固出於理。然而是亦猶晚也。何者。曩日。閣下不以僕爲不肖。躬造闕下。拜箚子薦進。請例補外寄。然後以備將來文翰之寄。其意不爲不切。但時不幸而未果耳。其後僕已得經外試。則閣下適當國執柄矣。僕竊自以爲平日尙爾。豈手執其柄。而有不能用哉。然僕之零丁蹇散。其亦有年。而猶未蒙其賜意者。醜面濃粧。初若可愛。粉落質見。無所逃於明鏡之鑑耶。審如是則已。不爾。權可施也。恩可及也。方玆時反未若向之拜箚子之日。故僕不揆才分。謂閣下之言猶晚也。以今之勢觀之。殆將終不用於世。計莫如歸田力耕。謀活其妻子。然又不爾者。顧自負於閣下。猶有須耳。譬如人有哀人之窮者。力不能自賑。惇惇告於富者之家。欲丏其毫釐。以濟其急。富者吝而終不肯與。及其人之富與彼富者侔。則窮者自以爲向無賙救之資。猶欲丏諸人。豈其自富而有不及於我耶。金玉錢貨。必分其半而與之矣。窮者之忖度如此。假使其人偶忘而不與。則當其時勃然作色而便去耶。小留而有待耶。未審閣下何以處之耶。在僕似宜小忍須臾。卜其可否。及便忘然後謝去亦未晚也。雖然。此亦僕之汲汲有及時之志。而計之大早耳。度閣下之心。何至使僕爲終窮者耶。何以度其然也。蓋僕嘗和閣下謝奇平章所餉熨石之什獻焉。閣下方飯。卽放匙輟饌。賞詠不已。致令中饋叱僕御之進予詩者。此非人所側傳。而季嗣郞子親與我導之者也。以此取必。而度閣下之不終忘也。所恨者。犬馬之齒。迫將過半耳。且士之所以筮仕者。非苟欲自營一己之榮宦而已。蓋將以所學於心者。施於有政。振經濟之策。宣力王室。垂名於百世。期爲不朽者也。然計官爵之等級。約則九級。其詳不可言。所謂權務者。又不在此例。就九級中。亦有權假試眞。一船品內。有從與正。其若州牧守倅縣令鎭將凡外郡之職。不預京官班秩。然外職要皆滿三年。然後見代。則其與京官遷轉。愈疏闊矣。且人生百歲。七十者稀。男兒當三十。始登一級。猶謂之晚。況僕行年已三十有七矣。緣早衰多病。其在三十四時。已見二毛。鑷之復生。自爾相續不絶。白與黑今已相等矣。譬若木之將枯。葉必先變者。僕之享齒。能復有幾耶。以垂盡之年。尙未補九級外一權務之任。而顧官級之崎嶇旣如彼。僕之輔國之日之短促又如此。若四卜已後。方得一官。則纔涉七六品。髮已盡皓。便了一生矣。況物之自外來者。決不可必。其所謂七六品。又不可必期。況敢到重官鉅職。振經濟之策耶。夫然則輔國之心何所遂。讀書之勞安所償。百世之名安所垂歟。是僕之所以中夜三起。仰天大息者也。今閣下以水鏡之明。當銓衡之任。則士之賢不肖。皆呈于誠懸曲照之內。無敢以纖毫欺蔽者。況奎報之進謁於閣下者非一日。則僕之言行之枉正。皆已詳之矣。凡以文投贄者至再三。則僕之文章之巧拙。皆已辨之矣。其若完山所理之迹。亦皆所聞也。若謂之未滿期限則已。然其所以見罷。爲同寮者所誣。則其邪正曲直廉貪之理。已判然矣。不待僕之自列。想閣下久已悉之矣。然則寧復有所疑而依違不果耶。伏聞翰職有闕員。若暫假其任。用試僕之所學於心者。有不稱副。似玷閣下用人之鑑。則擯之斥之亦可。予無所憾于心矣。夫不試而責其能。不若試之而後已也。僕亦不言而有悔。不若盡言而後有悔。是僕所以譊譊有是言。而亦望閣下先試其可否者也。嗚呼。僕之榮枯生死進退舒卷。盡在閣下之手。俟命而已。毋或如富者之便忘。使僕終至於窮阨也。戰灼惶悚。不宣。某再拜。

십이월 어느 날, 문생 아무 벼슬 아무는 삼가 두 번 절하고 집정 상국 태학사 합하께 글을 올립니다.

저는 지난번 뜰에 나아가 뵈었는데, 앉기를 내려 주시고 위로하며 힘써 권해 주심이 갖추어 이르렀습니다. 요사이 지은 것이 얼마냐고 물으시고 아울러 옥당(玉堂)의 빈자리를 잇게 하겠다는 말씀에까지 미치시니, 놀라 떨리고 두려워 절하고 사례하며 물러났습니다.

저는 참으로 못난 자입니다. 글은 나라의 빛을 갖추기에 넉넉하지 못하고 재주는 사람들의 바람을 누를 수 없는데, 합하께서 지나치게 들으시어 글 짓는 벼슬로 기대하시기까지 하셨습니다. 분수를 넘는 영광은 감히 당할 바가 아니어서 다만 부끄러이 여기며 그 까닭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거듭 되풀이하여 찾아 풀어 보고서야 비로소 그렇게 되신 까닭을 얻었습니다. 합하의 말씀은 본디 이치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러하오나 이 또한 오히려 늦습니다.

왜 그런가. 지난날 합하께서 저를 못났다 여기지 않으시고 몸소 대궐에 나아가 차자(箚子)를 올려 천거하시며, 예에 따라 바깥 벼슬에 붙인 뒤에 뒷날 글 짓는 벼슬을 갖추게 해 달라고 청하셨습니다. 그 뜻이 간절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다만 때가 다행하지 못하여 이루지 못하였을 뿐입니다. 그 뒤에 제가 이미 바깥 시험을 거쳤을 때에는 합하께서 마침 나라를 맡아 자루를 잡고 계셨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여겼습니다. 예사 때에도 그러하셨는데 어찌 손에 그 자루를 잡고서 쓰지 못하실 리가 있겠는가.

그런데 제가 외롭고 굼뜨게 흩어져 지낸 것이 또 여러 해인데도 아직 주시려는 뜻을 입지 못하였습니다. 미운 얼굴에 짙게 분을 발라 처음에는 사랑스러운 듯하였으나, 분이 떨어져 바탕이 드러나니 밝은 거울의 비춤에서 벗어날 데가 없었던 것입니까. 참으로 그렇다면 그만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권세를 펼 수 있고 은혜를 미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때가 되어 도리어 지난날 차자를 올리시던 날만 못하니, 그래서 제가 재주와 분수를 헤아리지 못하고 합하의 말씀이 오히려 늦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제의 형세로 보면 아마 마침내 세상에 쓰이지 못할 것이니, 밭으로 돌아가 힘써 갈아 아내와 자식을 살리기를 꾀하는 것보다 나은 계책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또 그리하지 않는 것은, 돌아보아 합하께 자부하는 바가 있어 아직 기다릴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비유하면 이렇습니다. 남의 궁함을 슬퍼하는 이가 있는데 제 힘으로는 도울 수 없어, 부자의 집에 도타이 알려 털끝만큼이라도 빌어 그 급함을 건지려 하였습니다. 그런데 부자가 인색하여 마침내 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 사람이 부유해져 저 부자와 맞먹게 되자 궁한 이가 스스로 여겼습니다. 「지난번에는 건져 줄 밑천이 없어도 그래도 남에게 빌려 하였는데, 어찌 제가 부유해지고서 나에게 미치지 않을 리가 있겠는가. 금과 옥과 돈과 재물을 반드시 그 반을 나누어 줄 것이다.」 궁한 이의 헤아림이 이와 같은데, 만일 그 사람이 우연히 잊고 주지 않는다면 그때에 발끈 낯빛을 지어 곧 떠나야 합니까, 조금 머물러 기다려야 합니까. 합하께서는 어찌 처신하시겠습니까. 저로서는 마땅히 잠깐 조금 참아 그 될지 안 될지를 점쳐 보고, 아주 잊으신 뒤에 하직하고 떠나도 늦지 않을 듯합니다.

그러하오나 이 또한 제가 급급히 때에 미치려는 뜻이 있어 너무 이르게 헤아린 것일 뿐입니다. 합하의 마음을 헤아려 보면 어찌 저를 끝내 궁한 자가 되게 하시기에 이르겠습니까. 어떻게 그러함을 헤아리는가. 제가 일찍이 합하께서 기 평장(奇平章)이 보내 준 다림돌을 사례하신 시에 화답하여 올렸습니다. 합하께서 마침 밥을 드시다가 곧 숟가락을 놓고 반찬을 물리시고 기려 읊기를 그치지 않으셨으며, 안주인이 제 시를 들인 하인을 꾸짖게까지 되었습니다. 이는 남이 옆에서 전한 것이 아니라 막내 아드님이 몸소 저에게 이끌어 말해 준 것입니다. 이로써 반드시 그러함을 취하여 합하께서 끝내 잊지 않으실 것을 헤아립니다. 한스러운 것은 개와 말 같은 제 나이가 어느새 반을 넘으려 하는 것뿐입니다.

또 선비가 처음 벼슬길에 나서는 것은 한갓 제 한 몸의 영화로운 벼슬을 꾀하려 함만이 아닙니다. 마음에 배운 것을 정사에 펴서 세상을 다스리는 꾀를 떨치고, 왕실에 힘을 바쳐 백세에 이름을 남겨 썩지 않기를 기약하려는 것입니다. 그런데 벼슬 등급을 헤아리면 줄여도 아홉 급이요 그 자세한 것은 말할 수 없습니다. 이른바 권무(權務)라는 것은 또 이 예에 들지 않습니다. 아홉 급 가운데에도 권(權)과 가(假)와 시(試)와 진(眞)이 있고, 한 품계 안에도 종(從)과 정(正)이 있습니다. 주목과 수령과 그 보좌, 현령과 진장(鎭將) 같은 바깥 고을 벼슬은 서울 벼슬의 반열에 들지 않습니다. 게다가 바깥 벼슬은 모두 세 해를 채운 뒤에야 갈리니, 서울 벼슬의 옮겨 가는 것과는 더욱 멀고 벌어집니다.

또 사람이 백 살을 산다 하나 일흔도 드뭅니다. 사내가 서른에 처음 한 급에 오르는 것도 오히려 늦다고 하는데, 하물며 저는 나이가 이미 서른일곱입니다. 일찍 시들고 병이 많아 서른넷에 이미 흰 머리가 섞였습니다. 뽑아도 다시 나서 그때부터 잇달아 끊이지 않아, 흰 것과 검은 것이 이제 벌써 맞먹습니다. 나무가 마르려 하면 잎이 반드시 먼저 변하는 것과 같으니, 제가 누릴 나이가 다시 얼마나 있겠습니까.

거의 다한 나이로 아직 아홉 급 밖의 권무 벼슬 하나에도 붙지 못하였습니다. 돌아보면 벼슬 등급의 험함이 이미 저와 같고, 제가 나라를 도울 날의 짧고 바쁜 것이 또 이와 같습니다. 만일 인사를 네 번 겪은 뒤에야 벼슬 하나를 얻는다면, 겨우 칠품 육품에 걸칠 즈음 머리가 이미 다 세어 곧 한 생을 마치고 말 것입니다. 하물며 바깥에서 오는 것은 결코 꼭 그러하다 할 수 없으니, 이른바 칠품 육품도 또 기약할 수 없습니다. 하물며 감히 무거운 벼슬 큰 자리에 이르러 세상을 다스리는 꾀를 떨치겠습니까. 그렇다면 나라를 도우려는 마음을 어디서 이루며, 글 읽은 수고를 어디서 갚으며, 백세의 이름을 어디에 남기겠습니까. 이것이 제가 밤중에 세 번 일어나 하늘을 보고 크게 한숨짓는 까닭입니다.

이제 합하께서 물과 거울 같은 밝음으로 사람 고르는 벼슬을 맡으셨으니, 선비가 어진지 못난지가 다 어김없는 저울과 두루 비추는 빛 안에 드러나 가느다란 털끝만큼도 감히 속여 가릴 수 없습니다. 하물며 저 규보(奎報)가 합하께 나아가 뵌 것이 하루가 아니니, 제 말과 행실이 굽었는지 바른지를 다 이미 자세히 아실 것입니다. 글을 폐백 삼아 올린 것이 두세 번에 이르니, 제 글의 잘되고 못됨을 다 이미 가리셨을 것입니다. 완산(完山)에서 다스린 발자취도 다 들으신 바입니다. 기한을 채우지 못하였다고 하신다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제가 파면된 까닭이 같이 일하던 이에게 모함을 받은 것이니, 그 그름과 바름, 굽음과 곧음, 청렴함과 탐함의 이치가 이미 뚜렷합니다. 제가 스스로 벌여 말하기를 기다리지 않아도 합하께서 오래전에 이미 다 아셨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찌 다시 의심하여 머뭇거리며 결단하지 못하실 것이 있겠습니까.

듣기로 글 짓는 벼슬에 빈자리가 있다 합니다. 만일 그 벼슬을 잠깐 빌려 주시어 제가 마음에 배운 것을 시험해 보시고, 걸맞지 않아 합하께서 사람 보시는 눈을 흐리게 할 듯하면 물리치시고 내치셔도 좋습니다. 저는 마음에 서운할 것이 없습니다. 시험하지 않고 그 재능을 따지는 것은 시험해 본 뒤에 그만두는 것보다 못합니다. 저 또한 말하지 않고 뉘우치는 것은 다 말한 뒤에 뉘우치는 것보다 못합니다. 이것이 제가 시끄럽게 이 말을 하며, 합하께서 먼저 그 될지 안 될지를 시험해 주시기를 바라는 까닭입니다.

아, 저의 피고 마름, 살고 죽음, 나아감과 물러남, 펴짐과 거둠이 다 합하의 손에 있으니 분부를 기다릴 뿐입니다. 부디 저 부자가 아주 잊은 것처럼 하시어 저를 끝내 궁하고 막힌 데에 이르게 하지 마소서. 떨리고 타는 듯 두렵습니다. 이만 그칩니다. 아무는 두 번 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