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중에서 처사 안치민(安置民)께 답하여 손수 쓴 글軍中答安處士置民手書
月日。某啓。僕自在京師。聞處士之名滋久。路隔千里。無由相覿。第深傾渴而已。及去歲十一月。被征東之命。從軍非佳事。以得見處士爲幸。知會面有日。但此都亂熾。未的識好在。以此爲慮耳。及入都。急欲邀見。緣軍門壯鑰謹。誰何甚厲。且處士亦此都人。若與相見。恐軍中有疑者。故未敢爾。昨於幕中簽判朴郞中所寓。値處士方與朴公話。僕素未識面。觀其鬚髮皓然。著緇衣峙緇冠。如世所畫道客居士者。卽自認之。不問名諱。促膝接話。若舊日飽相與遊者。因得略詳其一二。其後於蒲池寺。與朴公相際。特邀致處士。因置酒從容。各賦詩數篇而去。僕以兩日之覿。頗慰昔年積戀之懷。方欲致書。敍所以深仰敬伏之意。尙稽延未先。忽蒙今月某日首辱書敎累幅。辭語高爽。飄飄有凌雲之氣。予然後知眞箇有仙風道韻。嘆伏絶倒。較疇昔加深。而感荷亦爾。但書中以僕比李太白。太白。天人也。其語皆天仙之詞。僕雖耗竭精思。百日百夜。方得一詩。猶不略侔謫仙昏醉中造次所占一語也。處士其不欲假僕以須臾之喘息耶。何簸以大語。將飄去吾平生幺麽不盈眥之福歟。僕之向之比處士以文洋州龐居士者。蓋墨竹絶似與可。參禪得妙如龐薀。故指的實而言耳。非出於媚諛者。處士尙遜避不敢當之。況僕之於太白。邈若霄壤相懸。而處士況之大過。若將誑戲者。愚心不能無小望。兼所曉捕賊事。尋已藏心。予豈輕洩哉。處士有婦與兒。得無慮日支否。幸有私蓄。以長腰若干斗餉之。雖小尙堪延一日。幸納毋拒。朴簽判約與予同遊佛國寺。處士亦相從否。此境多江山佳處。又賊兵小弭。當與處七野服遊歷。時或賦詠。稍遣鬱懷耳。軍中有所厚某甲者。聞予與處士遊。將絹素求墨竹甚勤。爲我一掃可乎。餘留面剖。不宣再拜。
어느 달 어느 날, 아무가 아룁니다.
저는 서울에 있을 때부터 처사의 이름을 들은 것이 오랩니다. 길이 천 리로 막혀 서로 볼 길이 없어 다만 깊이 사모하며 목말라 했을 뿐입니다. 지난해 십일월에 동쪽을 치라는 분부를 받았습니다. 군대를 따르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나 처사를 뵐 수 있게 된 것을 다행으로 여겨, 얼굴을 마주할 날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다만 이 고을에 어지러움이 성하여 무사히 계신지를 똑바로 알지 못하여 이것을 걱정하였습니다.
고을에 들어와 급히 맞아 뵈려 하였으나, 군문의 자물쇠가 굳고 삼가며 누구냐고 묻는 것이 몹시 엄하였습니다. 또 처사도 이 고을 사람이니 만일 서로 보면 군중에 의심하는 이가 있을까 하여 감히 그리하지 못하였습니다.
어제 막중 첨판 박 낭중이 머무는 곳에서, 처사가 마침 박공과 이야기하시는 것을 만났습니다. 저는 본디 얼굴을 몰랐으나, 수염과 머리가 희고 검은 옷을 입고 검은 관을 높이 쓴 것이 세상에서 그리는 도객이나 거사와 같은 것을 보고 곧 스스로 알아보았습니다. 이름을 묻지 않고 무릎을 맞대고 이야기를 나누니 옛날에 실컷 서로 놀던 이와 같았고, 그래서 그 한둘을 대강 알게 되었습니다. 그 뒤에 포지사(蒲池寺)에서 박공과 만나 특별히 처사를 맞아 오게 하여 술자리를 조용히 차리고, 각기 시 몇 편을 지은 뒤에 헤어졌습니다.
저는 이틀 뵌 것으로 여러 해 쌓인 그리움을 꽤 위로하였습니다. 이제 글을 보내어 깊이 우러러 공경하고 굽히는 뜻을 펴려 하였으나 아직 미루어 먼저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홀연 이달 어느 날 먼저 여러 폭 글을 내려 주셨습니다. 말이 높고 시원하여 훨훨 구름을 넘는 기운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제야 참으로 신선의 바람과 도의 울림이 있음을 알아 탄복하여 넘어질 듯하였으니, 지난날에 견주어 더 깊어졌고 고마움도 또 그러합니다.
다만 글 가운데 저를 이태백(李太白)에 견주셨습니다. 태백은 하늘 사람이니 그 말이 다 하늘 신선의 말입니다. 저는 정신을 다 쏟아 백 날 백 밤에야 시 한 편을 얻어도, 귀양 온 신선이 몹시 취한 가운데 문득 지어 낸 한마디에 대강도 맞먹지 못합니다. 처사께서는 저에게 잠깐의 숨 쉴 틈도 빌려 주지 않으려 하십니까. 어찌하여 큰 말로 까부르시어, 제 평생의 자잘하여 눈에도 차지 않는 복을 날려 버리려 하십니까.
제가 앞서 처사를 문양주(文洋州)와 방 거사(龐居士)에 견준 것은, 먹으로 그린 대가 여가(與可)와 매우 닮고 선을 참구하여 묘함을 얻은 것이 방온(龐蘊)과 같았으므로, 실제를 가리켜 말한 것일 뿐이요 아첨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처사께서도 오히려 사양하여 피하며 감히 당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물며 저와 태백은 하늘과 땅처럼 아득히 떨어져 있는데, 처사께서 견주신 것이 너무 지나쳐 마치 속여 놀리시는 듯하니 어리석은 마음에 조금 서운함이 없을 수 없습니다.
아울러 일러 주신 도적 잡는 일은 곧 마음에 감추어 두었으니, 제가 어찌 가볍게 새게 하겠습니까. 처사께는 아내와 아이가 있으니 날마다 버티는 일에 걱정이 없겠습니까. 다행히 사사로이 쌓아 둔 것이 있어 좋은 쌀 몇 말을 보내 드립니다. 적으나마 그래도 하루를 늘리기에는 넉넉하니 부디 받으시고 물리치지 마소서.
박 첨판이 저와 함께 불국사(佛國寺)에 놀러 가기로 언약하였는데 처사도 따라가시겠습니까. 이 고을에는 강과 산의 좋은 곳이 많고 또 도적의 군사가 조금 가라앉았습니다. 마땅히 처사와 더불어 들옷으로 두루 노닐며 때로 시를 읊어 답답한 마음을 조금 풀고자 합니다.
군중에 제가 두터이 여기는 아무가 있는데, 제가 처사와 노니는 것을 듣고 흰 비단을 가지고 먹으로 그린 대를 매우 부지런히 청합니다. 저를 위하여 한번 쳐 주시겠습니까. 나머지는 만나서 풀기로 남겨 둡니다. 이만 그치며 두 번 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