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안부를 물어온 전·박 두 벗에게 답하여 손수 쓴 글答全朴兩友生自京師致問手書
某啓。蒙千里致問。驚奉手敎。備認兩君雅履動止佳勝。感慰交極。官軍。今月某日。離東京入雲門山屯住。草賊亦小弭。軍中無餘事。但掘松下新菌。煨火中喫啖。甚佳。僕本書生。不閑弓馬。偶爲驅逼。以怯膽從軍。初甚股戰。漸習軍旅間其所謂彎弓走馬。近亦稍稍。若用此播士林。必供一場大笑。但楯上草檄。緣煎爍矢石中。眊眊然不若平昔酣醉時下筆迅速。然亦不至遲鈍。粗免長官訶詰耳。有的便更通家信。甚幸。廻使忙遽。不得悉意。惟冀萬萬各自愛。惶恐頓首。
아무가 아룁니다.
천 리에서 안부를 보내 주시니 놀라며 손수 쓰신 글을 받았습니다. 두 분이 지내시는 걸음과 움직임이 좋으신 것을 갖추어 알았으니 고마움과 위로가 함께 지극합니다.
관군은 이달 어느 날 동경(東京)을 떠나 운문산(雲門山)에 들어와 진을 치고 머무릅니다. 들도적도 조금 가라앉아 군중에 다른 일이 없습니다. 다만 솔 아래 새 버섯을 캐어 불에 묻어 구워 먹으니 매우 좋습니다.
저는 본디 글하는 사람이라 활과 말에 익숙하지 못합니다. 우연히 몰림을 받아 겁 많은 담으로 군대를 따랐으니 처음에는 몹시 다리가 떨렸습니다. 군대 사이에서 이른바 활을 당기고 말을 달리는 것을 차츰 익혀 요사이는 또 조금씩 되어 갑니다. 이것을 선비들 사이에 퍼뜨리면 반드시 한바탕 큰 웃음거리가 될 것입니다.
다만 방패 위에서 격문을 초잡는 것은 살과 돌이 볶아 대는 가운데라 눈이 어두워, 예전에 흥겹게 취하였을 때 붓을 빠르게 내리던 것만 못합니다. 그러나 또 더디고 둔한 데에 이르지는 않아 상관의 꾸짖음은 대강 면합니다.
마땅한 인편이 있으면 다시 집 소식을 전해 주시면 매우 다행입니다. 돌아가는 인편이 바빠 뜻을 다 하지 못합니다. 오직 부디부디 각기 몸을 아끼시기를 바랍니다. 두려워하며 머리를 숙입니다.
협주 1
東京 — 고려 때의 경주(慶州)다. ― 옮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