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동국이상국집 › 전집 권27

낭중 박인석(朴仁碩)께 답하는 글答朴郞中仁碩手書

동국이상국집 東國李相國集 · 이규보(李奎報) · 1241년 (고려 고종 28) 엮음 · 1251년 고쳐 보탬 · 단락 1 · 한자 274자 · 낭독 3.1분

동국이상국집 전집 권27 고려 이규보가 평생 지은 글을 아들 이함이 1241년에 엮어 새기고, 손자 이익배가 1251년에 고쳐 보탠 문집. 시와 부, 임금께 올린 표와 전, 절과 탑에 붙인 기, 비명과 묘지명, 편지와 서문, 그리고 몽골이 쳐들어온 때에 오간 국서까지 담겼다. 고구려 시조를 노래한 「동명왕편」이 전집 권3에 있고, 술과 거문고와 시를 벗 삼아 스스로 백운거사라 한 사람의 하루하루가 후집에 남아 있다. 책은 그가 눈을 앓다 붓을 놓는 마지막 시와, 그가 죽은 뒤 남이 지어 붙인 뇌서·묘지명으로 닫힌다.

某月日。賢姪朴夢周至。蒙辱書致問。因審起居康裕。兼悉戰捷事。喜慰交切。言所莫周。僕前者。聞閣下生俘名賊四十人。馳章報上。尋修賀牘。因的便奉寄。其書達否。尙未知。而又聞親冒矢石。窮日力戰。獲賊二十餘人。遣裨佐等詣闕獻俘。嗚呼美哉。是何大勝累捷之如是之頻耶。僕聞而喜之。若有得於己者。然未知戰何地獲何賊。稍癢于心。及奉手敎。頗得其詳。且憑朴夢周。備悉戰狀。則地莫險於梨川。賊魁莫捷於金順。俾其人先據其地。則雖萬軍想莫敢當。而閣下能擒之。是豈公之文虎智略有大過人耶。方嘆息未旣。聞郞子之拜命內庭。益復欣慶。但東向再拜遙賀耳。皇甫參軍,咸延壽,鄭克光等。亦崇資擢秩。官家之賞功答勞如此。是亦可賀也已。何時會合。得細剖。想閣下亦爾。草草未盡懷。不宣。某頓首。

어느 달 어느 날. 댁의 조카 박몽주(朴夢周)가 이르러 보내 주신 글월을 받았습니다. 이로써 지내시는 형편이 편안하심을 알았고, 아울러 싸움에 이기신 일도 다 들었습니다. 기쁘고 위로되는 마음이 아울러 간절하여 말로는 다 하지 못합니다.

저는 앞서 합하께서 이름난 도적 마흔 사람을 산 채로 사로잡고 글을 달려 임금께 아뢰셨다는 말을 듣고, 이내 축하하는 글월을 닦아 마침 가는 인편에 부쳐 보냈습니다. 그 글이 닿았는지 아직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 또 들으니, 몸소 화살과 돌을 무릅쓰고 해가 다하도록 힘껏 싸워 도적 스무 남은 사람을 잡으시고, 비장과 좌관들을 보내어 대궐에 나아가 사로잡은 자를 바치셨다 합니다. 아, 아름답습니다. 이 어찌 큰 승리와 거듭된 이김이 이토록 잦은 것입니까.

저는 듣고 기뻐하기를 마치 제 몸이 얻은 것처럼 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느 땅에서 싸워 어떤 도적을 잡으셨는지 알지 못하여 마음이 자못 근질거렸습니다.

손수 쓰신 글월을 받고서야 자못 그 자세함을 얻었고, 또 박몽주에게 기대어 싸움의 형편을 다 들었습니다. 땅으로는 이천(梨川)보다 험한 데가 없고 도적의 우두머리로는 금순(金順)보다 날랜 자가 없습니다. 그 사람으로 하여금 먼저 그 땅을 차지하게 하였다면 비록 만 명의 군사라도 감히 당해 내지 못하였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런데 합하께서 능히 사로잡으셨습니다. 이 어찌 공의 문무와 슬기와 꾀가 남보다 크게 뛰어난 것이 아니겠습니까.

한창 감탄해 마지않던 참에 아드님이 내정(內庭)에서 벼슬을 받았다는 말을 들으니 더욱 기쁘고 경사롭습니다. 다만 동쪽을 향하여 두 번 절하고 멀리서 축하드릴 뿐입니다.

참군 황보(皇甫) 아무와 함연수(咸延壽)·정극광(鄭克光) 들도 또한 품계가 오르고 자리가 높아졌습니다. 나라에서 공을 상 주고 수고를 갚음이 이와 같으니 이 또한 축하할 만합니다.

어느 때에나 만나서 자세히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습니까. 합하께서도 그러하시리라 생각합니다. 바빠서 품은 뜻을 다 펴지 못합니다. 이만 줄입니다. 아무는 머리를 조아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