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엄 선사(妙嚴禪老)께 부치는 글寄妙嚴禪老手書
月日某啓。僕於世被狂名久矣。獨尹司業不以狂人待之。空門獨丈下亦爾。每相見輒欣待。不欲輕別。僕亦非不照此心。以俗緣深重。猶不得日與丈下相從。能不泚顙。但心交中有不能無小望者。丈下欲取僕詩文。憑宋歸舶。流播中國。此非厚予。而祇以揚其醜也。僕僅類中國之解書走卒耳。華人見吾詩。必曰。如是而已耶。三韓詩人。非止此耳。此獨來華。必其國之鉅者。鉅者尙爾。餘可知也。苟如是云云。則適彰國之短耳。請勿復及。但慮丈下齒臘甚少。不幸嬰沈痾。顔日以益瘦。雖道境不以生死介意。僕是世情。不能無恐。惟冀爲法自愛。勉加藥石。以副予輩與宗門祝禱之懇。餘留面剖。不宣。某再拜。
어느 달 어느 날, 아무가 아룁니다. 저는 세상에서 미쳤다는 이름을 입은 지 오래입니다. 오직 윤 사업(司業)만이 저를 미친 사람으로 대하지 않았고, 불문에서는 홀로 장하(丈下)께서 또한 그러하셨습니다. 만날 때마다 기쁘게 맞아 주시고 가벼이 헤어지려 하지 않으셨습니다.
저도 이 마음을 비추어 알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세속의 인연이 깊고 무거워 날마다 장하와 더불어 좇아 지내지 못하니 어찌 이마에 땀이 나지 않겠습니까.
다만 마음으로 사귀는 가운데 조그마한 바람이 없을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장하께서 저의 시와 글을 가져다 송나라로 돌아가는 배에 부쳐 중국에 퍼뜨리려 하십니다. 이는 저를 두터이 대하시는 것이 아니라 다만 저의 추한 것을 드러내는 일일 뿐입니다.
저는 겨우 중국의 글자나 아는 심부름꾼과 같을 뿐입니다. 중국 사람이 제 시를 보면 반드시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이와 같을 뿐인가. 삼한의 시인이 이에 그치지는 않을 터이다. 이 글만이 중국에 왔으니 반드시 그 나라의 큰 사람일 것이다. 큰 사람이 오히려 이러하니 나머지는 알 만하다.」 진실로 이렇게들 말한다면 이는 마침 나라의 모자람을 드러내는 일일 뿐입니다. 다시는 이 일을 꺼내지 마시기를 청합니다.
다만 염려되는 것은, 장하께서 나이와 법랍이 매우 적으신데 불행히 깊은 병에 걸리시어 얼굴이 날로 더욱 여위는 것입니다. 비록 도의 경지에서는 살고 죽는 것을 마음에 두지 않으시겠으나, 저는 세속의 정이라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직 바라건대 법을 위하여 스스로 아끼시고 힘써 약을 더 쓰시어, 저희와 종문이 빌고 바라는 간절한 마음에 부응해 주십시오. 나머지는 만나 뵙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만 줄입니다. 아무는 두 번 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