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동국이상국집 › 전집 권27

전이지(全履之)에게 보내는 글與全履之手書

동국이상국집 東國李相國集 · 이규보(李奎報) · 1241년 (고려 고종 28) 엮음 · 1251년 고쳐 보탬 · 단락 1 · 한자 302자 · 낭독 3분

동국이상국집 전집 권27 고려 이규보가 평생 지은 글을 아들 이함이 1241년에 엮어 새기고, 손자 이익배가 1251년에 고쳐 보탠 문집. 시와 부, 임금께 올린 표와 전, 절과 탑에 붙인 기, 비명과 묘지명, 편지와 서문, 그리고 몽골이 쳐들어온 때에 오간 국서까지 담겼다. 고구려 시조를 노래한 「동명왕편」이 전집 권3에 있고, 술과 거문고와 시를 벗 삼아 스스로 백운거사라 한 사람의 하루하루가 후집에 남아 있다. 책은 그가 눈을 앓다 붓을 놓는 마지막 시와, 그가 죽은 뒤 남이 지어 붙인 뇌서·묘지명으로 닫힌다.

某啓。前日晨起。偶閱吾箱篋中所貯詩藁。見詩卷中所載平昔與遊中輩行故人之姓字。一半已爲鬼錄。餘各飄散千里。耗音不相聞者亦多。念之不覺失聲驚呼。中間遇咸子眞,吳德全輩數四君。爲忘年友。亦皆長逝。此則先輩也。理必應爾。雖少壯亦不可恃。人命脆弱。一何如此。噫。唯足下與僕。幸各無恙。日相與遊。未嘗睽折有間也。雖然。人生聚散無常。今日會合。不知明日又各去何處也。未爾間。但努力圖窮樂事耳。外此何與於我哉。前者飮李君家甚快樂。至扶掖而還。醉中不知導何等語。足下尙知之否。但記半酣時索素琴彈之耳。安和寺環碧亭淸軒兩度飮中狂態何如也。吾家近日釀酒。頗香釅可飮。忍不與君輩共酌耶。況今紅杏微拆。春氣融怡。使人情惱亂多感。佳節如此。不飮何爲。望與李君朴還古輩來飮。不然。吾家酒不數日輒乾也。迨後見訪。但遭水厄耳。惶恐頓首。

아무가 아룁니다. 며칠 전 새벽에 일어나 우연히 제 상자 속에 간직한 시 원고를 들추어 보았습니다. 시권에 적힌, 지난날 함께 놀던 또래 벗들의 성과 이름을 보니 절반은 이미 저승의 명부에 올랐고, 나머지는 저마다 천 리에 흩어져 소식조차 서로 듣지 못하는 이가 또한 많았습니다.

생각하다가 저도 모르게 소리를 잃고 놀라 부르짖었습니다. 그 사이에 만난 함자진(咸子眞)·오덕전(吳德全) 같은 서너 분과 나이를 잊은 벗이 되었는데 또한 다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분들은 선배이니 이치로는 반드시 그럴 것입니다. 그러나 젊고 씩씩하다 하여 또한 믿을 수 없습니다. 사람의 목숨이 무르고 약한 것이 어찌 이와 같습니까.

아, 오직 족하와 저만이 다행히 각기 탈이 없어 날마다 서로 어울려 놀고 일찍이 어그러져 사이가 뜬 적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사람의 삶은 모이고 흩어짐이 덧없습니다. 오늘 만났어도 내일 또 각기 어디로 갈지 알지 못합니다. 그리 되기 전에 다만 힘써 즐거운 일을 다하기를 꾀할 뿐입니다. 이 밖의 것이 저와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지난번 이군(李君)의 집에서 마신 것이 몹시 즐거워 부축을 받고서야 돌아왔습니다. 취한 가운데 무슨 말을 하였는지 알지 못하는데 족하는 아직 기억하십니까. 다만 얼근할 때 줄만 걸린 거문고를 찾아 탄 것만 기억납니다. 안화사(安和寺) 환벽정(環碧亭)과 청헌(淸軒)에서 두 차례 마시던 가운데의 미친 모습은 또 어떠하였습니까.

우리 집에서 요사이 술을 빚었는데 자못 향기롭고 진하여 마실 만합니다. 차마 그대들과 함께 잔을 나누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물며 이제 붉은 살구꽃이 살짝 벌고 봄기운이 부드럽고 화창하여, 사람의 마음을 어지럽히고 느꺼움이 많게 합니다. 좋은 철이 이와 같은데 마시지 않고 무엇하겠습니까.

바라건대 이군과 박환고(朴還古) 들과 함께 와서 마시십시오. 그러지 않으면 우리 집 술은 며칠 못 가 바닥납니다. 뒤늦게 찾아오신들 다만 맹물이나 마시는 곤욕을 치를 뿐입니다. 두렵습니다. 머리를 조아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