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서기(書記)에게 보내는 글與某書記書
月日。某頓首。先生足下。昨因辭訣。枉騶騎于蓬蓽之中。酒薄日暮。敍別未厚。愧悔莫已。想素諳吾窮。不至深訝也。承辱問乃理郡孰爲最急者。僕笑之曰。傳不云乎。敗軍之將。難以語勇。僕是理邑未終者。其措顔何所。而敢論政之緩急耶。雖然。吾子不謂僕愚惷寡識。過貶損不自賢。以所疑咨逮。而僕若不以實告之。則烏在其答人親款之意耶。敢略以一言告之。曰凡理邑。要不過寬猛得中耳。曩僕之理全也。頗多苛名聞於時者。而反以此告。固非僕之所以理之之狀也。然政非一揆。必先觀民性。然後商酌緩急。莫斯爲最。全古百濟。其性大悍。不可以寬政理。故勉強用刑耳。非本心也。然不知者。猶以酷名之矣。若地之不似全者。一於猛則民殘以携。一於寬則民狎以緩。惟其寬猛迭用。然後畏之如神明。愛之如父毋。未有民之若爾而不理者也。此亦非吾子之所不能商酌者。但以僕之所自蓄於心者告之耳。然言之非難。行之惟艱。此言雖易。若欲行之於政。則莫有難於此者。子毋輕焉。兼取僕在完山所著表牋。緣當時不收拾貯蓄。故不得錄寄。幸寬之。但用所要白鍊紙一封。良箭四十隻。姑塞贐行耳。惶恐再拜。
어느 달 어느 날, 아무는 머리를 조아립니다. 선생 족하. 어제 하직하시는 길에 수레와 말을 굽혀 쑥대 사립 안까지 오셨습니다. 술은 묽고 날은 저물어 이별의 정을 두터이 펴지 못하였으니 부끄럽고 뉘우침이 그치지 않습니다. 평소 저의 궁함을 아시니 크게 의아해하지는 않으시리라 생각합니다.
고을을 다스리는 데 무엇이 가장 급한지 물어 주셨습니다. 저는 웃으며 말하였습니다. 「전(傳)에 이르지 않았습니까. 싸움에 진 장수와는 용기를 말하기 어렵다고. 저는 고을 다스리기를 끝까지 마치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 낯을 어디에 두고 감히 정사의 늦고 급함을 논하겠습니까.」
그렇지만 그대가 저를 어리석고 아는 것이 적다 여기지 않고, 지나치게 스스로를 낮추어 어질다 하지 않으면서 의심나는 것을 물어 오셨습니다. 그런데 제가 사실대로 알려 드리지 않는다면 남의 도타운 뜻에 답하는 도리가 어디 있겠습니까. 감히 한마디로 대강 말씀드립니다.
무릇 고을을 다스리는 데는 요컨대 너그러움과 매서움이 알맞음을 얻는 데 지나지 않습니다. 지난날 제가 전주를 다스릴 때에는 가혹하다는 이름이 세상에 자못 많이 들렸는데 도리어 이렇게 말씀드리니, 진실로 제가 다스리던 모습은 아닙니다.
그러나 정사는 한 가지 법도가 아닙니다. 반드시 먼저 백성의 성품을 본 뒤에 늦추고 죌 것을 헤아려야 하니 이보다 나은 것이 없습니다. 전주는 옛 백제 땅이라 그 성품이 몹시 사나워 너그러운 정사로는 다스릴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억지로 형벌을 썼을 뿐이요 본마음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모르는 이들은 오히려 모질다고 이름 지었습니다.
만일 전주와 같지 않은 땅이라면, 매섭기만 하면 백성이 상하여 흩어지고 너그럽기만 하면 백성이 버릇없어져 느슨해집니다. 오직 너그러움과 매서움을 번갈아 쓴 뒤에야 신명처럼 두려워하고 부모처럼 사랑합니다. 백성이 그러한데도 다스려지지 않은 일은 없었습니다.
이 또한 그대가 헤아리지 못할 바가 아닙니다. 다만 제가 마음에 쌓아 둔 것을 말씀드릴 뿐입니다. 그러나 말하기는 어렵지 않고 행하기가 어렵습니다. 이 말은 쉬우나 정사에 행하려 하면 이보다 어려운 것이 없습니다. 그대는 가벼이 여기지 마십시오.
아울러 제가 완산(完山)에 있을 때 지은 표(表)와 전(牋)을 찾으셨으나, 그때 거두어 간직해 두지 않았으므로 베껴 보내 드리지 못합니다. 부디 너그러이 보아 주십시오. 다만 구하시던 흰 다듬이 종이 한 봉과 좋은 화살 마흔 대를 보내어 우선 떠나시는 길의 선물에 갈음합니다. 두렵습니다. 두 번 절합니다.
협주 1
完山 — 전주(全州)의 옛 이름으로, 이 글 앞에 나온 「전주」와 같은 고을이다. ― 옮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