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 박서(朴犀)에게 보내는 글與朴侍御犀書
月日。太僕少卿寶文閣待制知制誥李某。謹致書于侍御君閣下。夫人之相知。貴相知心。僕平生有所受知於人。名雖爲知。其實未相知者有之。其惟轉風斤去鼻墁。精神暗契者。獨嚴君尙書而已。公生時公友人有李杞者。亦一段奇人也。尤善寫眞。嘗爲公畫像甚肖。公再三持以示予。意若欲予標誌。予讓不敢當焉。一昨。偶詣侍御家。覩向之遺像。方拜而望之。也則宛若平時燕居申申。而予方造謁。未及升階。望見光彩之日也。其卽而對之也。則面色之充然。眉目之肆然。若將語笑者。俛仰之間。不覺墮淚。是日蒙見借。奉以歸于家。掛廳壁凡幾日。朝夕敬拜。如禮佛菩薩像。感念疇昔。或嗚咽不自止者多矣。且文者。緣情而發。有激於中。必形于外而不可遏止者也。是用緣感之所發。乃拾實摭芳。聊爲之贊詞。其始也貪公事業。爲文頗繁。及書。緣幀子上甚窄。要計字然後可書。則删之又删。其省若此。噫。尙書。天下英偉人也。其雄才大度。寬和豁達。文虎智略。英風爽氣。磊磊焉落落焉。雖盡南山之竹。猶不足書。況於一幅區區之地。豈得馳騁文辭覼縷之周耶。第恐百世之後。日月寢悠。丹靑漫暗。則雖雲孫有不識誰像者。況他人哉。予所以贊之而略存標的者。凡以是也。文雖不厭閣下之意。蓋所自而作者。本期以不朽。而屬意非淺淺也。伏惟時或觀覽。有以慰罔極之思。不爲不可矣。未知閣下諒之何如也。不宣。某再拜。
어느 달 어느 날, 태복소경 보문각대제 지제고 이 아무는 삼가 시어 어른 합하께 글을 드립니다.
무릇 사람이 서로 아는 데는 마음을 서로 아는 것이 귀합니다. 저는 평생 남에게 알아줌을 받은 일이 있으나, 이름으로는 안다 하여도 실상은 서로 알지 못한 경우가 있었습니다. 오직 바람 소리 나게 도끼를 휘둘러 코끝의 흙을 깎아 내듯 정신이 가만히 맞은 이는, 홀로 그대의 아버님이신 상서(尙書)뿐이었습니다.
공이 살아 계실 때 공의 벗에 이기(李杞)라는 이가 있었는데 또한 한 자락 기이한 사람이었습니다. 더욱이 초상을 잘 그려 일찍이 공의 초상을 그렸는데 매우 닮았습니다. 공이 두세 번 가지고 와 저에게 보이시며 제가 거기에 글을 적어 주기를 바라는 듯하셨으나, 저는 사양하며 감히 감당하지 못하였습니다.
그저께 우연히 시어의 댁에 나아가 지난날의 그 남은 초상을 보았습니다. 절하고 우러러보니, 완연히 평소 한가히 계실 때 느긋하시던 모습이요, 제가 막 뵈러 가서 섬돌에 오르기도 전에 그 빛나는 모습을 바라보던 그날과 같았습니다. 가까이 나아가 마주하니 낯빛은 가득하고 눈썹과 눈은 시원하여 곧 말하고 웃으려는 듯하였습니다. 굽어보고 우러르는 사이에 저도 모르게 눈물을 떨구었습니다.
이날 빌려 주심을 받아 받들고 집으로 돌아와 마루 벽에 며칠을 걸어 두고, 아침저녁으로 공경히 절하기를 부처와 보살의 상에 예를 올리듯 하였습니다. 지난날을 느꺼이 생각하다가 더러 목이 메어 스스로 그치지 못한 적이 많았습니다.
또 글이란 정을 따라 나오는 것이니, 속에 북받치는 것이 있으면 반드시 밖으로 드러나 막을 수 없습니다. 이에 느껴 일어난 바를 따라 사실을 줍고 아름다움을 모아 애오라지 찬(贊)을 지었습니다. 처음에는 공의 사업을 다 담으려 욕심내어 글이 자못 길었습니다. 그런데 쓰려 하니 족자 위가 몹시 좁아 글자를 헤아린 뒤에야 쓸 수 있었으므로 깎고 또 깎았습니다. 그 줄임이 이와 같았습니다.
아, 상서는 천하의 뛰어나고 큰 사람이었습니다. 그 웅걸한 재주와 큰 도량, 너그럽고 화하며 시원하고 트인 성품, 문무의 슬기와 꾀, 빼어난 풍채와 상쾌한 기운은 우뚝하고 훤칠하여, 남산의 대나무를 다 쓴다 해도 오히려 적기에 모자랍니다. 하물며 한 폭의 자잘한 자리에 어찌 글을 마음껏 달려 낱낱이 두루 갖출 수 있겠습니까.
다만 두려운 것은, 백 대 뒤에 세월이 점점 아득해지고 그림 빛이 흐려지면 비록 먼 자손이라도 누구의 초상인지 알지 못할 이가 있으리라는 것입니다. 하물며 남이겠습니까. 제가 찬을 지어 표적을 대강 남긴 것은 대개 이 때문입니다.
글이 비록 합하의 뜻에 흡족하지 않더라도, 대개 이 글을 지은 뜻은 본디 썩지 않기를 기약한 것이요 마음 붙인 것이 얕지 않습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때때로 보시어 끝없는 그리움을 위로하신다면 안 될 것이 없겠습니다. 합하께서 헤아리심이 어떠하실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이만 줄입니다. 아무는 두 번 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