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동국이상국집 › 전집 권27

학유 최종유(崔宗裕)에게 보내는 글與崔宗裕學諭書

동국이상국집 東國李相國集 · 이규보(李奎報) · 1241년 (고려 고종 28) 엮음 · 1251년 고쳐 보탬 · 단락 1 · 한자 580자 · 낭독 5.7분

동국이상국집 전집 권27 고려 이규보가 평생 지은 글을 아들 이함이 1241년에 엮어 새기고, 손자 이익배가 1251년에 고쳐 보탠 문집. 시와 부, 임금께 올린 표와 전, 절과 탑에 붙인 기, 비명과 묘지명, 편지와 서문, 그리고 몽골이 쳐들어온 때에 오간 국서까지 담겼다. 고구려 시조를 노래한 「동명왕편」이 전집 권3에 있고, 술과 거문고와 시를 벗 삼아 스스로 백운거사라 한 사람의 하루하루가 후집에 남아 있다. 책은 그가 눈을 앓다 붓을 놓는 마지막 시와, 그가 죽은 뒤 남이 지어 붙인 뇌서·묘지명으로 닫힌다.

月日。某頓首。崔君足下。僕聞足下詩名久矣。然未曾有一日柸酒之雅。有以親襲芳馨。加之年老寡友。又無好事者肯以足下所著詩文見及。故未詳爲人何若也。噫。僕之老鈍一至此。聵聵焉眊眊焉。殊不類業文者之態矣。日者。始蒙足下垂和老生與兪侍郞唱酬之什。辭淸語警。助之以妍麗。皎然若氷壺之映月。曄然如春林之敷花。雖未得其全。亦髣髴得其爲人。想英風爽氣。瀏然襲人。予然後益慙僕之知足下大晚。顔厚不能無赭色。時大學韓,尹,皇甫三君子。亦和此詩。予欲奉酬足下與三君子所貺。腹藁已成。緣眼暗不能自書。方倩人代手。尋被負薪之疾。其後復爲官箴所迫。因循姑息。不得奉答。大失禮常。甘俟罪責。今月某日。復承手敎。驚惶聳覩。則和古許彥國虞美人草詩凡七首也。足下所以和此詩者。蓋有芸閣讎校金台臣者。嘗以所著詩一卷贄予。李史館允甫適來見之。借其本而去。足下於史館家得見之。和卷首所著此作。因以貺予也。昔者李允甫嘗和此詩。稍淸絶。督予同作。予知必不能吐一妙語。挨倣彼作。故辭而不爲。今已二十餘年矣。近見台臣所著。嘆伏良多。益知無所措手。今復蒙足下所著。多至七首。押韻旣得優閑。吐辭又復警絶。末章雜以楚詞。足以繼古體。甚善甚善。予又不以時奉答者。凡僕之意所未到者。已不可言。其間儻可得導者。足下之七首。皆已道之矣。予於此時。方以涸波乾韻。強欲仰繼。則滴未周器而源已竭。聲未到耳而曲卽窮。必爲作者之所大笑。安敢有屬和之意耶。雖然。當閑吟寓興之際。萬一有得。則書以奉寄。猶未晚也。惟大度寬之。但和前所貺赤字韻詩。兼和三君子摠四首。聯寫以寄。季春所荷。季夏方答。何予疏緩若是耶。酷熱自愛。不宣。某再拜。

어느 달 어느 날, 아무는 머리를 조아립니다. 최군 족하. 저는 족하의 시 이름을 들은 지 오래입니다. 그러나 일찍이 하루의 술잔을 나눈 사귐이 없어 그 꽃다운 향기를 몸소 쐬어 보지 못하였습니다. 게다가 나이 들어 벗이 적고, 또 일 좋아하는 이가 족하께서 지은 시와 글을 가져다 보여 주는 일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됨이 어떠한지 자세히 알지 못하였습니다.

아, 저의 늙고 무딤이 이에 이르렀습니다. 귀는 먹먹하고 눈은 흐려 글하는 사람의 모습과는 자못 같지 않습니다.

요전에 비로소 족하께서 늙은 제가 유 시랑과 주고받은 시에 화답해 보내 주심을 받았습니다. 말은 맑고 글귀는 빼어난 데다 곱고 아름다움까지 더하여, 희기가 얼음 항아리에 달이 비친 듯하고 환하기가 봄 숲에 꽃이 핀 듯하였습니다. 비록 그 전부를 얻어 보지는 못하였으나 또한 사람됨을 어렴풋이 알 만하였습니다. 빼어난 풍채와 상쾌한 기운이 서늘하게 사람에게 끼쳐 오는 듯합니다. 그런 뒤에야 족하를 안 것이 너무 늦은 것이 더욱 부끄러워, 낯이 두꺼운 저도 붉은 빛이 없을 수 없었습니다.

그때 대학의 한(韓)·윤(尹)·황보(皇甫) 세 분도 또한 이 시에 화답하였습니다. 저는 족하와 세 분이 주신 것에 받들어 화답하려고 뱃속 초고는 이미 이루었으나, 눈이 어두워 스스로 쓰지 못하고 사람을 빌려 대신 쓰게 하려던 참이었습니다. 이내 병이 들었고 그 뒤에 다시 벼슬살이에 쫓겨 미루고 그럭저럭 지내다가 받들어 답하지 못하였습니다. 예의 떳떳함을 크게 잃었으니 꾸지람을 달게 기다립니다.

이달 아무 날에 다시 손수 쓰신 글월을 받고 놀라 두려워하며 눈을 들어 보니, 옛날 허언국(許彦國)의 「우미인초(虞美人草)」 시에 화답한 것 모두 일곱 편이었습니다.

족하께서 이 시에 화답하신 까닭은 이러합니다. 운각(芸閣) 수교 김태신(金台臣)이라는 이가 일찍이 자기가 지은 시 한 권을 저에게 바쳤는데, 사관 이윤보(李允甫)가 마침 와서 보고 그 책을 빌려 갔습니다. 족하께서 사관의 집에서 그것을 보시고, 권 첫머리에 실린 이 작품에 화답하여 저에게 보내 주신 것입니다.

옛날에 이윤보가 일찍이 이 시에 화답하였는데 자못 맑고 빼어났습니다. 저에게 함께 짓기를 재촉하였으나, 저는 반드시 묘한 말 한마디도 토해 내지 못하고 그 작품을 밀어 본뜨기만 하리라는 것을 알았으므로 사양하고 짓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이제 스무 해가 넘었습니다. 근래 태신이 지은 것을 보고 감탄하여 엎드림이 참으로 많았고, 손댈 데가 없음을 더욱 알았습니다.

이제 다시 족하께서 지으신 것을 받으니 많기가 일곱 편에 이르렀습니다. 운을 다는 것이 이미 넉넉하고 한가로우며 말을 토해 내는 것이 또 빼어났습니다. 끝 장은 「초사」를 섞어 옛 체를 잇기에 넉넉하니 매우 좋고 매우 좋습니다.

제가 또 제때에 받들어 답하지 못하는 까닭은 이렇습니다. 무릇 제 뜻이 이르지 못한 것은 이미 말할 수 없고, 그 사이에 혹 말할 만한 것이 있다 하여도 족하의 일곱 편이 이미 다 말하였습니다. 제가 이때에 마른 물결과 메마른 운으로 억지로 우러러 이으려 한다면, 물방울이 그릇을 다 채우기도 전에 근원이 이미 마르고 소리가 귀에 닿기도 전에 곡조가 곧 다할 것입니다. 반드시 지은 이에게 크게 웃음거리가 될 터이니 어찌 감히 화답할 뜻을 두겠습니까.

그렇지만 한가히 읊으며 흥을 붙이는 즈음에 만에 하나 얻는 것이 있으면 써서 받들어 부치더라도 오히려 늦지 않을 것입니다. 오직 큰 도량으로 너그러이 보아 주십시오.

다만 앞서 주신 「적(赤)」 자 운의 시에 화답하고 아울러 세 분에게도 화답하여, 모두 네 편을 이어 써서 부칩니다. 늦봄에 받은 것을 늦여름에야 답합니다. 어찌 제가 이토록 데면데면하고 느립니까. 모진 더위에 스스로 아끼십시오. 이만 줄입니다. 아무는 두 번 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