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동국이상국집 › 전집 권27

시랑 유승단(兪升旦)에게 보내는 글월與兪侍郞升旦手簡

동국이상국집 東國李相國集 · 이규보(李奎報) · 1241년 (고려 고종 28) 엮음 · 1251년 고쳐 보탬 · 단락 1 · 한자 187자 · 낭독 1.9분

동국이상국집 전집 권27 고려 이규보가 평생 지은 글을 아들 이함이 1241년에 엮어 새기고, 손자 이익배가 1251년에 고쳐 보탠 문집. 시와 부, 임금께 올린 표와 전, 절과 탑에 붙인 기, 비명과 묘지명, 편지와 서문, 그리고 몽골이 쳐들어온 때에 오간 국서까지 담겼다. 고구려 시조를 노래한 「동명왕편」이 전집 권3에 있고, 술과 거문고와 시를 벗 삼아 스스로 백운거사라 한 사람의 하루하루가 후집에 남아 있다. 책은 그가 눈을 앓다 붓을 놓는 마지막 시와, 그가 죽은 뒤 남이 지어 붙인 뇌서·묘지명으로 닫힌다.

月日。某頓首。予自弱齡嗜作詩。想平生所著無慮八千餘首。乃緣人取去不還。或焚棄或見失。掃箱篋無遺矣。由是無意於成編。近者愚息涵。不知乃翁無似。自謂有子而業文。不集父詩。大類無情者。於是窮搜貪索。或得於予所交遊儒家釋院。或得於新學兒曹所蓄者。凡集一千餘首。猶未分卷。但以一二三秩標之。予不能止之。任其所爲。僕嘗以爲言人詩病者。曠劫之父母。以是先以一二秩奉閣下。求有以潤色之。伏惟學士小加雌黃。則亦父母不貲之恩也。惶恐不宣。奎報再拜謹啓。

어느 달 어느 날, 아무는 머리를 조아립니다.

저는 어린 나이부터 시 짓기를 즐겨, 평생 지은 것이 어림잡아 팔천 편이 넘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남이 가져가 돌려주지 않거나 혹 불살라 버리거나 혹 잃어버려, 상자를 쓸어 보아도 남은 것이 없습니다. 이 때문에 책을 이룰 뜻이 없었습니다.

근래 어리석은 아들 함(涵)이 제 아비가 변변치 못한 줄은 모르고 스스로 이르기를 「아들이 되어 글을 익히면서 아비의 시를 모으지 않는다면 정 없는 사람과 크게 같다」 하였습니다. 이에 끝까지 뒤지고 욕심껏 찾아, 더러는 제가 사귀던 선비의 집과 절에서 얻고 더러는 새로 배우는 아이들이 간직한 데서 얻어, 모두 천 편 남짓을 모았습니다. 아직 권을 나누지 못하고 다만 첫째·둘째·셋째 질(秩)이라 표시만 해 두었습니다. 저는 말리지 못하고 하는 대로 맡겨 두었습니다.

저는 일찍이 남의 시의 병통을 말해 주는 이는 아득한 겁(劫)의 부모와 같다고 여겼습니다. 이런 까닭으로 먼저 첫째·둘째 질을 합하께 올려 다듬어 주시기를 구합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학사께서 조금 붓을 대어 고쳐 주신다면 또한 부모의 헤아릴 수 없는 은혜이겠습니다. 두렵습니다. 이만 줄입니다. 규보는 두 번 절하고 삼가 아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