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동국이상국집 › 전집 권27

최 상국께 올리는 글上崔相國書

동국이상국집 東國李相國集 · 이규보(李奎報) · 1241년 (고려 고종 28) 엮음 · 1251년 고쳐 보탬 · 단락 1 · 한자 457자 · 낭독 4.3분

동국이상국집 전집 권27 고려 이규보가 평생 지은 글을 아들 이함이 1241년에 엮어 새기고, 손자 이익배가 1251년에 고쳐 보탠 문집. 시와 부, 임금께 올린 표와 전, 절과 탑에 붙인 기, 비명과 묘지명, 편지와 서문, 그리고 몽골이 쳐들어온 때에 오간 국서까지 담겼다. 고구려 시조를 노래한 「동명왕편」이 전집 권3에 있고, 술과 거문고와 시를 벗 삼아 스스로 백운거사라 한 사람의 하루하루가 후집에 남아 있다. 책은 그가 눈을 앓다 붓을 놓는 마지막 시와, 그가 죽은 뒤 남이 지어 붙인 뇌서·묘지명으로 닫힌다.

月日。國子祭酒翰林侍講學士知制誥李某。謹上書于相國閣下。僕本妄庸。枉蒙閣下之知。自筮仕無幾年。而官已登於三品。至於學士制誥之任。無所不兼。則雖古人之得遭知己。被國士之遇。方之於予。曾莫之較也。非特奬遇之如此。又嘗有省飮之戒。是亦知予之不善飮酒。小過其量。則易至狂亂故爾。雖諸佛菩薩之十戒五戒。父母之訓敎子弟。其何以加之哉。僕宜奉以周旋。造次不忘。不敢以酒失略聞於閣下之耳。固其所也。乃反不然。昨於八關侍宴次。聖上誤以臣爲能飮。別自滿斟。繼之以宣勸。殷勤痛切。予始依違遷延。庶或僥倖免至顚倒。仰候上之辭色。不得不恐。因勉強罄釂。所以至於恍惚不省耳。非本心也。然此亦僕之苟貪天恩。不量小器所致。又誰咎哉。由是。於再坐之禮。不得隨例詣座。至令有司喧騰議論。再聞于聖聰。議及閣下。則雖賜以萬死之誅。亦所甘受也。然賴閣下終始護短。一皆原貰。則是實天地不貲之恩。非一生所報也。且以予所犯言之。失侍臣之禮。罪一也。忝閣下之知。罪二也。忽閣下之戒。罪三也。瑕垢之重。江水莫洗。雖幸蒙寬宥。將何面目復立朝廷。備侍臣之數耶。伏望閣下直於此時。俾解官職。退伏田里。誠大幸也。若又不爾。容之以大度。使復齒於朝列。則落三字之職。以避法從近密之班。斯又大賜也。此非妄飾。實出由誠。伏惟諒而裁之云云。

어느 달 어느 날, 국자좨주 한림시강학사 지제고 이 아무는 삼가 상국 합하께 글을 올립니다.

저는 본디 허망하고 용렬한데 그릇되이 합하의 알아주심을 입었습니다. 벼슬길에 나선 지 몇 해 되지 않아 벼슬이 이미 삼품에 올랐고, 학사와 제고의 임무에 이르러서는 겸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 비록 옛사람이 자기를 알아주는 이를 만나 국사(國士)의 대우를 받았다 해도 저에게 견주면 일찍이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기려 대우하심이 이와 같을 뿐 아니라, 또 일찍이 술을 줄이라는 경계를 내리셨습니다. 이 또한 제가 술을 잘 마시지 못하여 조금만 양을 넘으면 쉬이 미쳐 어지러워지는 줄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비록 여러 부처와 보살의 열 가지 계와 다섯 가지 계며 부모가 자제를 가르치는 것이라도 어찌 이보다 더하겠습니까.

저는 마땅히 이를 받들어 따라 잠깐 사이에도 잊지 않고, 감히 술로 그르친 일이 조금도 합하의 귀에 들리지 않게 하는 것이 본디 옳았습니다. 그런데 도리어 그러지 못하였습니다.

어제 팔관회의 잔치를 모시던 자리에서 임금께서 신을 잘 마시는 줄로 잘못 아시고, 따로 잔을 가득 부으시고 이어 권하시니 은근하고 간절하셨습니다. 저는 처음에 이리저리 미루며 요행히 엎어지는 데까지 이르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임금의 말씀과 낯빛을 우러러 살피니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어 억지로 잔을 다 비웠습니다. 그래서 어릿어릿하여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데까지 이른 것이요 본마음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 또한 제가 구차히 임금의 은혜를 탐하여 작은 그릇을 헤아리지 못한 탓이니 또 누구를 탓하겠습니까.

이로 말미암아 두 번째 자리의 예에 관례대로 나아가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유사가 시끄럽게 의논을 일으켜 거듭 임금의 귀에 들리고 의논이 합하께까지 미치게 하였으니, 비록 만 번 죽는 벌을 내리신다 해도 또한 달게 받겠습니다. 그러나 합하께서 처음부터 끝까지 허물을 감싸 주시고 하나같이 다 용서해 주심에 힘입었으니, 이는 실로 하늘과 땅 같은 헤아릴 수 없는 은혜라 한평생으로 갚을 바가 아닙니다.

또 제가 저지른 것으로 말하면, 모시는 신하의 예를 잃은 것이 첫째 죄요, 합하의 알아주심을 욕되게 한 것이 둘째 죄요, 합하의 경계를 소홀히 한 것이 셋째 죄입니다. 흠과 때가 무거워 강물로도 씻지 못합니다. 비록 다행히 너그러운 용서를 입었으나 장차 무슨 낯으로 다시 조정에 서서 모시는 신하의 수를 채우겠습니까.

엎드려 바라건대 합하께서는 바로 이때에 벼슬을 풀어 주시어 시골로 물러가 엎드리게 하시면 참으로 큰 다행이겠습니다. 만일 또 그러지 않으시고 큰 도량으로 받아 주시어 다시 조정의 반열에 끼게 하신다면, 지제고의 직임을 떨구시어 임금을 가까이 모시는 반열을 피하게 하여 주십시오. 이 또한 큰 내리심이겠습니다.

이는 함부로 꾸민 말이 아니라 실로 정성에서 나온 것입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헤아려 결단해 주십시오. 운운.

협주 1

三字之職 — 저본의 「석 자의 직임」은 지제고(知制誥) 석 자를 가리킨다. ― 옮긴이